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0 마가복음 10장 17-31절 [한 부자 청년의 질문] - 황성민목사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 구원에 이르기 위해 고민하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길에 나가실 때 한 사람이 달려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선한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막 10 : 17)

우리는 이 사람의 질문에서 그가 찾는 구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죽음이 없는 온전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사람으로 태어나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찾는다니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냐는 이 사람의 질문에 예수님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십계명 중 다섯 번째에서 열 번째 계명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 요구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어려서부터 이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 합니다.

율법을 다 지켰다는 이 사람의 대답에 예수님은 사랑스럽게 그를 바라보시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돌아와서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제시한 조건을 우리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조건 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리나요? 여러분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나요? 제 생각에도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라고 하면 여기서 예수님을 믿고 따를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런 불가능한 요구를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그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 마디 더 보태심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함을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에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막 10 : 26 앞부분)

그냥 놀란 것이 아니라, 매우 놀랐다고 합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낙심에 가까운 놀람과 충격을 경험했을 수 있습니다.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막 10 : 26 뒷부분)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놀라운 반전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 10 : 27)

영생을 얻거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모두 구원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은 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 인간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조금만 솔직하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숨 쉬게 하고, 스스로를 의식하게 하는 것은 내 안에 있지 않습니다. 생명이 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의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 나왔지만, 부모님이 생명을 만들어 낼 능력은 전혀 없습니다. 저도 두 아이의 아빠이지만 두 아이의 생명을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개미 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 저입니다. 그러니 생명은 우리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생명 그 자체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원이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부와 가난은 구원의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둘 다 구원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구원 얻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님께 절대 생명과 구원의 가치를 두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일 뿐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입니다. 이 돈은 늘 하나님과 경쟁해왔습니다. 이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돈의 힘이 더 강한 시대입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돈이 최고야!”하는 마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얼마나 피부로 와 닫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런 시대 속에서 정말로 하나님께 여러분의 구원과 생명을 걸어두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보다는 돈을 신뢰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어려운 일을 예수님의 제자들은 실제로 행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제자들 중 대표자인 베드로가 목에 힘을 주고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막 10 : 28)

이 말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막 10 : 29)

앞의 부자에게는 재산만 이야기 했지만, 지금 제자들에게는 재산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일까요? 가정을 파괴하라는 말일까요? 부모님까지 버리라는 말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을 어기게 되는데, 바로 앞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말은 모순을 일으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이런 모순되는 말을 하고 계신 것일까요?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말씀을 경험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이 경험은 누가 하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거절한다고 해서 거절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한 번은 경험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게 언제일까요? 네,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음을 경험합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까지도 남겨두고 떠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죽음을 가리킵니다. 반대로 죽지 않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일을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모두가 순교를 각오하고 이슬람이나 북한으로 들어가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전하고 있는 죽음은 지금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어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죽음 앞에 서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내 생명이 코 끝에 달려 있고,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그 분께로 가야 함을 알고 삶의 모든 가치를 하나님께 두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 얻게 될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먼저는 현세에서 버린 것의 100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입니다. 이 말은 만원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100만원을 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내가 포기한 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매달 3만원을 굶주리고 있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게 되면, 그것 보다 훨씬 귀한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로 내세에서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부자가 얻고자 했던 영생입니다. 이 영생은 내세에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현세에 있는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혹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죽습니다. 영생은 내세에 속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생이 단지 내세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삶 한 가운데서도 맛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받은 경험처럼, 믿음으로 바울이 구원을 경험한 것처럼, 믿음으로 우리는 이 무서운 현실의 삶 한 가운데서 이 세상을 향해 돌입해 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두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삶에서 열심히 살되, 날마다 죽음을 경험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붙들려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