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잠 28:13 [형통한 삶]

설교자: 김정오 목사


2019년 내 삶에 하나님 은혜가 있길 바란다면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모든 영역에서도 그렇습니다복을 받기 위해서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복을 받을 만한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신명기28장에서도 하나님께서 복 이야기를 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셨던 말씀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신명기 뿐 아니라 성경 곳곳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행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강릉 가족 여러분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시길 원하십니까말씀대로 행하는 믿음의 모습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심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형통케 하시고 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나는 아무것도 드리지 않았는데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그런 일은 없습니다오늘 본문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내 삶이 형통하기를 바란다면 내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이 있기를 바란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 삶이 형통하기를 원한다면 원리는 똑같습니다.

이 원리를 잘 아셔야 합니다항상 내가 먼저 라는 겁니다내가 받을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하고 내가 먼저 심어야 한다는 겁니다오늘 말씀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내 모든 것을 드러내고 순간순간마다 용서를 구하며 나아가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인임을 인정하며 내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정직하게 모든 것을 오픈 할 때 긍휼의 마음을 얻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가면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오히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의 마음으로 나를 안아주십니다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회복시켜 주시고 내 삶의 형통의 은혜를 누리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오늘 본문인 잠언 28장의 내용을 보면 악인과 의인의 대조적인 모습을 비교하면서 그들의 특성과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지 못하고 의인만이 은혜를 누리며 형통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본문에서 말하는 악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는 것을 말니다그렇기 때문에 형통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얻는 자가 의인이라는 말인데 죄를 짓지 않아서 의인이 아니라 똑같이 죄는 짓지만여전히 연약하여 넘어지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께 회개하며 나아오는 자가 의인이라 칭함 받으며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는 겁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단순한 불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엄청난 죄악인것입니다39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죠다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그러나 아담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죄를 짓기는 했지만 제 잘못이 아닙니다핑계를 대었습니다.

 

결국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고 맙니다단순하게 형통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다는 것입니다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형통의 길긍휼의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또 다른 예로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의 삶이 무너지고 영적 상태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무너진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가 고기를 잡던 베드로가 나옵니다.

 철저하게 주님을 배신했습니다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용서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모든 것이 끝났다 생각했고 깊은 절망과 죄책감과 좌절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그가 힘겹게 주님께 나아와 주님을 뵈려는 순간 주님 보다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습니다'숯불'입니다. 불이 집혀져 있는 것입니다요한 복음 219절에서 말하는 숯불은 원어로 안드라키안 입니다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그 때 대제사장 집의 뜰 안에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그 숯불의 단어가 같다는 겁니다원어가 같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저주하던 그 일이 다시 베드로에게 기억되는 순간 더욱 마음이 어렵고 힘겹게 주님 앞에 나왔는데 주저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께서 그의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면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합니다여러분 죄를 자복한다는 것은 내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께 아뢴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내가 죄인임을 아시기 때문에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내 죄를 자복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부끄러움 때문에 죄를 숨기고 아닌 척 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큰 화를 부르게 되고 더 큰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는 장애물입니다아담과 베드로의 모습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베드로역시 사람의 생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용서 받지 못할 것 같은 죄를 지었지만 주님께 죄인임을 인정하며 나아갔을 때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올 한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리시고 은혜가 풍성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 가운데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우리의 삶이 되시도록 날마다 죄인임을 인정하며 회개로 내 모습을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는 은혜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강릉 가족 여러분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얻고 형통의 길을 걷느냐 걷지 못하느냐는 내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냐 그렇지 안냐의 문제입니다죄인임을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죄인임을 부끄러워마시고 하나님 앞에 정직함으로 나아가 관계를 회복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의 복과 긍휼의 마음을 얻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