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종려주일이고, 내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고난주간입니다.
종려주일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입성할 때, 추종하든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예수님 가시는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손에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찬양하며 예수님을 환영한 것을 기념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심의 출발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이런 큰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목요일 밤에 제자들과 이 땅에서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서 기도하신 후에 가룟인 유다의 배신으로 군병들에게 붙잡혀서 밤새 심문을 받으시고,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생으로 못을 박았으니 바로 돌아가시지 않습니다. 온 몸에서 피와 물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고통을 고스란히 받으시는 것입니다. 여섯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신 후에, 오후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때 태양은 빛을 잃고 하늘은 흑암으로 슬픔을 알리고, 성전의 휘장도 두 갈레로 찢어졌습니다. 안식일까지 시신을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것은 율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신실한 믿음의 사람 아리마대 요셉이 총독에게 간청을 하고 장례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위해서 준비해 둔 빈 무덤을 제공했고, 니고데모와 함께 향유를 시신에 바르고 간략하게 두 사람만의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해가 지고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서산에 넘어가는 순간부터 시작되어서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의 하루가 안식일입니다. 저녁에 시작에서 다음날 저녁까지입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해지기 전에 무덤에 장례식을 치루셨고, 토요일은 무덤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밤이 지나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심을 세 여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안식일 후 첫날 새벽 일요일 미명에 가장 먼저 무덤을 찾아온 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셨습니다.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유대인의 안식일도 지켜야 하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 주일도 지켜야 했습니다. 그렇다가 교회는 유대인의 안식일을 부활하신 주일로 온전히 지키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을 주일을 예배의 날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양합니다.
인간이 만든 공산품은 똑같을 수 있어도 하나님의 창조하신 만물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증거가 지문입니다. 사람의 지문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지문으로 사람을 확인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 중에 유일한 교회는 단 한 교회도 없습니다. 교단도 다양하고, 교회들도 정말 다양하게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섬깁니다. 수천명의 강릉가족들의 믿음도 다양합니다. 믿음의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천차만별입니다. 믿음의 색깔은 빨강색입니까? 파랑색? 믿음은 모양은 네모입니까? 세모? 다양성을 그렇게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도 믿음도 사물도 각양각색이요. 천차만별입니다. 이모양 저모양, 이런 색깔, 저런 색깔, 이런 향기, 저런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유일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도 유일하신 분입니다.
성령 하나님도 유일하신 분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과 신앙은 유일하기 때문에 다른 우상들과 타협이 불가능합니다. 타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상을 섬기는 다른 종교들은 왜 기독교만 그렇게 배타적이냐? 서로 인정하고 같이 살다가 좋은 곳에 같이 가면 되지 않느냐?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폐쇄적이며 이기주의라며 폄하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우상을 섬기는 심판으로 형벌받을 종교들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지 사람을 거부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사랑과 용서와 섬김과 나눔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 땅을 넘어서 영원한 천국, 영생을 붙들고 삽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를 믿으며,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영생의 길이요, 변하지 않는 진리요, 믿는 자들에게 차별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어머니가 여러분인 사람있습니까? 아버지가 여러명인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해도, 사별을 해도 엄마 아빠는 태양 아래 한 분 뿐입니다. 재혼을 하면 엄마와 함께 사는 아저씨, 아빠와 함께 사는 아주머니일 뿐입니다.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엄마 아빠라 불러주는 것입니다. 진짜 엄마 아빠는 아닙니다. 하늘에 계시거나 땅 위에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유일성은 양보와 타협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택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예수 그리스도도, 성령 하나님도 한분 뿐입니다.
믿습니까? 믿으셔야 합니다.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강요가 아닙니다. 여러분 각자의 선택, 결단입니다. 믿음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왜 독생자를 십자가에 오르게 하셨습니까?
인류의 죄를 다른 방법으로 속죄하실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까?
왜 십자가 뿐입니까?
우리 조상들은 악한 인간의 죄성을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죄성은 짐승들보다도 못한 인간으로 전락시킵니다. 메스미디어를 통해서 전해지는 과연 저런 악한 것들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검은 머리의 짐승>은 거두지도 말라고 경고합니다. 인간들에게 배신을 당하지 않도록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들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시는데 가장 낮은 짐승의 우릿간 구유에 찾아오셨습니다. 해산한 방 한칸이 없었습니다. 따뜻한 이불한 쪽 없었습니다. 바람을 막아줄 제대로 된 문짝도 없었습니다. 세상 모두가 외면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가장 낮고 천한 곳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마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아멘~!
가장 낮고 천한 짐승의 우릿간에서 태어나시어 가장 낮고 천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마27:35-44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아멘~!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는 강도들로부터도 욕을 먹습니다.
십자가
로마 제국시대에 쓰인 죄수들을 처형하는 십자가형의 형틀이었다. 십자가 처형은 대역죄인, 반사회적인 죄인들에게만 선고하고 집행했습니다. 십자가에 처형은 모든 백성들에게 보여줌으로 복종과 충성을 유도했습니다. 못을 박아 처형하기도 하고, 그냥 매달아 굶겨 처형하기도 합니다. 목숨이 끊어지면 시신을 내려서 장례식을 치룰 수 있게 허락하기고 하고, 때로는 그냥 십자가에 매달아서 짐승들의 밥이 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처형은 성의 높은 언덕위나, 성에 들어오는 입구 길목에서 처형을 하고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매달아 놓았습니다. 팔과 가슴을 매다는 가로축은 <파티불룸(Patibulum)>이라고 부릅니다. Patibulum은 사형수가 직접 메고 처형장까지 가는 가로 기둥입니다. 이Patibulum에 죄수를 처형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볼수 있도록 높이 매달 수 있는 세로기둥은 <스티페스(Stipes)>고 합니다. 사형장에 이미 준비되있습니다. 땅바닥에서 죄수를 처형한 후에 일으켜 세우는 것일 보편적인 처형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700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53장 말씀에
왜 십자가뿐인지? 왜 십자가에 오르셨는지? 말씀합니다.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아멘.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내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고난주간입니다.
종려주일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입성할 때, 추종하든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예수님 가시는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손에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찬양하며 예수님을 환영한 것을 기념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심의 출발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이런 큰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목요일 밤에 제자들과 이 땅에서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서 기도하신 후에 가룟인 유다의 배신으로 군병들에게 붙잡혀서 밤새 심문을 받으시고,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생으로 못을 박았으니 바로 돌아가시지 않습니다. 온 몸에서 피와 물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고통을 고스란히 받으시는 것입니다. 여섯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신 후에, 오후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때 태양은 빛을 잃고 하늘은 흑암으로 슬픔을 알리고, 성전의 휘장도 두 갈레로 찢어졌습니다. 안식일까지 시신을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것은 율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신실한 믿음의 사람 아리마대 요셉이 총독에게 간청을 하고 장례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위해서 준비해 둔 빈 무덤을 제공했고, 니고데모와 함께 향유를 시신에 바르고 간략하게 두 사람만의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해가 지고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서산에 넘어가는 순간부터 시작되어서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의 하루가 안식일입니다. 저녁에 시작에서 다음날 저녁까지입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해지기 전에 무덤에 장례식을 치루셨고, 토요일은 무덤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밤이 지나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심을 세 여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안식일 후 첫날 새벽 일요일 미명에 가장 먼저 무덤을 찾아온 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셨습니다.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유대인의 안식일도 지켜야 하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 주일도 지켜야 했습니다. 그렇다가 교회는 유대인의 안식일을 부활하신 주일로 온전히 지키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을 주일을 예배의 날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양합니다.
인간이 만든 공산품은 똑같을 수 있어도 하나님의 창조하신 만물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증거가 지문입니다. 사람의 지문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지문으로 사람을 확인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 중에 유일한 교회는 단 한 교회도 없습니다. 교단도 다양하고, 교회들도 정말 다양하게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섬깁니다. 수천명의 강릉가족들의 믿음도 다양합니다. 믿음의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천차만별입니다. 믿음의 색깔은 빨강색입니까? 파랑색? 믿음은 모양은 네모입니까? 세모? 다양성을 그렇게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도 믿음도 사물도 각양각색이요. 천차만별입니다. 이모양 저모양, 이런 색깔, 저런 색깔, 이런 향기, 저런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유일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도 유일하신 분입니다.
성령 하나님도 유일하신 분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과 신앙은 유일하기 때문에 다른 우상들과 타협이 불가능합니다. 타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상을 섬기는 다른 종교들은 왜 기독교만 그렇게 배타적이냐? 서로 인정하고 같이 살다가 좋은 곳에 같이 가면 되지 않느냐?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폐쇄적이며 이기주의라며 폄하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우상을 섬기는 심판으로 형벌받을 종교들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지 사람을 거부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사랑과 용서와 섬김과 나눔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 땅을 넘어서 영원한 천국, 영생을 붙들고 삽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를 믿으며,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영생의 길이요, 변하지 않는 진리요, 믿는 자들에게 차별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어머니가 여러분인 사람있습니까? 아버지가 여러명인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해도, 사별을 해도 엄마 아빠는 태양 아래 한 분 뿐입니다. 재혼을 하면 엄마와 함께 사는 아저씨, 아빠와 함께 사는 아주머니일 뿐입니다.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엄마 아빠라 불러주는 것입니다. 진짜 엄마 아빠는 아닙니다. 하늘에 계시거나 땅 위에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유일성은 양보와 타협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택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예수 그리스도도, 성령 하나님도 한분 뿐입니다.
믿습니까? 믿으셔야 합니다.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강요가 아닙니다. 여러분 각자의 선택, 결단입니다. 믿음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왜 독생자를 십자가에 오르게 하셨습니까?
인류의 죄를 다른 방법으로 속죄하실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까?
왜 십자가 뿐입니까?
우리 조상들은 악한 인간의 죄성을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죄성은 짐승들보다도 못한 인간으로 전락시킵니다. 메스미디어를 통해서 전해지는 과연 저런 악한 것들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검은 머리의 짐승>은 거두지도 말라고 경고합니다. 인간들에게 배신을 당하지 않도록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들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시는데 가장 낮은 짐승의 우릿간 구유에 찾아오셨습니다. 해산한 방 한칸이 없었습니다. 따뜻한 이불한 쪽 없었습니다. 바람을 막아줄 제대로 된 문짝도 없었습니다. 세상 모두가 외면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가장 낮고 천한 곳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마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아멘~!
가장 낮고 천한 짐승의 우릿간에서 태어나시어 가장 낮고 천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마27:35-44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아멘~!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는 강도들로부터도 욕을 먹습니다.
십자가
로마 제국시대에 쓰인 죄수들을 처형하는 십자가형의 형틀이었다. 십자가 처형은 대역죄인, 반사회적인 죄인들에게만 선고하고 집행했습니다. 십자가에 처형은 모든 백성들에게 보여줌으로 복종과 충성을 유도했습니다. 못을 박아 처형하기도 하고, 그냥 매달아 굶겨 처형하기도 합니다. 목숨이 끊어지면 시신을 내려서 장례식을 치룰 수 있게 허락하기고 하고, 때로는 그냥 십자가에 매달아서 짐승들의 밥이 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처형은 성의 높은 언덕위나, 성에 들어오는 입구 길목에서 처형을 하고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매달아 놓았습니다. 팔과 가슴을 매다는 가로축은 <파티불룸(Patibulum)>이라고 부릅니다. Patibulum은 사형수가 직접 메고 처형장까지 가는 가로 기둥입니다. 이Patibulum에 죄수를 처형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볼수 있도록 높이 매달 수 있는 세로기둥은 <스티페스(Stipes)>고 합니다. 사형장에 이미 준비되있습니다. 땅바닥에서 죄수를 처형한 후에 일으켜 세우는 것일 보편적인 처형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700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53장 말씀에
왜 십자가뿐인지? 왜 십자가에 오르셨는지? 말씀합니다.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