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 사무엘상 4장 1-22절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스라엘]

사람이 살면서 정이 떨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은 장례를 장의사라는 전문인이 다 해 줍니다. 우리는 가서 고인의 얼굴을 한번 보고 예배드리면 끝입니다. 제가 강릉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성도들이 돌아가시면 장로님이 직접 수의를 입혀드렸습니다. 그때 시신을 만져보면 그 서늘한 냉기는 이 세상 어떤 것에서도 느낄 수 없는 죽음의 온도입니다. 얼음의 냉기는 비교가 안 됩니다. 사고가 나서 피를 흘렸을 때도 피비린내도 역겹기가 한이 없습니다. 여름에 시신이 썩는 냄새도 세상 어떤 부패한 냄새보다 역겹습니다. 제 생각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살았을 때는 화장품, 향수 뿌려서 향기롭게 인생을 살지만 영혼이 떠난 인간의 시체가 이 세상 어떤 피조물보다 가장 역겹고 냄새나는 것임을 오관을 통해서 느끼게 해서 인간의 정을 떼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리면서 관을 덮기전에 유족들에게 마지막으로 고인의 얼굴을 보라고 합니다. 어떤 유족들이 아쉬워서 고인의 얼굴을 손으로 만지는데 만지시는 순간 표정이 얼어붙습니다. 왜냐하면 시신의 냉기에 정이 뚝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생전의 따스한 온기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정을 떼고 떠난다고 합니다.

사랑하고 살아야 행복합니다. 사랑받으며 살아야 행복해집니다. 사랑만하고, 정만 주고 살면 나중에는 피곤이 누적돼서 정을 주면서 사랑하면서 불행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미운 정도 들고, 고운 정도 들면서 함께 주님 만날 때까지 변치 않고 살아야 행복합니다. 모두 변치않고 그날까지 동고동락하시길 주님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라 원인과 이유를 알면 인생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소리로 외치매땅이 울린지라 블레셋사람이 그외치는 소리를듣고이르되 히브리진영에서 큰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삼상 4:3-6)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 400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전쟁에 패하고 4000명이 죽은 원인과 이유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 편을 들어주지 않아서 전쟁에 패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궤와 함께 불량한 두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까지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 전장에 나오자 이스라엘 군사들의 사기가 충천해서 소리를 치니 이번에는 블레셋 진영이 벌벌 떨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너희 블레셋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법궤를 전장에 가져오고 두 제사장이 동행했어도 전쟁에 참패해서 군사들이 3만명이 도륙을 당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공무원 한분이 북한군의 총탄에 죽은 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북새통인데 3만명이 장정들이 전장에서 죽었습니다. 비통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제사장이 불량해서 제사를 멸시하고 제대로 드리지 않음으로 법궤와 제사장이 있어도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사59:1) 강릉가족 여러분~ 하나님도 믿음도 제대로 알고, 이해할 수 없는 파란만장의 인생길에서 어떤 일을 만나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의 有終之美를 거둡시다.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도망하였고 백성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사십 년이었더라(삼상 4:15-18)

찬양대가 찬양을 할 때, 시작도 잘했습니다. 중간에 화음도 좋았어요. 그런데 마무리가 깔끔하게 끝나지 않고 흐지부지 되면 갑자기 썰렁해집니다. 하지만 시작도 그럭저럭 시작했습니다. 중간에는 잠시 화음이 춤을 추며 삐걱거리다가도 마지막에 한 목소리로 짜잔~ 맞아떨어지면 갑자기 아멘~ 박수가 우렁찹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이 처음과 중간을 다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집안 배경으로 화려하게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중간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이 멋있어야 합니다. 돌아가실 때가멋있어야 그분의 일생이 빛이 납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다 화려하게 빛나다가 마지막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으면 그분의 화려했던 일생이 다 추해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이 가장 강력하게 기억의 흔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40년도 중요하고, 98년을 산 것도 중요하지만 엘리 제사장은 인생의 마지막이 가장 비참했습니다.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궤가 이방인들의 손에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 충격으로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불어져 죽었습니다. 제사장 40년, 98세가 자랑이어야 하는데 제사장 엘리는 마지막이 참혹했습니다.

강릉교회도 61년 동안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앞으로의 인생 얼마를 살든, 지난 세월 무엇을 했던, 불현듯 찾아올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서 잘 준비하시고, 부디 내가 떠난 후에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믿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항상 머물게 합니다.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하였더라(삼상 4:19-22)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고, 시어버지도 돌아가시고, 남편도 죽었다는 소식에 비느하스의 아내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고 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부르고 죽었습니다. <이가봇= 영광이 어디에 있느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나버렸기에 하나님의 보호막과 울타리가 없어져서 이런 참혹함을 당한다고 한것입니다. 시아버지와 두아들과 며느리가 하루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쟁에 참패해서 청년군사들이 3만명이나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희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것이요 그의 이름은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우리의 소망이 찾아오셨습니다. 영광이 찾아오셨습니다.

아무리 불러 봐도, 아무리 울어 봐도, 죄로 얼룩진 이 세상에 구원의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인간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성령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불러주시고 세워주셔서,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도 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도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슬픔과 절망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임마누엘의 아버지 되신 줄 믿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약속의 말씀에 따라 믿음은 아버지의 영광이 내 삶의 자리를 지키시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힘입니다. 철저하게 예배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셔서 영원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 보호 속에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