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3. 23 요한복음 1장 35~51절 [한 동네 사람들]

3월 30일 강릉시민 초청주일을 위한 여덟번째 말씀

다음 주일은 강릉교회가 2025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행동하는 날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떤 마음과 믿음으로 살 것인지? 행동하는 날입니다. 하나님도 어떤 제약도 조건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어떤 제약도 조건도 내 걸지 않습니다. 내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뿐입니다. 강릉교회가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날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질 것입니다. 반응은 초대받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이제 막 시작하셨을 때입니다.

세례 요한이 제자 두명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는 예수님을 첫눈에 알아보고는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을 하자 함께 서 있던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꿈에도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어린 양=메시야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전도의 원조를 확인하면서 은혜받으시길 축복합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 중 한 사람은 안드레였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안드레는 형 시몬을 전도했습니다. 가족을 가장 먼저 전도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예수님이 2025년 3월에 지금 강릉에 계신다면 우리도 안드레처럼 부모형제를 모시고 교회 오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권세있는 말씀과 온갖 종류의 환자들을 치료해 주시고, 일생동안 이런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본적도 없고, 더군다나 직접 체험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강릉교회에서 온갖 종류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치료받았다는 소문이 나면 우리는 예배당에 들어올 수도 없을 겁니다. 이런 온갖 기적과 이적이 나타난는 소문만 나면 8도 강산을 넘어서 전세계에서 질병의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은 전 재산을 다 팔아서 찾아올 겁니다. 굳이 내가 부모형제들에게 예수님께로 가자고, 강릉교회 가자고 초청하지 않아도 먼저 빨리 가자고 성화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과 상황은 갑갑합니다. 전도하기 제일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가족입니다.

왜냐하면 가족은 나의 모든 단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좋은 모습만 알고 있어도 전도하기 어려운데 나의 모든 단점과 약점을 다 알고 있는 가족들은 나만 통해 교회와 예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전도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가족을 전도하면 반응을 똑같습니다. <니 꼬라지를 봐라. 너나 잘 믿으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자랑스럽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속앓이만 합니다. 가족의 영혼을 포기할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갑갑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인 능력만 바라볼 뿐입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을 전도했습니다. 이튿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서 빌립을 만났습니다.

빌립을 보자 예수님은 빌립의 믿음과 영성을 보시고 제자가 되라고 <나를 따르라.> 부르셨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르기 전에 절친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친구인 나다나엘에게 <이보게 나다나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메시야>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야.> 내가 나사렛 청년 랍비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그분 메시야라고 소식을 전합니다. 모세 율법에 정통하며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던 나다나엘이 반문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와서 보라>

 

이처럼 우리 주변에 아주 博學多識한 똑똑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웬만큼 설명해도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갇혀있기 때문에 영생의 복음을 받아드릴 심령이 옥토가 되지 않았습니다. 율법에 능통한 친구 나다나엘인지라 빌립은 긴 설명을 하지 않고 <그러면 나와 함께 나사렛 예수님께 가서 너의 두 눈으로 그분을 보고, 말씀을 듣고, 네가 판단해라.> 청합니다.

우리 주위에도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부도 나보다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돈도 많고, 인물도 좋고, 인간적으로 탁월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이 듭니다. 그때는 빌립의 전도방법입니다.

<와 보라.><직접와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해 봐라.>

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속해 주심도 확신합니다. 하지만 말로 설명하려니 이 영적인 체험을 내 느낌대로 내 믿음을 말로 설명이 잘 되지 않습니다. 친구를 설득하려다 오히려 내가 무식하게 예수 믿는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 벤허는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작품입니다.

원작은 소설 벤허(Ben Her)를 쓴 작가는 Lewis Wallace입니다.

Lewis Wallace는 1827년 미국 인디애나州 프랭크린 카운티 브룩빌에서 태어나, 글쓰기에 재능도 있고 좋아했습니다. 1861년 남북전쟁 시에는 인디애나 주 연대장으로 도넬슨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장군이 되었는데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그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그는 유명한 무신론자 잉거솔(Robert G. Ingersoll)대령이 찾아와서 웰리스에게 <기독교의 가르침은 전부 거짓말이고 쓸데 없는 것들이며, 기독교는 믿어서는 안되는 거짓 종교임을 증명하는 소설을 쓰면 역사에 다시 없는 위대한 베스트 셀러가 될 것>이라고 충동질을 했습니다. 감동받은 웰리스는 성경의 허구성을 철저하게 파헤쳐서 성경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며 거짓임을 밝히고, 예수와 교회에 사로잡혀 있는 국민들을 해방시키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Bible을 자세히 읽어서 거짓되고 허황된 모든 내용을 찾아낸 다음에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웰리스가 Bible을 읽으면 읽을수록 거짓과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Bible에 기록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죄인된 인간을 사랑하시는 진리를 발견합니다. 웰리스는 결국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편지인 Bible 앞에 무릎을 꿇고 부르짖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십니다!>

기독교의 거짓과 허구를 찾아내서 무지몽매한 그리스도인을 정신차리게 할 목적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과 은혜의 진리앞에 회개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월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그리는 소설을 쓰기 위해 5년간의 광범위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기도하면서, 1880년 《Ben-Hur:A Tale of the Christ)》를 완성합니다.

<벤허>에 감명받은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은, 루이스 웰리스 장군을 투르키에 공사로 임명했고, 4년 동안 임무를 수행한 후에, 귀국하여 강연과 저술 활동에 힘쓰다 1905년 자서전을 집필하던 중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안드레, 안드레의 형 시몬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은 한 동네 사람들이었습니다. 형을 전도하고, 친구를 전도했습니다.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듣고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감화 없이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성령 하나님의 감동감화를 믿고 안드레와 빌립처럼 가족과 친구들, 한 동네 사람들을 초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