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6. 룻 2:8-13 [여호와의 날개 아래]

오늘의 말씀은 룻기입니다. 타락과 죄악과 고난과 비극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시대이지만 룻기는 구원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풍성함과 넉넉함과 축복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지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님의 집안이 계속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룻기는 다윗으로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의 가문으로 연결이되며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룻기는 똑같은 시대와 장소를 환경에 있더라도 구별되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시며 만족하게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1.복음을 듣는 것이 시작입니다.

룻기 1장 6절의 말씀입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은혜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룻기는 그 시작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여인이 모압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소문을 듣는데서 룻기는 시작이 됩니다.


들려진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심으로 흉년이 끝나고 고난이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보셨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룻기는 그것을 듣는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내가 나를 돌이키지 못합니다. 내가 결정을 하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심이 우리를 돌이키는 것입니다. 1장 6절에서 돌이키다는 것은 회개를 가르키는 말인데 이 속에는 기대를 품고 돌이키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믿음을 품고 돌이킬 때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내 딸아라고 불러주십니다.

본문 8절 말씀입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가 함께 있으라’ 아멘


보아스가 룻을 향해 ‘내 딸아’라고 부릅니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 룻은 이방여인, 모압여인, 과부였습니다. 그런데 ‘내 딸아...’라고 부릅니다. 이 한마디가 룻의 딱지를 떨어내고 신분을 바꾸어버렸습니다. 6절 말씀에 보면 보아스의 사환이 룻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소녀인데’ 본문 11절은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 행한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생에게로 온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고 합니다.

사환은 룻이 모압소녀인 것을 말합니다. 보아스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말이 무엇입니까? 룻의 형편과 처지와 신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방여인이며 가난한 자임도 알고 있었습니다. 3장에서 룻에게 고엘제도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보면 자신에게 짐이 되는 여인인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내 딸아’라고 부릅니다. 거리를 두지 않고 더 가까이 친밀하게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방여인아라 말을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절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내어 인도하느니라’ 아멘 목자는 양의 모습을 보고 이름을 부릅니다. 여기에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잘안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나의 돌봄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살핀다는 것이고 관계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주님은 자신을 또 선한 목자라고 하시고 내가 양들을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한목자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내가 양들을 안다고 말씀합니다. 삯꾼과 다르게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광야에서 자신의 물을 양에게 먹입니다. 걸을수 없는 양을 들쳐 매고 광야를 걸어갑니다. 자신의 옷을 싸서 입히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십니다. 맹수를 만나도 잃어버려도 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또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이 이름을 불러주시는 선한 목자입니다.


보아스가 룻의 형편을 알고 처지를 보며 ‘ 내 딸아’라고 부르듯이 주님은 우리를 불러주십니다. 나를 알기 때문에 나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낙인을 떼어주시고 인생의 가시를 뽑아내어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품어 주십니다.


3.함께 있으라고 하십니다.

8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봉독하겠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으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사실 ‘내 딸아’라고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룻에게는 이보다 큰 위로가 없습니다. 왜냐 여기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함께 있으라’고 합니다.


함께 있으라고 하는 이 곳은 보아스의 밭이고 룻이 걱정없이 이삭을 주을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일꾼들이 룻이 더 많은 곡식을 주을수 있도록 이삭을 떨어뜨려 주기까지 합니다. 함께 있으라 이 말한마디는 룻이 이제 다른 밭을 찾기 위해서 눈치를 보지 않게 합니다. 내일의 근심까지도 사라지는 위로와 약속입니다.


9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아멘 지금 이 말은 걱정하지 말라합니다. 내가 돌보아 주겠다고 말합니다. 함께 있으라고 당부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는지 다짐하며 이곳에 있으라고 당부합니다. 내가 너를 돌보아 주겠다고 합니다.


요한 복음 15장에서 주님은 자신을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이고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주님이 공급하시고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고 열매 맺게 하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함께 있으라고 하시는 은혜의 자리가 우리 강릉가족들의 삶의 자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일터가 여러분의 자녀들이 주님과 더불어서 함께 하시는 자리이시기를 축복합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아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속에는 룻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도 은혜를 받고 싶습니다. 자신이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시녀와 같이 자격이 없고 부끄럽지만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이 마음을 간절하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룻이 바라는 것 이미 보아스가 약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약속을 하였어도 15절의 말씀을 보면 룻이 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삭을 떨어뜨려놓으라고 일군들에게 명령합니다. 이미 약속하셨지만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은 것을 주시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로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아멘


여기에서 보응과 온전하다는 단어는 같은 단어입니다. 바로 샬람입니다. 이 샬람에서 샬롬이 나왔습니다. 두 번이니 말한다는 것, 룻의 삶이 얼마나 번성하고 번영하고 완전해지를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발걸음이 우리의 생각이 돌이켜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를 불러주시기를 원하시고 함께 하시기를 바라시고 구하는 것보다 더 주시기를 주실뿐만 아니라, 돌보시고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환경이 어떠하든지 조건이 어떠하든지 간에 평안 가운데 하나님의 복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생업과 범사가 빚어가며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구원이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