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2 마태복음 13장 24-30, 36-43절 [풀무불과 곡간]

우리교회의 사명은 <생명 살리기와 예배자 세우기>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예배자를 세우는 사명의 출발점, 혹은 원동력은 <이웃 사랑, 예수 사랑>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몸된 교회를 사랑하되 이웃을 사랑함으로 증명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의 핵심인 하나님 아버지를 목숨을 걸고 사랑하듯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의 일목요연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다.

그 이웃 사랑의 최고봉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성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서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강릉시민의 구원의 방주 = 강릉교회에서 변치 않고 이 믿음 지키면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떤 말썽을 피워도 바짓가랑이, 치마꼬리를 꼭 붙들고, 그가 정말 발버둥 치더라도 기둥에 꽁꽁 붙들어 매 놓는 한이 있어도 방주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제 소신입니다. 거의 반 죽여서라도, 목숨만 겨우 붙여놓고서라도 함께 끌고 가야 하는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가서 보면 감사가 충만하고, 또 후회가 막급할 것입니다.

나 같은 인간이 이렇게 질질 끌려서라도 천국 와서 보니, 이보다 더 좋은 순 없기 때문에 구원받은 은혜와 복에 감격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후회 막급한 것은 천국에 함께 데려오지 못한 부모형제, 친구와 이웃을 생각하면 후회가 막급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강릉시민들을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태워야 합니다. 구원의 방주에 탄 어떤 사람도 결코 포기하거나 버리면 안 됩니다. 스스로 뛰어 내리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또한 내 생각이나, 내 관계가 힘들어도 결코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에 새겨야 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마가복음 9:42)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방주에 태울 수 있도록 돌아오는 26일 주일 <강릉가족 총동원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예배자를 세우는 일에 언제 어디서든지 애쓰고 힘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일곱 가지 천국이야기 중에 지난 주일에 네 종류의 밭에 대해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그 <좋은 밭>에 <좋은 씨앗>을 뿌렸는데 밤중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시간이 돼서 싹이 나서 잘 자라고 있는데 종들이 밭에 가서 보니깐 곡식 가운데 가라지도 함께 자라고 있는 겁니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마태복음 13:26-28)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내 삶 속에 원수들이 밤중에 몰래 씨앗을 뿌리고 가서 내 믿음과 함께 가라지도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도, 가정에도, 구역에도, 교회공동체 속에도 밤중에 원수들이 뿌린 가라지가 곡식들의 함께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믿음의 밭에 가라지가 자라고 있습니까? 원수가 밤중에 몰래 뿌린 가라지입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원수 악한 마귀 사탄은 지금도 좋은 믿음의 밭에 밤중에 몰래 가라지를 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 중의 가장 영광스러운 뜻인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믿음으로 복음을 전파하면, 원수는 밤마다 가라지를 덧뿌립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좋은 밭에 영생의 말씀을 뿌리면 원수들이 밤중에 불신의 가라지를 뿌려놓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잠들어 있는 믿음을 깨우고, 시험에 빠진 가족들을 일으켜 세우면 원수들이 극성스럽게 밤중에 몰래 가라지를 뿌립니다. 낙심과 시험과 고난은 원수가 밤중에 몰래 뿌린 가라지들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시험의 파도가 거셀수록 담대하게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마태복음 13:28)

충성스러운 종들은 곡식밭에 가라지가 잘 자라고 있는 꼴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주인에게 여쭙습니다. 그때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마태복음 13:29-30)

두라 1st. / 가만 두라. 2nd / 함께 자라게 두라

<가만 두라>는 주인의 마음은 가라지를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입니다. 곡식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헤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생명은 무조건 보존해야 합니다. 세상에 허용이 가능한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은 생명을 죽이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허용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일은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함께 자라게 두라>는 명령이 허용하는 한계점은 <둘 다 추수 때까지>입니다.

주인에게 있어, 곡식이 다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곡식에게 주는 모든 비료와 퇴비와 영양분을 가라지도 함께 먹고 자라게 허용하는 것입니다. 추수 때가 되면 곡식 한 포기도 한 이삭도 한 알도 다치지 않고 가라지와 구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곡을 다치지 않고 쭉정이를 골라 낼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후서 3:9)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고 싶어서 아직도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족을 찾고, 깨우고, 건져내서 예수님 만나는 날까지 험한 세상, 이 믿음의 길을 곡식 다치지 않게 함께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세상은 끝이 있는 줄 믿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개인의 끝 날과 세상의 끝 날은 그 상황과 환경과 결말 동일합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곳간에 넣으라(마태복음 13:3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태복음 13:40-43)

추수 때는, 다른 사람들을 시험에 빠뜨리고,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넘어지게 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의 말씀 = 십자가 구속에 불순종 하는 모든 자들을 거두어 풀무 불에 던져 넣습니다. 그 마지막 날에 불순종의 모든 사람들은 태워도 태워지지 않는 영원히 지옥의 유황불의 고통 속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고 있는 것입니다.


곡식들은 하나님의 추수꾼들이 한 포기, 한 이삭, 한 알을 소중하게 고르고 또 골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곡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모아 드릴 것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태복음 13:43)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2b-3)

할렐루야~! 믿습니까? 저는 확신합니다. 이 믿음으로 숨 쉬고 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26일 주일은 행사가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들의 영생이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꾸지람을 받을지, 칭찬과 상을 받을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주위를 꼼꼼히 살펴보셔서 영혼을 찾으시고, 깨우시고, 일으켜 세워서 강릉땅에서도 함께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함께 살다가 예수님 부르시는 그날에는 더 큰 감동과 감격으로 감사하고 기뻐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