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의 핵심을 다른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 비유입니다. 진리를 쉽게 이해 시키기 위해서 다른 이야기로 비유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참된 순종>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 아버지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포도원은 주인인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의 일이 많으니 오늘은 다른 일들을 접어두고 포도원에 가서 일 좀 하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이 이야기는 명령입니까? 부탁입니까? 간청입니까? 아버지와 아들들과 주고받는 일상사 이야기입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하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들의 권리입니다. 의무입니다. 사명입니다. 당연지사입니다. 마땅한 인간의 道理입니다. 아들의 도리, 자식의 도리, 상속자의 도리입니다.
道理는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일입니다.
도리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부끄럽습니다. 수치를 당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합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스스로 분노합니다. 하지만 도리를 다하는 사람은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걷습니다. 칭찬 듣고, 인정받습니다. 스스로 뿌듯하고, 기쁘고, 감사합니다. 부끄럽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높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첫째 아들은 <네~ 아버지 말씀에 따라 오늘은 포도원 가서 일하겠습니다.> 순종했습니다.
둘째는 <아버지~ 저는 오늘 친구들과 오래전부터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포도원에 가서 일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불순종했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 말씀을 듣고, 아버지 앞에서 말로 Yes! No! 로 순종과 불순종으로 대답한 후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첫째는 아버지 앞에서 말로, 입으로, 이성적으로 순종했고, 약속했습니다.
아버지 앞을 벗어나 밖으로 나와서는 말과 이성과 행동으로 불순종했습니다. 자신의 의도와 생각과 이성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둘째는 아버지 앞에서 말로, 입으로 사정을 말씀드렸지만 불순종했습니다.
둘째는 아버지 앞에서 떠나 밖으로 나와서 생각해 보니 오늘은 친구들의 약속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포도원에 가서 일하는 것이 우선순위에서 바른 것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이성적으로 행동으로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이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느냐?
이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말씀에 열매를 맺었습니까? 누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을 결실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과 능력>으로 천국 복음을 온 유대 땅에 전파하실 때 고향 나사렛에서 동생들이 가문의 장손이자 맏형 예수님의 안부와 소문을 확인하고 싶어서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머니와 형제들에 찾아오셨다고 말씀을 드리니,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내 모친이요 형제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혈육으로는 부모 형제이지만 하늘나라의 부모 형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 곧 순종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의 부모 형제이기 때문에 부임하는 날부터 제가 여러분들에게 <강릉가족 여러분>이라고 부르는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영적인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 아닌 사람들은 부모 형제들을 욕하고, 비난하고, 무시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고, 자기 주장만 하고, 양보도, 이해도, 수용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세상의 모든 환난과 역경으로부터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곳입니다. 가족이 더 이상 지켜주지 못하고, 보호해주지 못하면 세상에서 받아줄 곳이 없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이 부름은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어떤 형편이라도, 버리거나 포기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희생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시간, 물질, 마음을 희생해야 하고, 참아주고, 받아, 기다려, 이끌어, 밀어, 업어주면서 땀과 눈물을 흘려야 감동의 사람으로 풍성한 공동체가 됩니다.
길을 좋은 땅으로 만들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합니까?
길을 옥토로 만들려면 돈은 얼마나 들까요?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돌밭을 좋은 땅으로 만들려면 땀을 얼마나 흘려야 합니까?
돌밭을 옥토로 만들려면 애씀과 수고와 헌신의 땀을 얼마나 흘려야합니까?
가시덤불 우거진 곳을 좋은 땅으로 만들 생각이나 합니까?
가시덤불을 옥토로 만들려는 생각과 계획이 되면 돈도 시간을 투자하시겠습니까?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우거진 곳을 좋은 땅으로 만들려면 진짜 생고생 많이 해야 합니다. 땀도 많이 흘려야 하고, 돈도 제법 들어야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틀림없이 주변 사람들이 반대가 극심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고생하지 말고 차라리 좋은 땅 사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이야기를 하시면서 제일 많이 쓴 단어가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해서 빼앗겨 버렸고, 말씀을 듣고 견디지 못해서 말라버렸고, 말씀을 듣고 기운이 막혀서 성장하지 못한 자들이지만, 말씀을 듣고 깨달은 자는 잘 자라서 열매를 맺어서 결실한 것이 어떤 사람은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한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성령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둘째 아들처럼 말씀을 듣고 깨닫고 행동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은 첫째처럼 체면과 위신과 가문과 체통 때문에 아버지 앞에서는 부인은 절대 안 합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결코 거절하지 않습니다. 품위와 체통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떠나서 물러나와 밖에만 나오면 본색을 드러냅니다. 힘과 권력과 부귀영화에 휘둘립니다. 말과 입과 혀로 온갖 아첨을 다 합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떠나는 순간 돌변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은
<비록 아버지 앞에서는 내 생각과 내 소원과 내 계획이 있어서 말씀을 드렸지만, 밖에 나와서 곱씹어 보니 내 모든 생각과 계획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포도원에 가서 일하는 것이 바른 것이야. 우선순위에서 으뜸이야. 내 생각과 계획은 오늘 포도원 일을 끝내고 다음 날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야. 아버지 말씀대로 오늘은 포도원에서 땀을 좀 흘려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순종합니다.
오늘 본문에 네 종류의 밭이 등장합니다. 강릉교회는 그중에 어떤 밭인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밭인 것 같습니까?
3월 26일 주일은 <강릉가족 총동원주일>입니다.
<총동원>이라는 단어가 쥐어짜고 강제하는 구호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3년 동안 게을러진 우리의 믿음의 다시 추스리고, 나태해진 우리의 믿음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잠들다 못해서 세상으로 휩쓸려 가 버린 영혼들을 찾아와야 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예배자로 승리하면서 살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강릉가족 총동원주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배, 어떤 것은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 13:23)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은 열매를 맺었다가 낙과하는 것이 아니라 크기도 크고,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과실을 수확했는데 100배, 60배, 30배가 됩니다.
교회학교는 <꿈꾸는 강릉요셉> 프로젝트를 원동력으로 부흥성장의 꿈을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은 <강릉가족 총동원주일>로 다시 부흥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3월 마지막 주일에는 물론 전도도 열심히 하셔야 하지만 핵심은<잃어버린 강릉가족들><잠자고 있는 강릉가족><시험에 빠진 강릉가족들>을 찾을 때까지 찾고, 깨어날 때까지 깨우고, 시험에서 건져내서 예수님 만나는 날까지 다시는 변치않고 이 믿음의 길을 함께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비유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의 핵심을 다른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 비유입니다. 진리를 쉽게 이해 시키기 위해서 다른 이야기로 비유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참된 순종>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 아버지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포도원은 주인인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의 일이 많으니 오늘은 다른 일들을 접어두고 포도원에 가서 일 좀 하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이 이야기는 명령입니까? 부탁입니까? 간청입니까? 아버지와 아들들과 주고받는 일상사 이야기입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하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들의 권리입니다. 의무입니다. 사명입니다. 당연지사입니다. 마땅한 인간의 道理입니다. 아들의 도리, 자식의 도리, 상속자의 도리입니다.
道理는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일입니다.
도리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부끄럽습니다. 수치를 당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합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스스로 분노합니다. 하지만 도리를 다하는 사람은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걷습니다. 칭찬 듣고, 인정받습니다. 스스로 뿌듯하고, 기쁘고, 감사합니다. 부끄럽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높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첫째 아들은 <네~ 아버지 말씀에 따라 오늘은 포도원 가서 일하겠습니다.> 순종했습니다.
둘째는 <아버지~ 저는 오늘 친구들과 오래전부터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포도원에 가서 일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불순종했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 말씀을 듣고, 아버지 앞에서 말로 Yes! No! 로 순종과 불순종으로 대답한 후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첫째는 아버지 앞에서 말로, 입으로, 이성적으로 순종했고, 약속했습니다.
아버지 앞을 벗어나 밖으로 나와서는 말과 이성과 행동으로 불순종했습니다. 자신의 의도와 생각과 이성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둘째는 아버지 앞에서 말로, 입으로 사정을 말씀드렸지만 불순종했습니다.
둘째는 아버지 앞에서 떠나 밖으로 나와서 생각해 보니 오늘은 친구들의 약속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포도원에 가서 일하는 것이 우선순위에서 바른 것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이성적으로 행동으로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이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느냐?
이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말씀에 열매를 맺었습니까? 누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을 결실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과 능력>으로 천국 복음을 온 유대 땅에 전파하실 때 고향 나사렛에서 동생들이 가문의 장손이자 맏형 예수님의 안부와 소문을 확인하고 싶어서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머니와 형제들에 찾아오셨다고 말씀을 드리니,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내 모친이요 형제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혈육으로는 부모 형제이지만 하늘나라의 부모 형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 곧 순종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의 부모 형제이기 때문에 부임하는 날부터 제가 여러분들에게 <강릉가족 여러분>이라고 부르는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영적인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 아닌 사람들은 부모 형제들을 욕하고, 비난하고, 무시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고, 자기 주장만 하고, 양보도, 이해도, 수용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세상의 모든 환난과 역경으로부터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곳입니다. 가족이 더 이상 지켜주지 못하고, 보호해주지 못하면 세상에서 받아줄 곳이 없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이 부름은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어떤 형편이라도, 버리거나 포기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희생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시간, 물질, 마음을 희생해야 하고, 참아주고, 받아, 기다려, 이끌어, 밀어, 업어주면서 땀과 눈물을 흘려야 감동의 사람으로 풍성한 공동체가 됩니다.
길을 좋은 땅으로 만들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합니까?
길을 옥토로 만들려면 돈은 얼마나 들까요?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돌밭을 좋은 땅으로 만들려면 땀을 얼마나 흘려야 합니까?
돌밭을 옥토로 만들려면 애씀과 수고와 헌신의 땀을 얼마나 흘려야합니까?
가시덤불 우거진 곳을 좋은 땅으로 만들 생각이나 합니까?
가시덤불을 옥토로 만들려는 생각과 계획이 되면 돈도 시간을 투자하시겠습니까?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우거진 곳을 좋은 땅으로 만들려면 진짜 생고생 많이 해야 합니다. 땀도 많이 흘려야 하고, 돈도 제법 들어야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틀림없이 주변 사람들이 반대가 극심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고생하지 말고 차라리 좋은 땅 사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이야기를 하시면서 제일 많이 쓴 단어가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해서 빼앗겨 버렸고, 말씀을 듣고 견디지 못해서 말라버렸고, 말씀을 듣고 기운이 막혀서 성장하지 못한 자들이지만, 말씀을 듣고 깨달은 자는 잘 자라서 열매를 맺어서 결실한 것이 어떤 사람은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한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성령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둘째 아들처럼 말씀을 듣고 깨닫고 행동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은 첫째처럼 체면과 위신과 가문과 체통 때문에 아버지 앞에서는 부인은 절대 안 합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결코 거절하지 않습니다. 품위와 체통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떠나서 물러나와 밖에만 나오면 본색을 드러냅니다. 힘과 권력과 부귀영화에 휘둘립니다. 말과 입과 혀로 온갖 아첨을 다 합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떠나는 순간 돌변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은
<비록 아버지 앞에서는 내 생각과 내 소원과 내 계획이 있어서 말씀을 드렸지만, 밖에 나와서 곱씹어 보니 내 모든 생각과 계획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포도원에 가서 일하는 것이 바른 것이야. 우선순위에서 으뜸이야. 내 생각과 계획은 오늘 포도원 일을 끝내고 다음 날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야. 아버지 말씀대로 오늘은 포도원에서 땀을 좀 흘려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순종합니다.
오늘 본문에 네 종류의 밭이 등장합니다. 강릉교회는 그중에 어떤 밭인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밭인 것 같습니까?
3월 26일 주일은 <강릉가족 총동원주일>입니다.
<총동원>이라는 단어가 쥐어짜고 강제하는 구호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3년 동안 게을러진 우리의 믿음의 다시 추스리고, 나태해진 우리의 믿음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잠들다 못해서 세상으로 휩쓸려 가 버린 영혼들을 찾아와야 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예배자로 승리하면서 살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강릉가족 총동원주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배, 어떤 것은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 13:23)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은 열매를 맺었다가 낙과하는 것이 아니라 크기도 크고,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과실을 수확했는데 100배, 60배, 30배가 됩니다.
교회학교는 <꿈꾸는 강릉요셉> 프로젝트를 원동력으로 부흥성장의 꿈을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은 <강릉가족 총동원주일>로 다시 부흥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3월 마지막 주일에는 물론 전도도 열심히 하셔야 하지만 핵심은<잃어버린 강릉가족들><잠자고 있는 강릉가족><시험에 빠진 강릉가족들>을 찾을 때까지 찾고, 깨어날 때까지 깨우고, 시험에서 건져내서 예수님 만나는 날까지 다시는 변치않고 이 믿음의 길을 함께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