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모에게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지금 마흔이 넘었는데,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미국 플로리다 Tampa라는 도시로 이사 갔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한국말을 잘 따라했는데,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한국말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고모가 집에서는 한국말만 하라고 시켜도 이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한국말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아주 조금 알아듣기는 하지만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가끔 한국을 방문하거나 사촌들을 만나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무척 갑갑해 합니다. 그러면서 왜 엄마는 자기에게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았느냐며 원망합니다.
남을 탓하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부모, 형제, 친구, 세상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이 괴롭고 힘든 것이 아닙니다. 전부 나 자신이 책임 있게 살지 않은 결과가 오늘의 나입니다. 내가 그때,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 오늘 내가 그 열매를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씨앗을 뿌릴 때는 귀찮고 힘이 듭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은 이 씨앗을 심고, 냄새나는 거름을 주고, 땡볕에 김을 매면서, 언제 이 열매를 따 먹을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땀을 흘리고 힘든 이 일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처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24년 4월은 여러분의 인생의 어떤 때입니까? 오늘 해야 할일을 최선을 다해 경주하셔야 합니다. 게으름 피우면 안 됩니다. 부지런히, 열심히, 성실하게 땀과 눈물과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창초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심은대로 거두는법>을 피조물들에게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심은 대로 거둔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들의 죄가 세상에 차고 넘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께서 예고나 경고도 없이 즉각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기 위해서 노아를 부르셨습니다. 물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방주를 만들게 하고, 모든 짐승들을 태우고, 죄악 가운데 빠져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도 계속해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게 했습니다. "전능하신 야훼 하나님께서 40주야로 하늘 궁창의 비를 다 솥아 부으시고 땅속의 물을 다 솟아나게 하셔서 대홍수로 심판하실 것이다." 축구장 보다 더 큰 방주를 여덟 식구가 수십년 걸쳐 만들 동안,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판하고 욕을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노아의 세 아들과 며느리들 중 확신하지 못한 사람들도 불평하면서 반대했을 지도 모릅니다. 노아는 그런 가족들을 어르고 달래며 오로지 방주를 만드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드디어 방주를 완공하고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짐승들을 선택해서 태웠습니다. 방주를 만들면서 만나는 사람들, 찾아와서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물의 심판을 이야기를 입에 거품 물고 전해도 그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았습니다.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장마철에 늘 오는 그런 비가 오나보다 했을 겁니다. 그런데 비가 일주일 내내 우리식으로 양동이로 퍼붓듯이 비가 내렸습니다. 무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비가 일주일을 지나, 열흘, 보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퍼부었습니다. 저지대는 이미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더 높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피난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살던 집과 그 동안 즐기던 모든 곳은 전부 수장되었습니다. 피난 온 산도 계속 물이 차올라 매일 더 높은 산꼭대기로 피난가지만 물을 계속 차올랐습니다. 사방에 짐승의 사체가 떠돌아다니고, 사람들도 죽어갑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로 매일 지옥같은 피난길이었습니다.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창 7:17-22)
아무리 읽고 읽어도 상상이 안 되었는데, 요즘 돌변한 기후 위기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기상변화를 보면서 조금은 상상이 됩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아비귀환, 재난에서 살아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방송으로 보면서 노아 홍수심판 때에는 저들보다 비교할 수 없는, 아비귀환 곧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Bible의 노아시대의 홍수심판의 영화를 보면 우리의 상상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하지만 방주 문이 닫힌 후에는 더 이상 사람을 태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방주에 물이 들어차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방주가 침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돛도 없고, 키도 없고, 동력도 없고, 닻도 없는 방주이기 때문에 정말 말 그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방주의 이 모습을 보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물이 차오르자 그때서야 방주를 타기 위해서, 방주를 태워달라고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잡을 것 하나 없는 방주를 붙들고 아우성쳤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노아와 일곱 식구들의 마음은 미치는 겁니다.
거반 죽여서라도 태워갑시다.
제 생각입니다. 당시에 오늘날처럼 마취제나 수면제와 같은 약물이 있었으면, 방주 문을 닫기 전에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해서 음식에 수면제 섞어 먹여 잠들었을 때, 꽁꽁 묶어서 방주 캄캄한 방에 가둬 두었다가 방주가 떠오르면 그 때 풀어주고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갈 것입니다. 그 시절에는 약물이 없었으니 초대해서 술을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퍼 먹여서 인사불성이 되면 그 때, 밧줄로 꽁꽁 묶어서 방주에 태워놓는 겁니다. 그리고 정신 차리면 굶어 죽지 않도록 먹여주고, 먹기를 거부하면 굶기는 겁니다. 건강한 사람은 3주 정도는 굶겨도 죽지 않습니다. 열흘만 참으면 온 세상이 물이 차오르니깐 그 때 풀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방주에서 내리든 말든 맘대로 하라고 하면 아마 한 사람도 방주에서 내리지 않을 겁니다.
독일의 북부 함부르크시에서 또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뤼벡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그 도시에 유명한 St. Marien 성모 마리아 성당이었는데 지금은 루터교회입니다. 그 교회 벽에 <Blame Me Not>이라는 제목의 작자미상의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주인이라 부르면서 순종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 바라보지 않으며
너희는 나를 길이라 부르면서 따라 걷지 않고
너희는 나를 생명이라 부르면서 갈망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지혜라 부르면서 따르지 않고
너희는 나를 공정하다 하면서 사랑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부유하다 하면서 내게 구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영원하다 하면서 찾지 않으며
너희는 나를 자비롭다 하면서 신뢰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존귀하다 하면서 섬기지 않고
너희는 나를 강하다 하면서 존경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의롭다 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내가 너희를 심판할 때, 나를 탓하지 말라. 원망하지 말라.
혹시 지옥에 가기를 결단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습니까? 거반 죽여서라도 태워갑시다. 그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강릉 가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미국의 고모에게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지금 마흔이 넘었는데,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미국 플로리다 Tampa라는 도시로 이사 갔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한국말을 잘 따라했는데,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한국말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고모가 집에서는 한국말만 하라고 시켜도 이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한국말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아주 조금 알아듣기는 하지만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가끔 한국을 방문하거나 사촌들을 만나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무척 갑갑해 합니다. 그러면서 왜 엄마는 자기에게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았느냐며 원망합니다.
남을 탓하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부모, 형제, 친구, 세상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이 괴롭고 힘든 것이 아닙니다. 전부 나 자신이 책임 있게 살지 않은 결과가 오늘의 나입니다. 내가 그때,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 오늘 내가 그 열매를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씨앗을 뿌릴 때는 귀찮고 힘이 듭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은 이 씨앗을 심고, 냄새나는 거름을 주고, 땡볕에 김을 매면서, 언제 이 열매를 따 먹을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땀을 흘리고 힘든 이 일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처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24년 4월은 여러분의 인생의 어떤 때입니까? 오늘 해야 할일을 최선을 다해 경주하셔야 합니다. 게으름 피우면 안 됩니다. 부지런히, 열심히, 성실하게 땀과 눈물과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창초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심은대로 거두는법>을 피조물들에게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심은 대로 거둔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들의 죄가 세상에 차고 넘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께서 예고나 경고도 없이 즉각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기 위해서 노아를 부르셨습니다. 물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방주를 만들게 하고, 모든 짐승들을 태우고, 죄악 가운데 빠져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도 계속해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게 했습니다. "전능하신 야훼 하나님께서 40주야로 하늘 궁창의 비를 다 솥아 부으시고 땅속의 물을 다 솟아나게 하셔서 대홍수로 심판하실 것이다." 축구장 보다 더 큰 방주를 여덟 식구가 수십년 걸쳐 만들 동안,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판하고 욕을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노아의 세 아들과 며느리들 중 확신하지 못한 사람들도 불평하면서 반대했을 지도 모릅니다. 노아는 그런 가족들을 어르고 달래며 오로지 방주를 만드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드디어 방주를 완공하고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짐승들을 선택해서 태웠습니다. 방주를 만들면서 만나는 사람들, 찾아와서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물의 심판을 이야기를 입에 거품 물고 전해도 그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았습니다.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장마철에 늘 오는 그런 비가 오나보다 했을 겁니다. 그런데 비가 일주일 내내 우리식으로 양동이로 퍼붓듯이 비가 내렸습니다. 무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비가 일주일을 지나, 열흘, 보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퍼부었습니다. 저지대는 이미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더 높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피난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살던 집과 그 동안 즐기던 모든 곳은 전부 수장되었습니다. 피난 온 산도 계속 물이 차올라 매일 더 높은 산꼭대기로 피난가지만 물을 계속 차올랐습니다. 사방에 짐승의 사체가 떠돌아다니고, 사람들도 죽어갑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로 매일 지옥같은 피난길이었습니다.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창 7:17-22)
아무리 읽고 읽어도 상상이 안 되었는데, 요즘 돌변한 기후 위기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기상변화를 보면서 조금은 상상이 됩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아비귀환, 재난에서 살아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방송으로 보면서 노아 홍수심판 때에는 저들보다 비교할 수 없는, 아비귀환 곧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Bible의 노아시대의 홍수심판의 영화를 보면 우리의 상상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하지만 방주 문이 닫힌 후에는 더 이상 사람을 태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방주에 물이 들어차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방주가 침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돛도 없고, 키도 없고, 동력도 없고, 닻도 없는 방주이기 때문에 정말 말 그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방주의 이 모습을 보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물이 차오르자 그때서야 방주를 타기 위해서, 방주를 태워달라고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잡을 것 하나 없는 방주를 붙들고 아우성쳤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노아와 일곱 식구들의 마음은 미치는 겁니다.
거반 죽여서라도 태워갑시다.
제 생각입니다. 당시에 오늘날처럼 마취제나 수면제와 같은 약물이 있었으면, 방주 문을 닫기 전에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해서 음식에 수면제 섞어 먹여 잠들었을 때, 꽁꽁 묶어서 방주 캄캄한 방에 가둬 두었다가 방주가 떠오르면 그 때 풀어주고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갈 것입니다. 그 시절에는 약물이 없었으니 초대해서 술을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퍼 먹여서 인사불성이 되면 그 때, 밧줄로 꽁꽁 묶어서 방주에 태워놓는 겁니다. 그리고 정신 차리면 굶어 죽지 않도록 먹여주고, 먹기를 거부하면 굶기는 겁니다. 건강한 사람은 3주 정도는 굶겨도 죽지 않습니다. 열흘만 참으면 온 세상이 물이 차오르니깐 그 때 풀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방주에서 내리든 말든 맘대로 하라고 하면 아마 한 사람도 방주에서 내리지 않을 겁니다.
독일의 북부 함부르크시에서 또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뤼벡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그 도시에 유명한 St. Marien 성모 마리아 성당이었는데 지금은 루터교회입니다. 그 교회 벽에 <Blame Me Not>이라는 제목의 작자미상의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주인이라 부르면서 순종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 바라보지 않으며
너희는 나를 길이라 부르면서 따라 걷지 않고
너희는 나를 생명이라 부르면서 갈망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지혜라 부르면서 따르지 않고
너희는 나를 공정하다 하면서 사랑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부유하다 하면서 내게 구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영원하다 하면서 찾지 않으며
너희는 나를 자비롭다 하면서 신뢰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존귀하다 하면서 섬기지 않고
너희는 나를 강하다 하면서 존경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의롭다 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내가 너희를 심판할 때, 나를 탓하지 말라. 원망하지 말라.
혹시 지옥에 가기를 결단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습니까? 거반 죽여서라도 태워갑시다. 그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강릉 가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