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8 사무엘상 14장 24-46절 [소통 왕 & 불통 왕]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통하고 살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소통하고 사는 사람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말씀은 사울 왕이 이스라엘 왕으로 즉위 한 후부터 웬일인지 전능하신 하나님과도 소통이 잘 안되고 백성들과도 소통 되지 않는 것입니다.


상식수준에 따라서 의사소통이 돼야 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하루 종일 밀고 밀리는 목숨을 건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사울 왕이 군사들에게 내린 명령이 24-27절 말씀입니다.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입에 대는 자가 없었으나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못하였으므로 손에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삼상 14 : 24-27)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왕의 명령을 요나단에게 얘기했습니다.

그 때에 백성 중 한 사람이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하니 요나단이 이르되 내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하물며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삼상 14: 28-30)

성도들 앞에 담임목사님이 기도원에 금식 기도하러 올라가신다고 하면 성도들을 우리 목사님이 대단히 신령하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금식기도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는 정말 귀한 믿음 중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금식을 한창 불이 붙은 전장에서 선포해야 합니까? 운동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금식해야 합니까? 배불리 잘 먹어야 합니까?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금식해야 합니까? 배불리 먹어야 합니까? 지금 전쟁 중에 금식을 선포하는 왕이 어디 있습니까? 왕이 되기 전에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를 찾아가면서 예물이 없다고 걱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암염소보다 자기들을 더 걱정하실 부모님의 마음까지 배려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나쁜 쪽으로 사람이 변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과도 불통이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항상 상식이 통하는 믿음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상식수준도 채우지 못하는 믿음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깔보고 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믿음을 상식 수준에서 묶어두면 안 됩니다. 상식을 기본으로 해서 세상의 모든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영적인 법칙까지 성장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법과 제도, 규칙에 따라 의사소통이 돼야 합니다.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 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삼상 14: 31-34)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잠이 고픈 사람은 어디에 앉혀 놔도 잠을 잡니다. 잠이 고프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푹신한 침대에 눕혀 놔도 눈만 말똥말똥 합니다. 배부른 사람은 진수성찬을 보고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배가 고픈 사람은 맛을 가리지 않습니다. 맛을 가리는 사람은 배가 부르기 때문에 맛이 있으니? 없느니? 짜니? 싱겁니? 합니다. 반찬투정 하면 어머니께서 <니가 아직 배가 안 고픈 모양이구나~!> 상을 치워버립니다. 군사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로 먹었겠습니까? 사울 왕이 그때서야 배고픈 군사들의 처지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규례를 어기고 피가 떨어지는 생고기를 먹지 말고 법과 규례와 제도에 따라 먹을 것을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금지시켰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는 혼돈과 무질서 속에 질서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법과 규칙과 질서 속에서 모든 피조물들은 소통하며 존재합니다. 해와 달과 별들,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모든 동식물들이 생육과 번성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드셨습니다. 특히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법과 규칙과 질서를 심어놓으셨습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이웃과 민족과 나라와 나라에도 법과 규칙과 질서를 부여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어 놓으신 자연의 법에 따라 자연과 의사소통을 잘해야 인간들이 땅에서 덜 고통스럽게 살 수 있습니다. 자연의 법을 역행하면 고통을 달게 받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법과 규칙과 질서 속에서 의사소통을 잘 해야 세상이 평안합니다. 법과 규칙과 질서를 무시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고통과 슬픔과 괴로움이 떠나지 않습니다. 강릉교회의 법과 규칙과 질서 속에서 소통을 잘 하셔서 여러분 모두가 즐겁고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소통이 잘돼야 합니다.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삼상 14 : 35)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삼상 14 : 37)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하건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 사울이 이르되 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뽑으라 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 (삼상 14 : 41, 42)

사울이 이르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삼상 14 : 44)

사울 왕이 여호와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서 처음 제단을 쌓았는데 하나님께서 묵묵부답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불통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모든 백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결국 아들 요나단이 제비 뽑혔는데 상황을 설명 듣고선 요나단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화를 내니깐 백성들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삼상 14 : 45)

사울왕의 영성보다 백성들의 믿음이 확고합니다. 사울왕은 어떻게 보면 한치 앞도 내가 보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오히려 아들 요나단이 하나님과 백성과 나라를 위해서 살신성인하는 마음의 믿음으로 헌신하고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백성들도 여호와 하나님과 소통이 원활해서 하나님의 뜻을 읽고 있었습니다. 나를 구한 아들 요나단을 죽이겠다는 왕보다 나라를 구한 요나단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해서 나라를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한 영웅의 머리카락 한 올도 땅에 떨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나는 하나님 아버지와 소통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입니까? 요나단처럼 오직 하나님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믿음으로 담대하게 전진합니까?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라를 구한 요나단을 살리기 위해서 왕의 명령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대합니까? 혹시 사울 왕처럼 혈기만 왕성해서 하나님도 백성들과도 불통하면서 큰소리만 치고 되는 일 없이 좌충우돌합니까? 괜히 아는 척하지 말고 모르면 물어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사람들과도 소통 잘 하는 강릉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셔서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항상 평강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