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7 열왕기상 19장 1-18절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 성현모목사

오늘 본문에는 영적인 슬럼프를 아주 혹독하게 겪고 있는 외로운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예언자 엘리야입니다. 가장 악랄하고 악독했던 아합왕과 이세벨 앞에서 연신 하나님의 묵직한 말씀을 직설적으로 내리꽂던 사람입니다. 당시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시대, 홀로 우뚝 서서 하나님을 입증했던 멋진 사람입니다. 특히 우리가 읽은 열왕기상 19장 앞에 18장의 내용은 그가 얼마나 담대하고 용기있는 사람인지 나와 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 450명과 갈멜산에서 영적전쟁을 펼치게 됩니다.

절대적으로 불리할거 같은 대결에서 엘리야는 압도적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바알의 무능함과 더불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보여주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3년 동안 가뭄이 심했던 이스라엘 땅은 그의 기도를 통해 비가 내리게 됩니다. 그 어려운 것을 해내었던 엘리야, 그런데 위대한 영적거장도 슬럼프가 찾아오게 됩니다.

열왕기상 19장 1절과 2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시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이세벨은 눈에 가시같은 엘리야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분노와 증오는 고스라니 엘리야에게 전달됩니다. 전혀 흔들림 없을 것 같던 엘리야도 결국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겁이 납니다. 예전에 이세벨이 실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인적도 있었기 때문이겠죠. 엘리야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하나님을 의지 한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도피하게 됩니다. 주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엘리야가 남쪽 유다왕국을 지나 저기 밑에 브엘세바까지 가게 됩니다. 이미 멀리 왔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하룻길을 더 가서 광야에 꼭꼭 숨어들어갑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이제 그는 자포자기 합니다.

참으로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 무너져가는 신앙인의 형상을 보여주는 엘리야의 모습은 어색합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기적적인 승리를 경험하며 감사의 간증거리가 넘칠 때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은혜의 감격이 메말라 버린 슬럼프로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함께하심을 경험하며 기뻤는데, 그때 하나님과의 관계와 지금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너무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한 것이겠죠. 내 신앙이 성장이 아니라 정체된 거 같고, 정체되기는커녕 전보다 못한거 같습니다. 다시 일어서려고 결단했는데,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반복됩니다. 지긋지긋한 영적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이 영적침체에 빠졌을 때 일으켜줄 우리의 공동체도 슬럼프를 겪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회는 참으로 짧은 시간 큰 부흥과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이 땅에 교회들이 슬럼프에 들어가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들어와 교회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청년들이 이탈하고 가나안 교인들이 증가합니다. 교회내의 분쟁으로 몸살을 앓기도 합니다. 물질주의와 성공주의가 교회 주인으로 자리 잡는 모습도 보입니다. 번영과 기복의 달콤함이 성도들을 취하게 하고 무디게 만들어 버립니다. 분명 교회 다니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데 사회적 공공성과 신앙윤리는 떨어 지는거 같고 이러한 슬럼프에 많은 사람들이 신학적 토론을 하고 목회적 자성을 하는데 그렇게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린 어떻게 “영적 슬럼프를” 박차고 극복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가 극복한 그 과정을 주목해봅니다. 9절입니다.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은 엘리야를 책망하고 혼내려고 이렇게 물어 보시는게 아닙니다. 엘리야가 여기 있는게 궁금하셔서 물어보는 것도 아닙니다. 엘리야 너 왜 여기 있느냐.. 네가 있어야할 곳은 여기가 아니잖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엘리야가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슬럼프는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있어야 하는 장소를 이탈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이런 엘리야를 어떻게 다시 원래의 자리로 회복시키실까요?

우리가 깊게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혼자 있고 싶어서 굴에 들어갔던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과정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특별하다는 점입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엘리야 앞에 굉장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이 연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은 주로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 일어나는 전통적인 현상들입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도, 지진이 일어나도, 불이 일어나도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갈 뿐입니다. 천지가 뒤흔들리는 엄청난 사건 후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세미한 소리가 들립니다. 엘리야는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묻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과 엘리야 사이의 에피소드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바람과 지진과 불과 같은 자연현상은 누구나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세미한 음성은 아무나 듣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만 들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전의 방법과는 다른 모습으로 엘리야와 대면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오직 세미한 음성으로 만나주셨습니다. 이것이 엘리야가 슬럼프를 극복한 시작이었습니다. 영적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사건을 통해서만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요란스럽고 떠들썩해야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니님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할 때 세미한 음성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쉴새없는 삶의 파도 속에 잠시 우리의 내면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세미한 음성이 들린다면, 우린 영적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렇게 굴 입구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요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이제 드디어 입을 열게 됩니다. 마음의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유별하오니’ 유별하였다는 의미는 열심히 섬겼다는 의미입니다. 엘리야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열심히 하나님 섬겼는데 다 죽고 나만 혼자 남았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엘리야가 언급을 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죽임당한 하나님이 선지자들만 이야기 하고 바로 직전에 기손 시내에서 멸절 시켰던 바알 선지자들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갈멜산에서 있었던 전대미문의 역사적 승리의 현장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과거를 온전히 떠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 차 기억까지 편파적으로 굳어버린 것입니다. 사실 엘리야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1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이미 하나님께서는 무려 7000명의 동역자를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리고 18장에 보면 갈멜산 전투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믿음이 사람 오바댜가 숨겨둔 100명의 선지자들은 아직 죽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영적 슬럼프는 혼자서 감당하기 버겁습니다. 동역자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하나님이 연결시켜주신 그리고 예비된 여러분의 동역자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시선은 더 멀리 향하게 됩니다. 영적슬럼프의 끝은 새로운 소명의 시작으로 연결됩니다. 새로운 사명을 하나님은 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새로운 사명을 위해 거처야 하는 통로가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하나님은 엘리야를 다시 광야로 보내십니다. 돌아가라 라는 의미는 강력한 명령입니다. 여러분도 영적슬럼프를 벗어나 새로운 사명을 위해서는 ... 내가 무너졌던 그 위치를 지나가야하고 극복해야합니다. 그래야 진짜 영적슬럼프를 이겨낸 것입니다.

15절,16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게 되게 하라”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시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시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사역을 이어갈 수 있는 선지자를 세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직접 내려치시고 역사하셨는데 이제 부드럽게 은밀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퍼즐이 단계별로 진행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정화사역을 위해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다시 새롭게 일하십니다. 그의 생애뿐만 아니라 먼 훗날까지 이미 하나님은 바라보시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일하실까요? 영적슬럼프를 극복하고 일어선 한 신앙인, 우리와 다를바 없는 엘리야를 통해서 진행하십니다.

놀랍게도 지금 그가 서있는 곳은 호렙산입니다. 호렙산 어떤 곳인지 여러분 잘 아시죠?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양을 치던 모세를 하나님께서 처음 만나주신 곳입니다. 그리고 출애굽의 역사적 사명을 주신 곳이죠. 이 곳 에서 하나님은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었던 엘리야를 일으키시고 귀한 사명을 담아 보내게 됩니다.

영적 슬럼프를 벗어났다면.. 하나님은 분명 새로운 시선과 열정과 사명을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 슬럼프를 통해 좀 더 하나님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일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제자들이 자신들의 소명을 잃은 채 다시 어부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부활한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그들을 먹이시고 다시 소명의 자리를 주셨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복음의 죽은 증인이 아니라 산증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영적 슬럼프를 겪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 모습에 한탄 하는게 아니라 영적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 할 것인가 입니다. 영적 슬럼프가운데 있다면. 쿨 하게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내 영적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한편으로는 영적슬럼프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은 영적 슬럼프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과거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로 이어집니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이 필요한자에게 회복을, 도전이 필요한 자에게 도전을, 그분의 사랑이 절실한 자에겐 사랑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각자가 잘 안 되는 부분, 매번 넘어지는 그 부분도 잘 아시며,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그 환경도 이미 알고 계십니다.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포기라는 단어를 우리에게 던져주신 적이 없습니다. 쉼을 주시고 떡과 물을 주시는 하나님, 세미한 음성으로 다시 깨우시는 하나님, 혼자라 투덜거리는 엘리야에게 이미 동역자를 예비하신 하나님 그리고 다시 일어나 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주시고 새롭게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를 섬세하게 일으키신 그 하나님이 여러분과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제 교회 문을 열고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실 때 여러분이 발걸음 하는 곳곳마다 영적 진원지가 될 줄로 믿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여러분께 그분께서 묻고 계십니다. 어떻게 답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고 싶은 진심은, 네가 지금 여전히 하나님 앞에 서있다는 것을 확신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두려움도 낙심도 포기도 다 떠나갈 줄로 믿습니다. 우린 약하지 않습니다. 이제 나아가 뜨거운 영성으로 새롭게 생명을 살리고 이웃을 사랑하며 복음 전하는 삶에 몸부림치며 여전히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하나님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강릉교회 공동체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