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9 마태복음 24장 36-44절 [오늘 하루...] - 김제민 목사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방주를 지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홍수가 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서 홍수가 나기 바로 직전까지도 먹고 마시고 결혼하며 지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알고자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에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는데, 한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누구는 선택받고 누구는 버려진다는 말은, 예수님이 오는 때는 아직 정해지지 않고,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급작스럽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그 때는 오늘 일수도 있고, 내일 일수도 있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때

를 짐작하며 오늘 하루,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인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이라면 어떤 하루를 살아 가시겠습니까? 앞에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누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그 시간을 

말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세 가지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앞에 두 가지는 오늘 하루 잘 살기위한 이야기이고, 마지막 한 가지는 

오늘 하루 잘 죽을 준비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첫째로는 오늘 하루 그리고 지금을 잘살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이전시대와는 워라밸 시대입니다. 워라밸은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줄인 말입니다. 즉 워라밸 시대

라는 말은 그만큼 삶에 중요한 요소로 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직장을 구할 개인의 삶을 

중요한 조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넘어서 욜로시대입니다. YOLO(욜로)가 무엇이냐? You Only Live Once

(당신은 한번뿐인 인생을 산다)라면서 현재를 즐기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즐기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50,60세대라고 불리는 어른들, 그 윗세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로 인하여 과로사하고 병에 걸리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한 가족을 위하여 죽을힘을 다해 일을 했는데,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없다 보니 정작 가족과의 소통은 끊어

지고 고립되며, 문제가 많은 가정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현재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고, 

쉼과 안식을 필요로 하면서 자신의 삶을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6일은 열심히 사역을 하시고

일곱째 날은 안식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쉼과 안식이 필요로 하지만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쉼과 안식을 넘어 나태와 게으름의 삶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b절 말씀 끝부분에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창세기 

1장 28절 말씀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

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지키고 하나님이 주신 복인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가만히 누워서 되는 것이 아닙

니다. 스스로 움직이고 때로는 땀을 흘려야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누가 힘든일을 좋아 하겠습니까? 저도 편히 쉬면서 쉬운일만 하고, 감정노동 하지 않고 좋은 소리만 들어 가면서 쉬운일, 양이 적은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님은 우리가 안정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매여 나태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기존의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주님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 삶을 살아간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

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모두 떠나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어딘지도 모를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 외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 선지자들도 실수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 주셨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단지 그 

당시의 일일까요?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주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며 목숨걸고 오지에서 말씀 전하는 선교사님들, 알게 

모르게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역사를 

지금 이 순간도 이 땅 가운데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역사를 위해서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오늘 하루 그리고 지금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노력의 댓가로 정말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력의 댓가로 얻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과연 다 하나님의 일하심인가? 라는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 가운데, 

때때로 우리를 민망하게 하는 뉴스에 나오는 기독교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범죄나 재정에 관련된 스캔들이 뉴스에 나올 때 

마다, 할말이 없고 초라해 집니다. 또 청소년 사역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졌던 목회자가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어느 교회에서는 

자신이 맡았던 교회 학생들을 그루밍하는 범죄를 일으키는 일들도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는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고, 

전도는 점점 힘들어 지고, 그들에게 우리는 점점 더 할말이 없어 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들 뿐만이 아닙니다. 여기계신 성도님들도 

혹시 직장에서나 사회 생활하면서 믿는 사람이 더하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으십니까? 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일까요? 

답은 땅의 것이 위의 것 보다 더 좋아서 그런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절 말씀에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땅의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열정적으로 헌신했던 목회자들, 교회에 나아와 열정적으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셨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등등이 처음부터 땅의 것을 찾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그만큼의 은혜를 경험했었기 때문

일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 말씀에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

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처음부터 그러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점점 육체의 소욕이 

마음을 차지하게 되어 하나님앞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온것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상의 자랑

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어서 5:16절 말씀에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

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 가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 가야 하는데, 그 최선의 

삶을 성령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 그리고 지금을 잘 살기 위하여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며 우리의 나약함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오늘이,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고가 아니라 성령하나님과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오늘 하루 죽을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질문을 바꾸어 볼까요? 만약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이 오늘, 아니 

지금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는다면 이 땅에 남긴 것 중 무엇을 가장 자랑스러워 하시겠습니까? 돈? 명예? 권력? 이 모든 것은 없는 

것 보다는 있으면 좋은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후손을 남기는 일입니다. 믿음의 

씨앗을 이 땅에 심어 믿음의 열매를 남기는 일입니다. 열왕기상 2장 말씀을 보면 다윗은 죽기에 앞서 솔로몬에게 여러 가지 

유언을 남깁니다. 그 유언중에 가장 먼저 남긴 유언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

을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이 유언은 신명기 6장 4-5절과 유사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 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하나님을 믿으며,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것에 따라 복을 받기도 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후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

과 순종을 남겨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남길 수 있을까요? 바로 앞에서 이야기 했던 첫 번째 두 번째에 답이 있습니다. 

성령하나님과 동행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면 우리 자녀들은 우리 믿음의 모습 안에서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많은 믿는 분들의 자녀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단순히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서? 아닙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이야기 듣기 때문에 처음부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님의 선택과, 삶의 양식들을 보면서 점점 하나님 보다 세상이 더 커 보이고 위에것 보다 세상의 것을 따라는 부모님의 삶을 

보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무나 당연하게 생각 되고 결국 세상을 따라 살게 되는 것

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잘 죽을 준비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금 이 시간 앉아서 아멘 아멘 하며 예배 한 시간 드리는 것을 

넘어서, 예배 마치고 이곳을 나서는 순간 그리스도인 답게, 가정에서 작은 선택을 하나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하여 우리 다음 세대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보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오늘 내 삶가운데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원어적 의미는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나라의 원어

βασιλεία(바실레이아)를 사용하면서 왕권과 통치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통치

의 개념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 하나님의 나리입니다. 따라서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장하시고, 우리가 그 삶을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임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살고 있는 것입

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주기도문에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고 이야기 

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야기 합니다.


이미 이루어 졌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는 오늘 하루 지금을 소중히 생각하며 성령 하나님과 함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며, 그 삶을 통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는 우리 강릉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