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따 먹음으로 인해 에덴동산의 모든 은혜와 복으로부터 추방당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 두 사람의 범죄로 인해 인류는 지금도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해야 생존할 수 있게 되었고, 여인들은 해산의 고통을 견뎌내야 생명을 이어가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쓸데없이 따 먹지도 못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창조하셔서 아담과 하와를 시험 들게 하셨습니까? 아예 처음부터 창조하시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불순종하지도 않았고,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꼭 만드실 것이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드시지, 동산 가운에 창조해 놓으셨을까요?
창세기 2장에 보면 에덴동산의 모습을 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특별한 나무 두 그루를 동산 중앙에 창조해 두신 것이 보입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말썽 많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이름 그대로 <생명나무>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죽음이 없는 생명을 보존해 주는 나무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고 보장해 주는 나무입니다.
영생의 나라 = 하나님의 나라 = 멸망이 없는 나라를 향한 생명나무 입니다. <생명나무>는 신앙의 길, 구원의 길, 영생의 길, 하나님 나라의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흔히 <선악과>라고 부릅니다. 영어 표현은 <Tree of the Knowledge>입니다. <지식의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나무를 동산중앙에 두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일까요?
인간의 마음은 <견물생심>이라고 합니다. 눈으로 보면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산 중앙에 있으면 어느 곳에서 든지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목적은 매일 이 두 나무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이 두 나무를 보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라, 하늘 아버지와의 계약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나무를 보면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스스로 선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특별한 두 나무를 동산의 중앙에 심으셨는데, 우리에게 금하신 것은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언제든지 맘대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와 <지식나무>를 매일 바라보면서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영생의 생명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빠져 <지식나무>의 열매를 먼저 선택했고 따 먹었습니다. 선택과 판단과 결정에서 우선순위가 그만 뒤바뀌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택을 잘못했습니다. 결정을 잘못했습니다. 판단을 잘못했습니다.
지식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결과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문화와 문명은 끝없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문명의 이기는 오히려 인류를 멸망의 구덩이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처음 발명할 때는 너무 편리하고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간의 인격을 망가뜨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이간질 시키고, 결국에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전쟁과 사망으로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먼저 따 먹은 인간의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이 선택과 결정과 판단으로 인해 창세기 4장으로 역사가 이어져서 결국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말았습니다. 보십시오. 당시에 인구가 많아 좌충우돌할 상황도 아닙니다. 형제 뿐입니다. 그런데 그 동생을 미움과 시기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내 제사 받아주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지, 제사를 잘 드린 동생 때문은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결과로 추방당한 이 세상은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사람을 죽이는 세상으로 변질되고 만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세기 3:24)
<지식나무>를 선택한 결과는 더 끔찍합니다. <생명나무>의 은총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생명나무>의 은혜와 복이 유보된 것입니다. 불순종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들이 <생명나무>까지 맘대로 먹을 수 없도록, 호위 천사들이 불 칼을 들고 <생명나무>로 지키게 했습니다. 인간들에게 영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생명나무에 접근이 금지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인생은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접근금지 당한 생명나무>의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생명나무>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생명나무의 접근금지가 풀린 날이 <성탄>입니다.
구주 성탄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과 태도는 어떻습니까? 교회를 섬기면서 <생명나무>를 선택합니까? <지식 나무>를 선택합니까?
<지식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아담 하와만 원망할 것이 아니라, 접근금지가 풀린 생명나무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해서, 함께 생명나무의 열매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강릉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따 먹음으로 인해 에덴동산의 모든 은혜와 복으로부터 추방당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 두 사람의 범죄로 인해 인류는 지금도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해야 생존할 수 있게 되었고, 여인들은 해산의 고통을 견뎌내야 생명을 이어가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쓸데없이 따 먹지도 못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창조하셔서 아담과 하와를 시험 들게 하셨습니까? 아예 처음부터 창조하시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불순종하지도 않았고,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꼭 만드실 것이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드시지, 동산 가운에 창조해 놓으셨을까요?
창세기 2장에 보면 에덴동산의 모습을 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특별한 나무 두 그루를 동산 중앙에 창조해 두신 것이 보입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말썽 많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이름 그대로 <생명나무>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죽음이 없는 생명을 보존해 주는 나무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고 보장해 주는 나무입니다.
영생의 나라 = 하나님의 나라 = 멸망이 없는 나라를 향한 생명나무 입니다. <생명나무>는 신앙의 길, 구원의 길, 영생의 길, 하나님 나라의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흔히 <선악과>라고 부릅니다. 영어 표현은 <Tree of the Knowledge>입니다. <지식의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나무를 동산중앙에 두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일까요?
인간의 마음은 <견물생심>이라고 합니다. 눈으로 보면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산 중앙에 있으면 어느 곳에서 든지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목적은 매일 이 두 나무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이 두 나무를 보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라, 하늘 아버지와의 계약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나무를 보면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스스로 선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특별한 두 나무를 동산의 중앙에 심으셨는데, 우리에게 금하신 것은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언제든지 맘대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와 <지식나무>를 매일 바라보면서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영생의 생명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빠져 <지식나무>의 열매를 먼저 선택했고 따 먹었습니다. 선택과 판단과 결정에서 우선순위가 그만 뒤바뀌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택을 잘못했습니다. 결정을 잘못했습니다. 판단을 잘못했습니다.
지식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결과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문화와 문명은 끝없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문명의 이기는 오히려 인류를 멸망의 구덩이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처음 발명할 때는 너무 편리하고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간의 인격을 망가뜨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이간질 시키고, 결국에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전쟁과 사망으로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먼저 따 먹은 인간의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이 선택과 결정과 판단으로 인해 창세기 4장으로 역사가 이어져서 결국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말았습니다. 보십시오. 당시에 인구가 많아 좌충우돌할 상황도 아닙니다. 형제 뿐입니다. 그런데 그 동생을 미움과 시기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내 제사 받아주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지, 제사를 잘 드린 동생 때문은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결과로 추방당한 이 세상은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사람을 죽이는 세상으로 변질되고 만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세기 3:24)
<지식나무>를 선택한 결과는 더 끔찍합니다. <생명나무>의 은총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생명나무>의 은혜와 복이 유보된 것입니다. 불순종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들이 <생명나무>까지 맘대로 먹을 수 없도록, 호위 천사들이 불 칼을 들고 <생명나무>로 지키게 했습니다. 인간들에게 영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생명나무에 접근이 금지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인생은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접근금지 당한 생명나무>의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생명나무>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생명나무의 접근금지가 풀린 날이 <성탄>입니다.
구주 성탄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과 태도는 어떻습니까? 교회를 섬기면서 <생명나무>를 선택합니까? <지식 나무>를 선택합니까?
<지식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아담 하와만 원망할 것이 아니라, 접근금지가 풀린 생명나무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해서, 함께 생명나무의 열매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강릉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