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3 창세기 28장 1-22절 [에서의 꿈 & 야곱의 꿈]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계시록 2:4-5)

에베소교회를 책망하시는 내용 중 일부분입니다. 촛대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복이라고 해석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달란트와 므나 비유에서도 한 달란트 맡은 자와 한 므나 맡은 자에게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25:26-29)

<촛대를 옮긴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미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메시지였습니다. <자신의 책임과 역할과 사명을 잘 감당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예약해 놓으신, 이미 손에 들고 있는 은혜와 복도 빼앗아서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겁니다.


오늘은 지난 7월 마지막 주일에 못다 한 <꿈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청소년 시절에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세상에서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살고 싶었습니까? 그리고, 그 꿈 이루셨습니까? 이루어 가고 계십니까?

오늘은 아브라함의 손자, 이삭의 쌍둥이 아들인 에서의 꿈과 야곱의 꿈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들은 여러분이 한 주간동안 에서의 꿈과 야곱의 꿈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장자의 명분 ← 하나님의 약속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세기 28:31-34)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무익한 것으로 가볍게 여겼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에 목숨을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자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천재지변으로 인해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100년 만의 홍수, 가뭄, 폭설, 폭염으로 대책이 없습니다. 나름 대책을 세워보지만 고스란히 당합니다. 더욱이 <묻지마 살인>같은 사건들이 우리 마음을 더 어둡게 합니다. 무작위 무차별로 폭력을 행사하고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일이 청소년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퍼져나가서 걱정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sns에 협박 글을 올리는 50%가 10대 청소년들입니다.

창초에도 동생에게 분노해서 존속살인 사건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 대에 와서도 일어날 뻔했습니다. 쌍둥이 형 에서가 동생 야곱에 대한 분노로 계획적인 살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 동생도 내 손으로 죽일거야.> 계획하고 벼르고 또 벼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이것을 알고 둘째 야곱을 친정으로 피신시킵니다.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죽이리라 하였더니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작은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한을 풀려하니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창세기 28:41-44)

 

묻지마 폭력과 살인도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극심한 문명의 발전과 발달로 현대인들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갈 마음과 정신의 근육과 힘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인스턴트 문명으로 인내심 = 참음이 훈련되어있지 않은 21세기 원주민들의 자화상입니다.

 

지금 심은 대로 거두고 있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에서는 장자의 명분이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않는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여겨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렸습니다. 사냥해서 돌아와서 보니 아버지가 이미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기도를 다 해버린 것을 알고는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창세기 27:34)

야훼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준 장자권이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유익이 없는 하찮은 것으로 여긴 자신의 믿음 없음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생을 미워하고 분노해서 죽이기로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장자의 명분은 무익하다고 가볍게 여기면서, 쌍둥이 동생을 죽일 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그렇게 받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에서의 마음 = 가인의 마음.

가인 그리고 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복, 인정과 칭찬에는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는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정성을 다하지 않습니다. 절차와 예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장자의 명분이 내 인생에 무슨 유익이 있느냐며 가볍게 여기면서 은혜와 복에 대한 욕심은 하늘을 찌릅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입니다. 에서도 야곱을 죽입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피난시키지 않았으면 야곱은 에서의 손에 단번에 죽었습니다. 들사람 사냥꾼 에서를 이길 힘이 야곱에게는 없습니다. 손자병법 36계 외갓집으로 피난 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소유하고 싶은 명분이 있습니까? 혹시 가볍게 여기시는 명분은 없습니까?

 

야곱의 꿈 = 장자의 명분

야곱은 2인자의 서러움을 뱃속에서부터 알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태어나려고 치열하게 몸싸움을 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육체적인 힘이 쎈 에서가 먼저 태어나고 야곱은 결국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납니다. 야곱의 악착같음, 경쟁심, 최선을 경주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약속된 장자의 명분을 사모하고 사모했습니다. 기회만 되면 어떻게 해서라도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받아내려고 했습니다. 사모하며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반드시 기회는 찾아옵니다. 배고픔을 못 참는, 진짜 인내심이 결여된 에서는 겨우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로마서 9:13)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사모하고 사모하는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의 실력과 능력만 믿고 사는 들사람 에서를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믿음 없는 에서에게 하나님께서 해 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목사님은 ‘에서는 미워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똥파리를 따라가면 화장실로 가게 되고, 나비를 따라가면 꽃 구경합니다. 도둑을 따라가면 남의 집 담을 넘게 되고, 건달을 따라가면 뒷골목에서 살아야 합니다. 내 생각을 따라가면 내 실력과 수준으로 겨우 살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가면 하늘의 수준으로 살게 됩니다.

이방여인 룻은 믿음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예수님의 조상 할머니가 되어 족보에 올랐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죽기까지 따라가 갑절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베드로는 가족도 고기잡이배도 버려두고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따라가 사람을 낚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따라가면 세상이 가는 지옥에 저절로 가게 될 것이고,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따라가면 도착지는 천국인 줄 믿습니다.

가인, 에서, 가룟 유다, 데마도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도 꿈꾸는 강릉요셉들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묶어 놓은 장자의 명분을 기업으로 삼으시길 축복합니다. 오직 아버지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기대하는 믿음의 꿈으로 세상을 이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