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신용사회입니다.
신용은 사람들끼리의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 의 척도입니다. 사람들과의 약속을 잘 지키면 개인의 신용등급이 올라갑니다. 신용등급이 높다는 것은 <이 사람은 이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객관적인 증명서입니다.
믿음의 신용등급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믿음의 신용등급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
긴가민가한 사람입니까?
믿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얼마나 믿으시느냐? 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얼마나 확신하느냐? 믿느냐? 입니다. 나의 이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아버지 앞에 내 믿음의 신용등급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를 얼마만큼 어디까지 믿습니까? 강릉교회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믿을 만한 교회입니까? 나는 믿을 만한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아들딸입니까? 누군가가 곁에서 보증을 서든지 담보물이 필요한 사람입니까? 강릉가족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믿고 무엇이든지 맡길 수 있는 강릉교회와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나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절망적 상황 속,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의 인생과 생명까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합니다.
서원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자 계약입니다.
일반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한 번, 두 번은 그냥 넘어갑니다. 참는 겁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반복되면 더 이상 그 사람과 거래하지 않습니다. 약속은 그렇게 넘어가지만, 계약은 양상이 전혀 다릅니다. 계약은 계약을 어겼을 때, 계약을 어긴 제재 조항이 들어있습니다. 계약금은 10%, 중도금을 정한 날에 입금하지 않으면 하루, 혹은 일주일 당 얼마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도 지급하지 않으면 계약은 자동파기,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믿음의 위약에 대한 내용이 Bible이 이런저런 언급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약속과 계약을 100%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별다른 계약서는 없지만 십계명은 돌 판에 새겨서 약속하셨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말씀으로 계약하셨습니다. 지키는 사람과 지키지 않는 사람을 철저하게 구별하시고, 구분하십니다. 계약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과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확실하게 구별하고, 구분하십니다. 단순히 구별하고 구분하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약속과 계약을 지킨 사람의 순종과 복종에 따른 은혜와 복을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반대로 약속과 계약을 지키지 않고 불순종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거두어 버리고, 더 나아가 반드시 징계하시고 벌을 내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보다 약속과 계약에 더 철저한 분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한 믿음의 영웅들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약속과 계약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고 복종한 사람들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얼마나 철저하게 약속과 계약을 붙들고 오직 야훼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면 까마귀가 먹을 것을 물어다 주었고, 사렙다 과부가 계약서도 미래도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순종하고 복종해서 3년 동안의 가뭄과 기근 속에서 선지자 엘리야도 섬기고 자기와 아들도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의 역사 속, 장대 높이 달린 놋 뱀을 고개 돌려서 눈꺼풀 한 번 열어서 쳐다보기만 하면 살게도 해 주셨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순종과 복종이 뭐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내 수준에 맞는 것을 순종과 복종을 요구하실 때, 순종하시고 복종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약속이자 계약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계약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8)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한복음 14:1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한복음 16:23)
한나는 야훼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계약했습니다. 약속과 계약은 상대방이 동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엘리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한나의 서원에 말씀으로 싸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약하신 것이 아니면 한나는 절대로 임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한나의 서원에 싸인하셨는지는 한 달 만 지나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한 달 후에 한나는 자신의 서원기도가 응답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을 보면서 이제 확신했습니다. 한해가 지나고 때가 돼서 아들을 낳자 이름도 <사무엘 = 하나님께 기도해서 얻은 아들>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마도 사무엘이라는 이름은 임신된 것을 아는 순간 작명해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리는 모든 것은 내 계약서입니다. 내가 쓴 계약서 잃어버리지 마시고 꼭 기억하셨다가 잘 지키시고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것 하나 지워버리시지 않고 다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내가 한 약속, 우리가 한 서원을 우리가 지킬 때까지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내가 그 약속과 서원의 기도를 지키는 순간 그곳이 모리산입니다. 여호와 이레입니다. 감사제단을 쌓아야 하는 나의 시은소입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 잊어버리지 않게 잘 기록해 두십시오. 계약을 순종으로 실행하셔서 한나처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녀들을 위한 믿음의 王道는?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은 우리나라가 세계 1등입니다. 그런 열정을 품은 한국인, 어머니, 그러면 교회 안에서 자녀들의 신앙, 믿음을 위해서 그런 열정을 품고 있느냐 <?> 하는 것입니다. 동의할 수 없을 겁니다. 학교교육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인생도, 가정도 희생하면서, 자녀들의 신앙과 믿음에 있어서는 때로는 대충, 때로는 자녀의 학업과 성공을 위한 수단 혹은 방법으로만 사용하기도 합니다. 수능 끝나면 신앙도 끝나고, 대학 합격하면 기도도 멈춥니다. 좋은 직장 얻고, 결혼하고 나면 교회도, 신앙도 다 접습니다. 공부는 학원 보내고 과외를 시켜도, 신앙을 위해서 학원에 보내거나, 믿음을 과외시키려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이런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이들이 젖을 뗀 후에는 아버지가 가르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대제사장 엘리의 사환으로 보냅니다. 아버지 대신 하나님의 성전의 사환으로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성막에서의 믿음 훈련을 받도록 했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매일 드리는 소제로부터 모든 것을 불태워 드리는 번제까지 하나에서부터 열을 온몸으로 삶으로 익히도록 했습니다. 3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실 때, 사무엘의 잠자리는 여호와의 법궤가 있는 성소 안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아들들도 지키지 않는 법궤를 어린 사무엘이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믿음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정제도를 세우는 역사적인 일을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사무엘을 복있는 사람,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한나는 21세기의 표현으로 사무엘을 <믿음의 기숙학교>에 보내서 <믿음의 조기교육>을 철저하게 시켰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옷과 음식을 해서 아들을 면회하고, 위문하고, 격려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나처럼 <믿음의 기숙학교>에는 보내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믿음과 신앙을 위해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뿐 아니라 <성수주일과 십일조, 성경통독과 기도와 전도의 삶>으로 철저하게 신앙훈련을 시키는 강릉가족과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현대 사회는 신용사회입니다.
신용은 사람들끼리의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 의 척도입니다. 사람들과의 약속을 잘 지키면 개인의 신용등급이 올라갑니다. 신용등급이 높다는 것은 <이 사람은 이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객관적인 증명서입니다.
믿음의 신용등급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믿음의 신용등급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
긴가민가한 사람입니까?
믿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얼마나 믿으시느냐? 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얼마나 확신하느냐? 믿느냐? 입니다. 나의 이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아버지 앞에 내 믿음의 신용등급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를 얼마만큼 어디까지 믿습니까? 강릉교회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믿을 만한 교회입니까? 나는 믿을 만한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아들딸입니까? 누군가가 곁에서 보증을 서든지 담보물이 필요한 사람입니까? 강릉가족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믿고 무엇이든지 맡길 수 있는 강릉교회와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나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절망적 상황 속,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의 인생과 생명까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합니다.
서원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자 계약입니다.
일반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한 번, 두 번은 그냥 넘어갑니다. 참는 겁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반복되면 더 이상 그 사람과 거래하지 않습니다. 약속은 그렇게 넘어가지만, 계약은 양상이 전혀 다릅니다. 계약은 계약을 어겼을 때, 계약을 어긴 제재 조항이 들어있습니다. 계약금은 10%, 중도금을 정한 날에 입금하지 않으면 하루, 혹은 일주일 당 얼마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도 지급하지 않으면 계약은 자동파기,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믿음의 위약에 대한 내용이 Bible이 이런저런 언급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약속과 계약을 100%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별다른 계약서는 없지만 십계명은 돌 판에 새겨서 약속하셨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말씀으로 계약하셨습니다. 지키는 사람과 지키지 않는 사람을 철저하게 구별하시고, 구분하십니다. 계약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과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확실하게 구별하고, 구분하십니다. 단순히 구별하고 구분하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약속과 계약을 지킨 사람의 순종과 복종에 따른 은혜와 복을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반대로 약속과 계약을 지키지 않고 불순종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거두어 버리고, 더 나아가 반드시 징계하시고 벌을 내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보다 약속과 계약에 더 철저한 분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한 믿음의 영웅들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약속과 계약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고 복종한 사람들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얼마나 철저하게 약속과 계약을 붙들고 오직 야훼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면 까마귀가 먹을 것을 물어다 주었고, 사렙다 과부가 계약서도 미래도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순종하고 복종해서 3년 동안의 가뭄과 기근 속에서 선지자 엘리야도 섬기고 자기와 아들도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의 역사 속, 장대 높이 달린 놋 뱀을 고개 돌려서 눈꺼풀 한 번 열어서 쳐다보기만 하면 살게도 해 주셨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순종과 복종이 뭐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내 수준에 맞는 것을 순종과 복종을 요구하실 때, 순종하시고 복종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약속이자 계약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계약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8)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한복음 14:1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한복음 16:23)
한나는 야훼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계약했습니다. 약속과 계약은 상대방이 동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엘리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한나의 서원에 말씀으로 싸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약하신 것이 아니면 한나는 절대로 임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한나의 서원에 싸인하셨는지는 한 달 만 지나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한 달 후에 한나는 자신의 서원기도가 응답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을 보면서 이제 확신했습니다. 한해가 지나고 때가 돼서 아들을 낳자 이름도 <사무엘 = 하나님께 기도해서 얻은 아들>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마도 사무엘이라는 이름은 임신된 것을 아는 순간 작명해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리는 모든 것은 내 계약서입니다. 내가 쓴 계약서 잃어버리지 마시고 꼭 기억하셨다가 잘 지키시고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것 하나 지워버리시지 않고 다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내가 한 약속, 우리가 한 서원을 우리가 지킬 때까지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내가 그 약속과 서원의 기도를 지키는 순간 그곳이 모리산입니다. 여호와 이레입니다. 감사제단을 쌓아야 하는 나의 시은소입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 잊어버리지 않게 잘 기록해 두십시오. 계약을 순종으로 실행하셔서 한나처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녀들을 위한 믿음의 王道는?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은 우리나라가 세계 1등입니다. 그런 열정을 품은 한국인, 어머니, 그러면 교회 안에서 자녀들의 신앙, 믿음을 위해서 그런 열정을 품고 있느냐 <?> 하는 것입니다. 동의할 수 없을 겁니다. 학교교육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인생도, 가정도 희생하면서, 자녀들의 신앙과 믿음에 있어서는 때로는 대충, 때로는 자녀의 학업과 성공을 위한 수단 혹은 방법으로만 사용하기도 합니다. 수능 끝나면 신앙도 끝나고, 대학 합격하면 기도도 멈춥니다. 좋은 직장 얻고, 결혼하고 나면 교회도, 신앙도 다 접습니다. 공부는 학원 보내고 과외를 시켜도, 신앙을 위해서 학원에 보내거나, 믿음을 과외시키려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이런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이들이 젖을 뗀 후에는 아버지가 가르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대제사장 엘리의 사환으로 보냅니다. 아버지 대신 하나님의 성전의 사환으로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성막에서의 믿음 훈련을 받도록 했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매일 드리는 소제로부터 모든 것을 불태워 드리는 번제까지 하나에서부터 열을 온몸으로 삶으로 익히도록 했습니다. 3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실 때, 사무엘의 잠자리는 여호와의 법궤가 있는 성소 안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아들들도 지키지 않는 법궤를 어린 사무엘이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믿음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정제도를 세우는 역사적인 일을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사무엘을 복있는 사람,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한나는 21세기의 표현으로 사무엘을 <믿음의 기숙학교>에 보내서 <믿음의 조기교육>을 철저하게 시켰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옷과 음식을 해서 아들을 면회하고, 위문하고, 격려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나처럼 <믿음의 기숙학교>에는 보내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믿음과 신앙을 위해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뿐 아니라 <성수주일과 십일조, 성경통독과 기도와 전도의 삶>으로 철저하게 신앙훈련을 시키는 강릉가족과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