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30 에스겔 34장 1-31절 [인생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하루는 나훈아의 테스형인 소크라테스의 절친이 허겁지겁 찾아와서 숨 넘어가는 목소리로 소리칩니다. <이보게 소크라테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 방금 내가 밖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아나? 아마 자네도 들으면 깜짝 놀랄거야. 그게 말일세...> 이때 소크라테스는 친구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이보게 친구, 잠깐만~ 자네가 지금 나에게 전하고 싶은 그 이야기를 체로 세 번 걸렀는가?> <아니 내가 자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체로 세 번 걸렀냐고? 대체 무슨 체로 무슨 말을 거른다는 건가?> <첫째는 진실의 체로 자네의 얘기가 모두 사실인가? 아니며 지나가다가 들은 소문인가? 사실인지는 모르겠고 소문만 들었어~ 두 번째는 선의의 체로 그 이야기가 사실이더라도 선의에서 한 얘기인지? 남의 험담이나 하고,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소문만 퍼 나르는 악의에서 한 얘기인지? 선의는 아닌 것 같아. 그럼 세 번째 체로 걸러야지. 그 얘기가 정말 자네와 나, 사람들의 삶에 유익을 주는 내용인가? 자네와 나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고, 우리에겐 별 의미도 없고, 더구나 유익도 없어..> <사실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고, 선의도 아니고, 악의에 차 부정적인 더러운 소문, 더구나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아무런 유익도 주지 않는 소문은 부디~ 내 귀에 들려주지 마시게, 내 마음만 어지럽히고 더럽힐 뿐일세.>

오늘은 내 인생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 혹은 존재는 무엇인가?

내 믿음을 복 된 믿음으로 살도록 이끌어 가는 힘은 무엇인가?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믿음의 가문으로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

강릉교회를 복 된 믿음의 공동체로 이끌어 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목자는 왕과 영적인 지도자를 지칭하는 Metaphor(은유)입니다.

양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칭하는 Metaphor(은유)입니다.

목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은 양떼를 먹이고 돌보는 것이지만, 에스겔 시대에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만 먹고 연약한 자, 병든 자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백성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다가 결국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타락하여 돌아오지 않자 하나님께서 직접 선한 목자를 보내셔서 흩어진 백성들을 다시 찾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됩니다.

<한 목자><내 종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예수님이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먹이고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양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는 목자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영생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양 같아서 어디가 푸른 풀밭인지 어디가 쉴 만한 물가인지 모릅니다.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우물가로 인도하며 먹이실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실 때, 그 때부터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평강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로 하루하루를 살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목자의 인도와 보호의 삶이 끝나면 영원한 천국에서의 평강과 기쁨과 감사의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교회입니다. 복음입니다.


오늘 말씀은 누구든지 읽으면서 혹시 어떤 목사님을 생각하거나, 어떤 사람을 구체적으로 지명해서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의 불의한 목자는 나 자신입니다. 악한 목자는 여러분입니다. 우리의 불의한 믿음을 꾸중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고,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썩어서 악취를 풍기는 어둠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고침 받고 회복하라고 명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겔 34: 1-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 34: 11-15)

여러분~ 편안한 길이 좋습니까? 불편한 길이 좋습니까?

신영복 작가의 <나무야 나무야> 글 중에 

<편안함 = 평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디에서도 희망을 품고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길도 편안한 길이 좋습니다. 그러나 너무 편안한 길만 가다 보면 졸음운전으로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다소 불편한 길이 도리어 큰 사고를 막아줍니다. 희망의 언덕을 오르는 길일수록 더 가파르고 곳곳에 굴곡도 많습니다.

가끔 바람을 쐬러 대관령을 오릅니다. 옛길을 걷기도 하지만, 자동차로 99 구비의 옛날 도로를 넘나들면서 자동차를 세울 수 있는 곳마다 세워두고 아름다운 강릉 땅과 동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시름을 다 잊어버립니다. 고속도로는 빠르게 다닐 때, 급하게 다녀야 할 때, 시간을 맞춰야 할 때, 다니기 참으로 편하고 좋은 길입니다. 하지만 정은 없습니다.

시편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목자십니다~!!!

제 인생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절대주권입니다. 제 목회의 원동력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하게 이루어주실 예수님입니다. 비록 부족하기 이를 데 없지만 주님 만나는 날을 사모하는 믿음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믿음의 그릇이 오염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십시오. 믿음의 그릇이 깨져서 새지 않는지 항상 점검하십시오. 잘 믿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죄로 얼룩진 사람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당당하게 담대하게 세우십시오. 신랑되신 예수님 오실 때, 바깥 어둠에 쫓겨나지 않도록 기름도 가득, 등불을 켜고, 정결한 세마포 예복을 준비하고 기다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