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2 엡 6:1-4 [자녀들에게 주시는 언약]

심방을 다니면서 가정마다 가지고 있는 간절한 기도제목들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기도제목들이 응답받는 가장 중요한 비결을 하나님은 말씀 속에 담아두고 계시는데, 바로 그 말씀은 가정에 관련된, 특별히 부모에 관련된 말씀 속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쓰고 있는 옥중서신서인 에베소서, 그리고 자녀와 부모에 대한 권면을 담고 있는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이 본문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자녀들아 라는 말씀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자녀들아 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섭리는 부모를 통해 생명이 잉태되고 태어나고 자라게 하시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녀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부모의 사랑과 정성 속에서 자라나게 됩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갈아주고, 재워주고, 얼려주고, 경고해 주고, 사랑해주고.... 단 한 시라도 엄마의 눈을 떠나서는 제대로 자라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며, 자녀들입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성장했다는 것을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랑 속에서 자라난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큰 고통 중에서 예수님은 가상칠언,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그중의 한 마디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보라 네 어머니라.(19:26,27) 그때부터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예수님도 육신의 몸을 입고 자녀로 이 땅에 태어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의 자녀입니까?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께 인사하시겠습니다. 우리는 자녀입니다.


2. 순종과 공경약속이 있는 첫 계명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6:1~2)

자녀들로써 해야 할 일, 그중 첫째는 순종입니다. 순종이란 순순히 따르는 것입니다. 내 삶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의 통로가 바로 부모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옳으니라. 옳은 일이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어서 바울은 권면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순종하면 될 텐데, 왜 굳이 바울은 순종에 이어서 공경하라고 권면할까요? 순종, 곧 순순히 따르기 쉽지 않은 상황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모님은 이 세상에서 자녀들을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부터 그 가정의 모습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고 아담에게 주었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말씀하실 때에,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가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3:11)

이런 하나님의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해야만 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하나님. 저와 하와가 그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담은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3:12)

적어도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사랑의 고백을 남겼던 아담이라면, 하와를 감싸고 돌아야 할 텐데, 아담은 인류 최초의 책임 전가를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하와에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면전에서 들은 하와가 아담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졌겠습니까? 여성분들.. 그런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고두고 마음에 품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것이 인류 최초의 가정의 부부의 모습이었고, 결국 그 가정에서 태어난 첫 자녀 가인은, 동생 아벨은 끔찍하게 돌로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가정의 시초입니다. 그러니 이어서 태동 된 가정들은 어떠하겠습니까? 죄 가운데 온전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가정은 결단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난 분들 중에는 부모에게 있는 그대로 순종하기란 너무 힘든 일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것은 옳은 일이나, 그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은 순종에 복을 담아두신 것이 아니라, 공경에 복을 담아 두시고 계십니다.

공경이란 공손히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예의를 갖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는 십계명이 출애굽기 20장, 신명기 5장에 거듭 나타나고 있는데, 이 십계명에서도 네 부모를 순종하라 하지 않으시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공경이라는 말을 위해 사용된 단어는 카베드 라는 말입니다. 이 카베드 라는 말은 무겁다 라고 하는 카바드 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경이라는 말 속에는 무겁다 라는 것이 담겨 있고, 부모의 삶의 자리를 무겁게 여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삶의 무게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바로 공경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녀일 때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보다 격변의 시대를 살아오셨습니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든 상황들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삶의 무게를 존중해 드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담겨 있고, 그렇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신 결과 우리가 이렇게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 이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부모님은 위대한 삶을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그 무게를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이라도 믿고 살아오셨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위로와 소망을 얻고 살아오셨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그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우셨겠습니까? 그 무게를 우리가 인정하고 존중해 드리는 것이 바로 공경입니다. 그것마저도 힘들다면, 그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기에,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마음,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공경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바로 그 결과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것이 약속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기도하는 것들, 이 땅에서 잘 살아가는 것도, 그리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며 살아가야 하는, 가정의 아름다운 모습 속에 담아 두시겠다 약속하시고 계십니다.

부모는 우리의 삶의 뿌리입니다. 때로는 그 뿌리를 부인하고, 없는 것처럼 여기고 싶어서 뿌리가 없는 식물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잘리는 순간 이미 죽은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심겨진 꽃꽂이 꽃도 아름다워 보이지만, 이미 죽은 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뿌리가 연약해 보이고, 때로는 거칠어 보일지라도, 그 뿌리로부터 끌어올려진 진액, 수액을 먹고 마실 때 줄기도, 잎도 성장하게 되어 푸르름을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뿌리인 부모님의 삶을 부인하지 않고, 그 삶을 통해 허락하신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고 고백할 때, 그런 마음으로 순종하며 공경할 때, 우리가 잘되고 장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3.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받지 못했을지라도..

사실 그것을 위해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4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6:4) 사랑을 받고, 존중을 받을 때 사랑하고, 순종하며 공경할 수 있기에, 사실 이 말씀은 4절을 먼저 말씀하신 후에, 1~3절을 말씀하는 것이 더 당연해 보입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자녀로써 순종하고 공경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리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설령 왜냐하면 노엽게 한 부모가 있더라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지 못한 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마땅히 순종하고 공경하기를 원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 땅을 만드시고, 세우신 하나님, 그리고 죄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타락한 이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 행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 속에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기도하는 잘되고 장수하는 복과 은혜를 담아 놓으셨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을 보고 배울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를 통해서 계속해서 부모를 공경하는 삶, 순종하는 삶이 무엇인지 배워감으로 복 된 가정과 가문을 이어가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 가정의 달 5월, 특별히 어버이 주일을 보내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누구의 자녀입니까? 우리는 누군가의 자녀임을 잊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살아가며, 그 삶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임으로 늘 기도하시는 것처럼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에게 이르기까지 말씀에 약속하신 대로 대대로 잘 되고 장수하는 믿음의 가정, 믿음의 가문을 이루어가는 강릉 가족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