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7 사무엘상 8장 1-9절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에덴에서 불순종으로 쫓겨난 이 세상은 진노아래 놓여있기 때문에 그 본질과 밭이 악한 것입니다. 본질과 밭이 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악한 것들은 폭발적으로 번식하고 기하급수적으로 잘 전파되도록 밑거름이 되어 있습니다. 공부는 죽어라고 해도 성적이 안 올라가는데, 욕은 학원 안 보내도 1등합니다. 나쁜 것, 못된 것, 악한 것들은 절대로 가르치지 않았는데 거의 자동으로 배우고 습관이 됩니다. 자녀들도 부모님의 나쁘고 좋지 않는 것들은 버리고, 훌륭하고 좋은 것만 닮아야 하는데 실상은 좋고 훌륭한 것은 닮지 않고, 나쁘고 좋지 않고, 못된 것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도 닮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유야 세상의 밭과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얼마나 복되고 복됩니까? 그런데 그 엄청난 은혜와 복된 말씀은 눈에도 보이지 않고, 귀에도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망뿐인 세상은 왜 그렇게도 잘 닮고, 닮으려고 애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훌륭한 믿음의 사람을 닮으려고 애는 쓰지 않으면서, 바르지 않고 그릇된 믿음의 버릇들은 금 새, 이미, 똑같이 닮아있습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

강릉가족 여러분~! 매일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내 인생과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만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복되고 좋은 것에 목숨을 걸고 복종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사무엘상 8장 1, 2절)

위대한 기도의 사람 사사이자 선지자인 사무엘도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았고 아들들이 장성해서 부사사로 임명받아 아버지의 사역을 도왔습니다. 사무엘도 인간인지라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흘러 늙었습니다. 학자들은 이때가 아마도 50대이라고 추측합니다. 나이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면 가장 먼저 신체적인 기능뿐 아니라 정신적인 기능도 하루가 다르게 저하됩니다. 본인이 빨리 인정하면 더 행복하고, 가족들과 주위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도와주면 더 행복합니다.

나이가 든 사무엘도 힘에 부쳐서 이스라엘 나라 구석구석을 다닐 수가 없게 되자 두 아들을 부사사로 임명해서 자신 사역을 돕게 했습니다. 사무엘이 가장 가기 힘들고, 중요한 곳이 이스라엘의 최남단, 브엘세바에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워서 하나님을 섬기면 백성들을 인도하도록 맡겼습니다. 장남 요엘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차자 아비야는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이름처럼 두 아들의 이름을 믿음과 영감으로 경건한 사람으로 살 것을 소원하며 신앙적으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처럼 살고, 이름처럼 잘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도 이름처럼 살지 못했고, 사무엘의 두 아들도 이름처럼 살지 못했습니다. 이름처럼 믿음으로 복된 인생길을 걷지 못했습니다. 말썽을 피웠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상 8장 3절)

사람은 이익을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고 삽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사명 따라 삽시다~!!!

<사명 따라 살자>는 말은 정말 좋고 훌륭합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세상과 마귀가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놓아두지 않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장 8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장 17절)

유사 이래로 모든 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과 영적인 전쟁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의 지배아래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중세교회는 세속 나라와 주도권 싸움으로 길고 긴 전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자연히 교회와 신앙은 말씀에서 떠나 세속화가 가속되었고, 결국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500년 세월이 지나자 이제는 교회와 믿음을 개혁했던 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돼서 세상의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본연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시험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우물의 땅인 브엘세바에 사사로 임명받아 아버지의 사명을 위임받아 파송 받았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고 재판도 뇌물을 받아 판결했습니다. 사람도 하나님도 좋아하지 않을 일만 골라가며 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사명 따라 사는 사람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각자에게 맡기신 일들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이익을 따라 뇌물에 흔들리지 말고 사명 따라 복되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엘과 아비야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사무엘상 8장 4, 5절)

이 탄원으로 인해 아버지 사무엘도 화가 났지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사무엘상 8장 6절)

사무엘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사무엘상 8장 7-9절)

사사이자 선지자인 사무엘이 아들들을 잘못 가르친 것이 아니라 아들들이 아비의 훈육에 불순종했습니다. 그 아들들로 인해서 백성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제도인 왕을 세워 달라고 탄원했습니다. 백성들의 탄원이 사무엘은 너무 싫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탄원이 사무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기들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처럼 눈에 보이는 왕을 세워달라고 탄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황적으로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탄원의 실상은 <믿음 없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저런 상황에서 <믿음 없음>으로 탄원하면서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COVID 19 상황에서 약속의 말씀 따라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3000년 전의 이 백성들처럼 우리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처럼 책임도 질 수 없고, 무능한 인간을 왕으로 세워달라고 보채지는 않습니까?

인간의 모든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베드로전서 2장 13, 14절)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베드로전서 2장 16절)

강릉가족 여러분~! 세상 따라 살기를 멈추시고, 이제부터 받은 사명 따라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익이나 뇌물에 흔들리지 마시고 오직 약속의 말씀 따라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믿음의 길을 떠나 곁길로 가지 않는지<?> 믿음을 수시로 점검하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결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복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천국까지 약속하신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복을 기대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