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6 사무엘상 18장 1-9절 [피보다 진한 물]

<친구의 우정>을 대표하는 단어는 <管鮑之交/관포지교>입니다.

포숙아가 관중을 향한 우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말 진정한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중이 자신의 허물을 탓하지 않고 끝까지 우정으로 자신을 세워주고 섬겨준 친구 포숙아를 향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일찍이 곤궁할 적에 포숙아 함께 장사를 하였는데,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몫을 더 많이 가지곤 하였으나 포숙아는 나를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포숙아를 위해 일을 꾀하다가 실패하여 더 곤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포숙아는 나를 우매하다고 하지 않았다. 시운에 따라 이롭고 이롭지 않은 것이 있는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여러 차례 벼슬길에 나갔다가 매번 임금에게 쫓겨났지만 포숙아는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시운을 만나지 못한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여러 차례 싸움에 나갔다가 모두 패해서 달아났지만 포숙아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하였을 때, 동료이던 소홀은 죽고 나는 잡히어 욕된 몸이 되었지만 포숙아는 나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영원한 친구 포숙아이다.>"

 

여러분, 세상에 <피보다 진한 물>이 있을까요?

아무리 물이 진해도 피보다 더 진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피보다 더 진한 요나단의 우정과 믿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오늘 <피보다 진한 물>이라는 제목으로 사울의 황태자 요나단이 친구 다윗을 향한 우정과 믿음이 부자지간의 혈연보다 더 진한 물로 자신이 물려받을 이스라엘의 2대 왕위를 친구 다윗에게 양보하는 사연입니다. 사무엘서 전체를 훑어보면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은 탁월한 믿음을 가진 사람임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보다 훨씬 지혜롭기도 하고, 용기도 출중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솔선수범 했고, 언제 어디서나 앞장섰고, 전장에서는 최전선에 나섰습니다. 그것도 목숨을 건 전쟁에서는 어느 장군들보다도 뛰어났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적군의 숫자를 보고 풀이 죽어있는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요나단이 수하 장수를 데리고 적진을 기습공격 해서 사기충천하게 만들었고, 때와 장소에 따라 언제나 백성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했습니다. 요나단의 인생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요나단의 이 모든 생각과 행동은 믿음이었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요나단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의 생각과 행동에는 인간적으로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욕심과 욕망과 체면과 위신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믿음의 사람을 알아봅니다.

성령은 성령의 사람을 알아봅니다.

요나단은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민족이었습니다.

다윗도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민족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이미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를 두고 두 사람은 적대적입니다. 상황이 그렇고 현실이 두 사람을 적대적일 수밖에 없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영적으로 통했습니다. 왕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미워하며, 서로를 제거하기 위해서 전쟁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단도 다윗도 어느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섭리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지? 느끼고 있었고, 짐작할 수 있었고,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믿음으로 순종 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의 역사를 보십시오. 왕의 자리를 위해서 부자지간, 형제자매 지간,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사악한 싸움을 일삼고 있습니까? 지금도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인간들이 총칼을 들고 설치는 나라가 수두룩합니다. 우리나라는 3족을 멸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믿음의 우정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었습니다.

특히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마음과 믿음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다윗>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삼상 18:1-4)

여기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요나단은 정말 자신의 생명과 같이 다윗을 사랑하였고, 다윗을 위해서라면 아까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윗이 혹시라도 의심을 할까 해서 언약까지 맺었습니다. 맹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도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맹세했습니다. 그 맹세의 증표로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입히고, 자신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벗어서 다윗에게 다 주었습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삼상 20:17)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왕과 요나단의 전사소식을 듣고 다윗이 애통해 하면서 고백합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죽을 때까지 왕자로 대접 받게 해 줍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삼하 1:26)

위대한 유다 가문의 다윗 왕가를 시작하도록 하나님께서 적과 같은 사울왕의 황태자 요나단까지 다윗이 이스라엘 왕임을 인정함을 모든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것 있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 이런 믿음을 요나단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요나단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순복한 믿음의 영웅이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먼저 요나단과 같은 우정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과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요나단과 같은 우정과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사리사욕,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의 몸 된 강릉교회를 위해서 오직 믿음으로 충성, 헌신, 순종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