21.05.09 창세기 9장 18-29절 [어버이의 특권을 누리자]

오늘 어버이 주일에 노아와 세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족의 모습을 한 번 쯤 되돌아보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관영한 지구를 물청소 하신 다음에 지구는 1년이 넘게 물에 푹 잠겨 있었습니다. 땅이라는 땅은 비옥해서 어디에서 무슨 농사를 지어도 풍년입니다. 노아네 가족들이 포도를 심었습니다. 3~5년 정도 걸립니다. 포도는 그냥 먹어도 맛이 기가 막히지만, 발효 시켜서 포도주로 만들어 먹으면 맛이 죽입니다. 노아네도 포도주를 넉넉하게 담갔습니다. 포도주 독을 여는 날, 노아 혼자 인사불성이 되도록 대작을 했습니다. 다행히 자동차가 없어서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습니다. 술을 먹으면 열이 나니까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골아 떨어졌습니다. 그 때, 둘째 아들 함이 들어왔다가, 아버지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함은 현장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형제들에게 가서 실소를 하면서 아버지를 비난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형 샘과 아우 야벳은 옷을 취해서 어깨에 메고,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들어 계시는 <아버지의 벗을 몸을 덮어 주었다.>는 소리를 술에 깬 아버지 노아가 듣고 아들들을 위해서 축복과 저주를 합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창 9:20, 21)

포도주는 홍수 전에도 있었습니다. 포도 농사를 짓는 집은 자연히 포도주를 담급니다. 문제는 노아가 혼자 취하도록 마시고 일을 저질렀습니다. 노아가 왜 혼자 포도주를 취하도록 마셨을까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아의 방심이었습니다. 홍수 전의 노아의 삶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물의 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해서 노심초사 방주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홍수가 끝난 후에도 하나님께서 언젠가 또 심판을 하실 지 알 수가 없어서 긴장을 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의 무지개를 하늘 구름 사이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이제는 근심, 걱정도 두려움도 없어 긴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포도농사도 풍년이 들었고, 자식들도 각자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긴장이 확 풀어져 버렸습니다. 노아는 이제부터 인생을 좀 편안하게 즐겨야지 하면서 시작한 포도주 한 잔이, 두 잔, 석 잔, 결국에는 취하도록 마셨고, 인사불성이 돼서 벌거벗고 잠들고 말았습니다. 벌거벗고 잠든 것은 단지 술에 취해서, 몸에 열이 나서 옷을 벗은 것이 아닙니다. 방심으로 노아의 죄성이 살아난 것입니다. 에덴이 아닌데 에덴처럼 벌거벗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방심하고 술에 취한 노아는 방주를 만들던 의인이 아니라 벌거벗은 창녀의 추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던 의인이었지만 방심의 포도주가 그를 창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롬 8: 13)

그래서 신앙생활은 휴가가 없습니다. 방학하면 안 됩니다. 

신앙과 믿음에 휴가기간이 있고, 방학이 있다는 것은 타락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을 떠나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잠시도 쉬지 않고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에 불평의 씨앗을 뿌리고, 비판과 미움, 시기와 질투의 가라지를 덫 뿌리고 갑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도록 안내합니다. 혹시 노아처럼 방심했다가 실수 했습니까? 이 시간 예수님이 보혈로 정결하게 치유 받으시고, 약속의 말씀으로 남은 인생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 9 : 24-27)

실수와 허물이 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노아를 선지자로 세웠습니다.

이것은 선지자 노아의 설교요 예언입니다. 노아가 아들 함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함의 막내아들 <가나안>을 향해 예언을 했습니다. 설교를 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고쳐야 한다. 고치지 않으면 이렇게 될 것이다.> 설교는 목사 개인의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 이렇습니다. 듣고 고쳐야 합니다. 고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현재를 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미래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복지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설교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특별히 함의 막내아들, 손주 <가나안>이 세상쾌락에 집착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후손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이 아버지를 실수와 허물을 비난했다고 분노하면서 저주를 내린 것이 아닙니다.


셈과 야벳의 축복은 간단하게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창 9: 26)

가장 큰 복은 <누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를 <이상천목사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강릉교회의 하나님 여호와><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로 부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하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창 9:27)

지금 지구촌에 가장 널리 널리 퍼진 민족이 야벳의 후손들입니다. 야벳의 후손들은 이 땅에서 받은 은혜와 복 된 기업을 누리다가 마지막 때에는 <셈의 장막 곧 구원의 장막>에 들어와 영생의 은총을 입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가장 무서운 죄는 세상의 쾌락을 쫓다가 방심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방심해서 사탄에게 빼앗겨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죄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항상 죄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방심해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쉬지 말고 깨어 근신하며 기도하십시오. 살다가 환난의 구덩이에 빠졌어도 예수님께 등을 돌리거나 믿음의 방학이나 휴가를 떠나시면 안 됩니다. 노아의 방심이 후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부모의 특권은 자녀들의 축복권입니다. 아들,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으로 매일매일 축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