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다윗 왕이 이스라엘을 위대한 나라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잇대와 같은 충신들의 충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삼하 15:21)
잇대의 고백을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동고동락(同苦同樂),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장군 잇대같은 마음가짐과 태도로 교회를 섬기는 충성스러운 제직들이 많을수록 강릉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질 것입니다. 잇대와 같이 목사님들도, 장로님들도, 안수집사님들도, 권사님들도 이렇게 고백하고, 이렇게 살기 위해 노력할 때 강릉교회는 위대한 하나님의 부흥과 성장과 은혜와 복을 누릴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충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충성할 것을 기대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2) 라고 고백한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는 오직 충성해야 합니다. 충성하지 않거나,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교회에서 어떤 직분도 맡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직분의 본질입니다.
특별히 강릉교회에서 직분을 받는 것은 강릉교회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잔치상에 숟가락만 들고, 자리에 앉아 대접받는 것이 아닙니다. 강릉교회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전통을 잘 이어가고, 앞으로 새롭게 일어날 여러 가지 사역들을 기쁨으로 자원하여 헌신, 충성, 순종으로 섬기기 위해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 교사, 구역장,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자릿값을 해야 합니다. 직분 값을 해야 합니다.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나 자신이, 내 가족이, 나아가 우리 교회에 복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형통의 은혜를 허락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인 다니엘 6장의 말씀은 안 믿는 사람도 다 아는 믿음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믿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인생은 소설입니다. 소설 같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파란만장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특별히 죽을 뻔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사람들은 더욱 남은 인생을 값지게 살아갈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이 덤인 줄 알고 그 누구보다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다니엘은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종으로 팔려가서 이국 땅에서 평생을 살았고, 나아가 그곳에서 총리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에는 그의 인생 길을 지키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형통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충성했던 다니엘을 친히 보호하시고, 다니엘에게 형통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다니엘처럼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모든 강릉 가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종으로 잡혀갔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한 삶을 살았던 다니엘처럼, 언제나 이 세상의 온갖 환난과 역경들과 인생의 장애물들을 넉넉히 이기며, 하나님의 형통을 경험하는 강릉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과거 다윗 왕이 이스라엘을 위대한 나라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잇대와 같은 충신들의 충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삼하 15:21)
잇대의 고백을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동고동락(同苦同樂),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장군 잇대같은 마음가짐과 태도로 교회를 섬기는 충성스러운 제직들이 많을수록 강릉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질 것입니다. 잇대와 같이 목사님들도, 장로님들도, 안수집사님들도, 권사님들도 이렇게 고백하고, 이렇게 살기 위해 노력할 때 강릉교회는 위대한 하나님의 부흥과 성장과 은혜와 복을 누릴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충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충성할 것을 기대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2) 라고 고백한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는 오직 충성해야 합니다. 충성하지 않거나,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교회에서 어떤 직분도 맡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직분의 본질입니다.
특별히 강릉교회에서 직분을 받는 것은 강릉교회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잔치상에 숟가락만 들고, 자리에 앉아 대접받는 것이 아닙니다. 강릉교회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전통을 잘 이어가고, 앞으로 새롭게 일어날 여러 가지 사역들을 기쁨으로 자원하여 헌신, 충성, 순종으로 섬기기 위해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 교사, 구역장,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자릿값을 해야 합니다. 직분 값을 해야 합니다.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나 자신이, 내 가족이, 나아가 우리 교회에 복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형통의 은혜를 허락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인 다니엘 6장의 말씀은 안 믿는 사람도 다 아는 믿음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믿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인생은 소설입니다. 소설 같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파란만장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특별히 죽을 뻔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사람들은 더욱 남은 인생을 값지게 살아갈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이 덤인 줄 알고 그 누구보다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다니엘은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종으로 팔려가서 이국 땅에서 평생을 살았고, 나아가 그곳에서 총리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에는 그의 인생 길을 지키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형통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충성했던 다니엘을 친히 보호하시고, 다니엘에게 형통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다니엘처럼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모든 강릉 가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종으로 잡혀갔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한 삶을 살았던 다니엘처럼, 언제나 이 세상의 온갖 환난과 역경들과 인생의 장애물들을 넉넉히 이기며, 하나님의 형통을 경험하는 강릉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