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9 마태복음 1장 18-25절 [예수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대림절은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고 준비하는 절기이자 더 나아가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구세주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로 준비하고 보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뒤돌아보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주님 만날 준비를 하는 은혜의 시간으로 보내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대림절 첫 주일에 다시 한 번 더 성자 예수님~ 왜? 오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습니까? 무엇을 위해서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오르셨습니까? 무엇을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겁니까? 예수님께만 질문하지 말고 자신에게 한 번 진지하게 질문을 해 보십시오. 이런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유를 제자들에게 이미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왔노라(눅 5:32)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나를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과 이유는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고, 섬기려고 오셨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으며,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생전에 최선을 다해서 강릉시민들의 영혼을 한 명이라도 더 구원의 방주에 태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마 1:18-19)

하나님께서 동정녀 탄생을 방법은 오직 성자 예수님의 탄생에만 적용하셨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일은 불가능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만약에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세상은 혼돈과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규칙에 따라 운용되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 반드시 정상적인 절차와 순서에 따라서 생명을 잉태하고 해산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정녀 탄생의 비법을 다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불가능에서 기쁜 소식으로 태어났습니다. 복음은 모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기쁜소식입니다. 인간의 불가능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불가능의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공동 주인공이 성령 하나님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교회역사는 주역이십니다. 구원의 역사의 실권자입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마리아와 요셉을 찾아와서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말씀하시면서 동업을 요청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찾아와 동업을 요구할 때, 마리아와 요셉은 믿음으로 수용했습니다. 그 영광과 능력을 맛보면 그 분을 향한 마음을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신세계에 빠져있던 인생들이 성령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분과 동업하면서 이 세상을 산 사람들의 믿음 이야기가 Bible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온 우주에서 가장 좋으신 성령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인간은 결코 성공적인 삶, 행복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성령님을 만나면 처녀도 잉태해도 좋소, 잉태한 처녀라도 아내로 맏이 할수 있습니다. 사랑의 구주 예수님을 만나시길 축복합니다. 주님을 만나 진짜 사랑을 알면 목숨이 아깝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만나면 세상에 부러운 것도 아쉬운 것도 없습니다. 어떤 고난과 어떤 역경 속에서도, 어떤 부귀영화도 성령 하나님과의 동업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분을 만남으로 복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성부 하나님의 가장 존귀한 뜻은 임마누엘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일이 된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하심이니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0-23)

임마누엘 =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과 항상 함께 하신다. 그 실체가 죄인인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나의 죄를 씻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오르시기 위해서 육신으로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성탄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우리들처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구속을 완성하시고 빨리 하늘로 오르시고 대신에 온 우주에 편만하신 영이신 보혜사 하나님 성령께서 오셔야 너희들이 복되다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믿음으로 엎드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지금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과 함께 동업하시며 복음행전을 써 내려가고 계십니다.

임마누엘의 필요충분조건은 동업자의 동의가 있어야합니다. 임마누엘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동업자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떤 복음의 동업자라도 절대적으로 믿고 복종이든 순종이든 동의할 때에만 임마누엘의 역사로 응답하십니다.

하늘 아버지의 가장 존귀한 뜻과 계획인 임마누엘을 강릉가족 여러분이 매일 누리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 복음으로 오신 가장 존귀하신 이름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 1:24-25)

복음은 1)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2)천국의 새 생명을 낳는 것이며 3)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로 출발한 복음은 죄인인 인간들의 절대적인 순종, 복종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믿음은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 중에 절제와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절제하는데 불안하지 않고 평안과 희락을 누리면서 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요셉은 신비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인생의 가장 큰 희망과 기대를 품고 매일 매일을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찬양하면서 즐겁고 기쁘게 기다렸습니다.

우리의 이름에는 부모님의 희망사항, 소원을 담아 작명합니다. 최고의 작명가는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사라, 이삭, 이스라엘, 베드로, 사울 등 작명하시고 그 사람의 인생을 복의 근원, 축복의 통로로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예수>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행3:6)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행10:48)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하나님은 먼저 요단강을 건너가서 우리의 장막 칠 곳을 예비하시고,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나와 함께 계시며, 성령 하나님께서는 존귀한 그 이름 예수로 약속하신 하늘의 상과 땅의 기름진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