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 사무엘상 2장 27-36절 [모든 복을 내리던 중에]

코로나19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씀들을 많이 하는데,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코로나19가 정말 예수꾼과 무늬만 예수꾼을 구별하시는 것 같고,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참된 예배자와 구경꾼이었던 예배자들을 구별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복음 &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순교를 각오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하시는 것 같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2000년 기독교 역사에 교회가 박해와 환란을 당할 때 마다, 참된 믿음의 순교자들을 배출했습니다. 박해와 환란을 통해 배신자들도 나타났습니다. 환란과 박해를 통해서 알곡과 쭉정이가 구분되었습니다.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에도 역사의 가장 큰 환란을 통해서 순교자와 배신자,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쭉정이와 배신자가 되지 않도록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고 끝까지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Q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Q 세상의 권력 & 물질 = 부귀영화가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보라 오늘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과 복을 택하라(신30:19)

하나님께서 생명과 복도 주시고, 사망과 저주도 내리십니다. 그런데 생명과 복&사망과 저주를 받는 것은 스스로 선택과 결정에 따라 받는 것입니다. 선택과 결정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사람이엘리에게와서그에게이르되여호와의말씀에너희조상의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삼상 2:27-28)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여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민족과 가문과 사람을 택하셔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야기는 생략하고 400년 전의 일을 말씀합니다. 애굽에서 바로의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레위지파를 택하여 제사장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레위 지파와 후손들만 거룩한 제사장의 옷 에봇을 입고, 하나님의 제단에 올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분향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아무도 함부로 먹을 수 없는 화목제물을 먹도록 엘리와 두 아들에게 은혜와 복도 허락하셨습니다.

지구촌 70억 인구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40억 명이 있습니다.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이 40억이 있습니다. 성경도 읽기는커녕 본적도 없는 인생이 40억 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자도 들어보지 못한 영혼들이 40억이 있습니다. 예배당도 하나 없는 나라와 도시들이 수두룩합니다. 육신도 억압과 통제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감옥 같은 삶을 살고, 참된 기쁨과 감사의 영혼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오늘도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는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구역장으로, 교사로, 찬양대원으로, 이런저런 봉사자로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엘리와 두 아들에게 열두지파가운데 구별하여 택하여 제사장의 가문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많고 많은 민족과 사람들 중에 구별하고 또 구별하여 제사장으로 세움받은 영원히 영원히 영광스러운 직분과 직책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세상에 그 많고 많은 사람가운데 부르시고 택하셔서 맡기신 직분에 죽도록 충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29-30)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하나님을 멸시하느냐?

엘리와 두 아들은 그렇게 받은 영광스럽고 복된 제사장의 직분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의 옷 에봇을 입고, 제단에 올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분향할 권세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아무도 함부로 먹을 수 없는 화목제물을 먹도록 허락받은 은혜와 복도 하찮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아버지 엘리는 두 아들에게 단호하게 훈육하지 않았습니다. 대충 넘어갔습니다. 때가 되면 잘 하겠거니 여겼습니다. 죽을까봐 매를 들지 않았습니다. 자존감 떨어질까 봐 벌주지 않았습니다.

엘리와 두 아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과 똑같지 않습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교사들이 체벌을 해도, 벌을 세워도 부모님들의 반응을 자기 자식이 잘못해서 받은 벌이라고 감사히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름 그대로 <스승의 사랑의 매>라고 확신했습니다. 지금은 고소부터 합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시험에 빠질 정도로 직분을 복되고 귀하게 여깁니다. 그렇게 귀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에 충성, 헌신, 순종으로 잘 감당합니까? 심지어 자식들보다 더 귀하게 여깁니까?

나를 존중히 여기는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죽도록 충성, 헌신, 순종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삼상 2:35-36)


하나님께서 친히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십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아니하면 내가 네게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옮기리라(계2:4-5)

만약에 엘리와 두 아들이 제사장 직분에 충실했더라면 촛대를 옮기시겠습니까? 엘리와 두 아들에게 허락하신 제사장의 직분을 참고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촛대를 옮기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셨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제사장의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충실한 제사장이 필요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제사를 업신여기지 않고, 제물에 탐욕을 부리지 않고, 자식을 하나님과 제사와 제물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 않는 충실한 제사장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티는보고 네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1-5)

제가 보지 못하는 제 눈속의 들보를 생각하면서 현재 대한민국의 교회와 성도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엘리와 두 아들과 똑같습니다. 몇몇 목회자들의 행태는 엘리와 두 아들과 어떻게 이렇게 닮았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분들이 다른 성경을 읽고 있든지? 아니면 성경을 거꾸로 읽는 것 같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강릉시민의 구원의 방주 강릉제단과 강릉가족들을 가족과 같이 귀하여 여기고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이 받은 직분에 충실하십시오. 직분을 빼앗기면 나중에 구걸하며 살아야 합니다. 강릉교회와 가족들과 맡은 직분을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