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가 기록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나무와 열매는 하나이다. 나무는 열매로 자신이 무슨 나무인지 증명하고 열매는 나무를 증명하는 증거이다. 그래서 나무와 열매는 하나이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3~45).
우리는 부모님을 쏙 빼닮은 아들, 딸들을 <붕어빵>이라고 부릅니다. 붕어빵은 똑같은 틀에서 구워내기 때문에 정말 똑같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은 동태보복의 가치관으로 살지만, 하나님 나라, 천국의 백성될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된다. 새로운 천국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이겨야 한다. 그것은 자비-사랑-용서-관용(수용성)의 가치관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은 <반세속적인 사람>입니다.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것도 힘이 드는데, 세상이 반 세속적인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사는 우리들을 가만 내버려둘 리 없습니다. 핍박하고 조롱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멸시 천대를 당하면서 참고 또 참다가 어느 날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똑같이 <동태보복-복수혈전>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
이 세상의 대원칙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기 위해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합시다.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합시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것과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 받은 사람이 감동을 하면 반드시 감동받은 것을 잊지 않고 때가 되면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하기 때문입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눅 14:12~14).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강릉 가족 여러분~!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을 합시다.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좋은 것과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비롭게 삽시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온전하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은 원수까지 사랑하시고 영생의 구원을 허락하심같이 원수까지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온전함을 누가는 자비라고 말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같은 뜻입니다.
자비(慈悲)=남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이 온전한 사랑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가엾게 여기고 끝없는 제한 없는 사랑과 자비가 온전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출 34: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 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잠 24:17).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골 3:13, 엡 4:32).
사랑 - 긍휼 - 용서 - 관용 - 자비
이 단어들은 다른 표현 같은 뜻과 내용입니다. 사랑 없는 긍휼은 없고, 긍휼이 없는 용서도 없고, 용서가 없는 관용도 없고, 관용이 빠진 자비도 없습니다. 자비가 빠진 사랑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같은 뜻과 의미이면서 다르게 표현된 것입니다.
사랑, 긍휼, 용서, 관용, 자비는 십자가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든 것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사랑과 구원과 영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릉교회도 십자가로 보여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도 십자가로 모든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읍시다.
<심은 대로 거둔다.> <아버지를 닮아 자비로운 자가 되라.>는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 어버지께서 갚아 주시는 은혜와 복으로 결론을 말씀합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7~38).
강릉교회는 이미 받았습니다. 65년 전에 60명이 시작한 교회가 65년 만에 이처럼 수천 명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공동체로 부흥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고 멈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20만 명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20만 명이 맘대로 지옥에 가도록 내 버려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예배자로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 받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복을 받아 살고 계신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선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받았고 구원을 받았고 복을 받았는데 어떻게 전도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강릉 가족 여러분~! 자비와 관용과 용서와 긍휼과 사랑으로 삽시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동태보상으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강릉 시민 20만 명의 생명을 살리고 예배자를 세우는 여러분의 남은 삶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가 기록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나무와 열매는 하나이다. 나무는 열매로 자신이 무슨 나무인지 증명하고 열매는 나무를 증명하는 증거이다. 그래서 나무와 열매는 하나이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3~45).
우리는 부모님을 쏙 빼닮은 아들, 딸들을 <붕어빵>이라고 부릅니다. 붕어빵은 똑같은 틀에서 구워내기 때문에 정말 똑같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은 동태보복의 가치관으로 살지만, 하나님 나라, 천국의 백성될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된다. 새로운 천국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이겨야 한다. 그것은 자비-사랑-용서-관용(수용성)의 가치관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은 <반세속적인 사람>입니다.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것도 힘이 드는데, 세상이 반 세속적인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사는 우리들을 가만 내버려둘 리 없습니다. 핍박하고 조롱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멸시 천대를 당하면서 참고 또 참다가 어느 날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똑같이 <동태보복-복수혈전>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
이 세상의 대원칙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기 위해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합시다.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합시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것과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 받은 사람이 감동을 하면 반드시 감동받은 것을 잊지 않고 때가 되면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하기 때문입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눅 14:12~14).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강릉 가족 여러분~!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을 합시다.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좋은 것과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비롭게 삽시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온전하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은 원수까지 사랑하시고 영생의 구원을 허락하심같이 원수까지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온전함을 누가는 자비라고 말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같은 뜻입니다.
자비(慈悲)=남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이 온전한 사랑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가엾게 여기고 끝없는 제한 없는 사랑과 자비가 온전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출 34: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 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잠 24:17).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골 3:13, 엡 4:32).
사랑 - 긍휼 - 용서 - 관용 - 자비
이 단어들은 다른 표현 같은 뜻과 내용입니다. 사랑 없는 긍휼은 없고, 긍휼이 없는 용서도 없고, 용서가 없는 관용도 없고, 관용이 빠진 자비도 없습니다. 자비가 빠진 사랑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같은 뜻과 의미이면서 다르게 표현된 것입니다.
사랑, 긍휼, 용서, 관용, 자비는 십자가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든 것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사랑과 구원과 영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릉교회도 십자가로 보여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도 십자가로 모든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읍시다.
<심은 대로 거둔다.> <아버지를 닮아 자비로운 자가 되라.>는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 어버지께서 갚아 주시는 은혜와 복으로 결론을 말씀합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7~38).
강릉교회는 이미 받았습니다. 65년 전에 60명이 시작한 교회가 65년 만에 이처럼 수천 명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공동체로 부흥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고 멈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20만 명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20만 명이 맘대로 지옥에 가도록 내 버려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예배자로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 받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복을 받아 살고 계신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선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받았고 구원을 받았고 복을 받았는데 어떻게 전도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강릉 가족 여러분~! 자비와 관용과 용서와 긍휼과 사랑으로 삽시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동태보상으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강릉 시민 20만 명의 생명을 살리고 예배자를 세우는 여러분의 남은 삶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