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 사무엘상 6장 13-21절 [저주인가? 축복인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들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헌법에 보장되어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받고 싶은 복은 거의 동일합니다. 가족 건강, 넉넉한 경제력, 언제든 전화하면 만날 수 친구 몇 명, 적당한 권력과 명예가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이것이 내가 안 되면 자식들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 참패하자 하나님의 법궤를 전장에 가지고 가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법궤를 모시고 갔지만, 승리는커녕 제사장도 전사하고 하나님의 법궤까지 블레셋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야훼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샬롬을 누리면서 잘 살았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법궤를 메고 가고 전쟁을 승리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참패하고 법궤까지 이방인들의 손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법궤를 되 찾아올 방법이 없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는 살아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만약에 인간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하나님이라면 전능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의 창조주십니다. 스스로 계신 분이시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일을 감당하시는 줄 믿습니다. 스스로 사랑이자 행복이자 샬롬의 본체이신 분이십니다.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을 내 아버지이시게 우리들은 행복하게 믿어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독종의 재앙이 법궤가 가는 곳마다 생기고 사람들이 죽어가니 결국에는 법궤를 이스라엘 땅으로 보내기로 하고 나름 예를 차려서 새끼 딸린 엄마소에게 멍에를 메서, 새 수레에, 금 독종 예물까지 준비해서 암소가 이탈하지 않고 벧세메스까지 가면 이 모든 재앙이 이스라엘의 신이신 야훼 하나님의 손에 의한 것이고, 그렇지 않고 암소가 새끼 송아지 생각이 나서 날뛰거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원인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라고 자기들이 해석을 준비해 놓고 보냈습니다. 암소가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조용히 벧세메스에 도착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것을 기뻐하더니 수레가벧세메스사람 여호수아의밭 큰돌 있는곳에 이르러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드리고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궤와 함께 있는 금보물 담긴상자를 내려다가 큰돌위에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삼상 6:13-15)

벧세메스 사람들은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를 드렸습니다.

비록 믿음은 없지만 새끼 딸린 암소와 새 수레에 금 쥐와 금 독종으로 예물까지 실어서 하나님의 법궤를 실어 보냈습니다. 암소가 수레를 벧세메스에 그것도 여호수아의 밭에 있는 큰 돌앞까지 와서 딱 서는 것입니다. 벧세메스의 여호수아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400여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넌 여호수아와 이름이 똑같은 사람의 밭에 섰다고 블레셋 사람들도, 이스라엘 사람들도 나름의 영적이 해석을 했을 것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싣고 암소를 번제물로 수레를 화목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물은 수컷이라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법궤를 실었던 수레와 소이기 때문에 세속적인 것에 쓸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몽땅 불태워서 번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하나님의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9-10)

블레셋 사람들도 새 수레, 새끼 딸린 암소, 금쥐, 금독종으로 법궤를 보내면서 나름 예의를 차렸습니다. 제사법에는 위배되지만 벧세메스 사람들도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서 번제물로 삼아서 다른 제사까지 드렸습니다. 우리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 이 정도로 구별된 예배를 준비하고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블레셋 여러 도시의 모든 재앙은 법궤 때문이었습니다.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드린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삼상 6:16-18)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법궤까지 탈취해서 돌아왔습니다. 승리의 전리품인 법궤를 다곤 신전에 함께 두었다가 자신들의 신인 다곤 신이 넘어지고 자빠지고 손목과 목이 불어지는 곤욕을 치렀습니다. 더군다나 독종이 발생해서 사람들이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법궤를 보내는 성읍마다 똑같이 사람들에게 독종이 발생해서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벌벌 떨었습니다. 의논한 결과 이 모든 재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법궤를 빼앗아 와서 재앙을 내린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생긴 질병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심한 끝에 나름대로 새 수레를 만들고, 송아지 딸린 암소에게 멍에를 메서 법궤를 실어 보냈습니다. 송아지 딸린 암소를 고른 이유는 암소가 새끼 생각이 나서 날뛰면 하나님이 내린 재앙이 아니고, 암소가 벧세메스까지 하나님의 법궤를 얌전하게 실고 가면 이 재앙은 하나님이 내린 것으로 판단하고 확인하기 위한 자기들의 꾀였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도움 없어도 스스로 하나님의 언약의 법궤를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가져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주인되심을 블레셋이든, 이스라엘 백성이든 언제든지 필요하시기만 하면 스스로 나타내시는 줄 믿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블레셋 족속들에게 이 모든 재앙은 야훼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블레셋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확인해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여하한 상황에서도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법궤는 저주입니까? 축복입니까?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삼상 6:19-21)

옛날엔 우리나라를 東方禮儀之國이라 불렀습니다. 동쪽에 있는 예와 의의 핵심가치로 여기며 사는 나라라고 세계가 그렇게 불렀습니다. 지금은 東方無禮之國이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저의 선친은 초등학교졸업이 학력의 전부인데 비해 한학을 하셔서 예의범절에 대해서 철저하셨습니다. 고향을 방문하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데 청마루에서 큰 절로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할머니와 부모님을 뵙는 기쁨과 즐거움 보다는 이 예를 차리는 것이 무척 불편했는데 살다보니 이것이 얼마나 제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게 하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청년시절 친구 집에 놀러가서 마당에서 대충 인사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친구 부모님들을 방안에 들게 하고 청마루에서 큰 절로 인사를 드리고 무릎을 꿇고 앉으면, 그때부터 친구 부모님들이 칙사 대접을 해 주십니다. 어린 아이들의 무례함은 얼마든지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성한 사람의 무례함은 용납되지 않고, 용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지켜야 할 예의를 알아야 하고, 자신의 행동거지를 책임지고 행동해야 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법궤가 이스라엘 땅에 와서도 재앙이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법궤가 자신들의 땅에 들어오자 암소를 번제물로, 수레를 화목으로 삼아서 하나님께 제사도 멋있게 드렸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법궤를 함부로 들여다 본 까닭에 70명이 죽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은 하나님께 대충 예의를 차려도 용납해 줄 수 있는 이방인이 아닙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궤에 관한 규례와 법도를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법궤가 저주입니까? 축복입니까? 법궤는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켜야 할 믿음의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서 자신이 형편만 토로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방인이 아닙니다. 믿음의 강릉가족입니다. 법궤가 축복이 되도록 언약의 말씀대로 믿음의 예의를 잘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