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을 편들어주고 품어 주는 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특별한 능력이나 가진 것이 없어도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인정
하고, 받아주고, 품어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하지만 자신을 거부하고, 비난하고, 욕하는 곳, 받아주지 않는 곳에는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런 곳을 떠나서 자신을 수용해 주는 곳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다윗 장군 곁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삼상 22:1-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서 도망치는 와중에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벌써 400명씩이나 모였습니다. 누가 전도하거나 강요한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자원해서 모였습니다. 400여명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사람들인데 사울 왕보다 다윗 장군의 곁이 훨씬 더 편했습니다. 인간다웠습니다. 인정받고 대우받았고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고, 자존감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강릉교회에 등록하는 이유는 여기 오면 인정받고 대우받고 위로가 되고,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강릉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시기와
질투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교회에 등록하든지 새 가족들이 위로받고,
인정받고, 편안하도록 섬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것이 교회고, 믿음이고, 복음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도록 애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옛날 부족국가 시절에는 절체절명의 나라를 위해서 전장에 나갈 때, 자신의 가족이 적에 잡혀서 노예가 되고 종이 되는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가족을 먼저 죽이고 절대로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전장에 나갑니다. 대업을 위해
출정할 때, 가족들의 안전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다윗도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스럽습니다.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왕
과 함께 있었더라(삼상 22:3-5)
선교사로 나가시는 목사님들도 가족 특히 자식에게 얽매이면 선교 제대로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아예 결혼을 포기하기도
하고, 부인과 자녀들을 한국에 두고 알아서 생존하라며 홀로 떠나기도 하고, 선교지에서 차별없이 자녀를 교육하시는 훌륭한
분들도 계십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족에게 얽매여서 선교사역을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 몰두
하다 보면 선교는 뒷전이 되고,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선교지에서 안일하게 살기도 합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 좋겠지만, 허상입니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 마리 토끼라도 제대로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 장군은 가족들을 모압 왕에게 부탁하고 자신은 요새에 머물며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
절대적으로 순복하기로 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큰 사역을 할 때에는 잠시 가족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사역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양손에 떡을 다 쥐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의나라와 의를 구하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가 복음과 교회에 충성하면 내 가족들 특히 자녀
들의 인생길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하게 이루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내 탓이로다~! 다윗이 책임을 통감합니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워야 백성이 평안합니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야 단체가 평안합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비겁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 놓으면 모든 사람들이 불편합니다. 힘이 듭니다. 사울 왕이 고향 베냐민 족속들을
선동합니다.
"베냐민 족속들아 유다 지파 이새의 아들이 너희들을 천부장 백부장 세울 줄 아느냐? 어림도 없다. 안 죽이면 다행인줄 알아라.
내가 베냐민 지파 출신인데 아무도 내 편을 들어 주지 않느냐? 내 아들조차도 다윗을 편들고 내 편을 들지 않는구나"
불평하며 분노합니다. 그때 에돔 사람 도엑이 다윗을 도와준 제사장들을 고발합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골리앗을 칼도 주고, 음식도 주고, 축복기도도 해 주는 것을 내가 보았습니다"
당장에 군사를 보내서 아히멜렉과 아들들을 다 잡아 대령시켰습니다. "왜 다윗과 공모하며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고 심문합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 장군은 왕의 사위이자 충성스런 호위대장이자 왕실에서 존귀한 분이 아닙니까? 그래서 떡도 주고,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칼도 그에게 준 것뿐입니다." 도엑이 학살합니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삼상 22:18,19)
이 소식을 듣은 다윗 장군의 고백입니다.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삼상 22: 20-23)
강릉가족 여러분~!
사울과 다윗 중에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으실 것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 마음과 생각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사울을 왕
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다윗 가문을 왕가로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책임질 줄 아는 믿음의 영웅
입니다. 남 탓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끌어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위로받고 용기얻고 충성합니다.
강릉교회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런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믿음의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들이었으면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편들어주고 품어 주는 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특별한 능력이나 가진 것이 없어도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인정
하고, 받아주고, 품어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하지만 자신을 거부하고, 비난하고, 욕하는 곳, 받아주지 않는 곳에는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런 곳을 떠나서 자신을 수용해 주는 곳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다윗 장군 곁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삼상 22:1-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서 도망치는 와중에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벌써 400명씩이나 모였습니다. 누가 전도하거나 강요한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자원해서 모였습니다. 400여명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사람들인데 사울 왕보다 다윗 장군의 곁이 훨씬 더 편했습니다. 인간다웠습니다. 인정받고 대우받았고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고, 자존감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강릉교회에 등록하는 이유는 여기 오면 인정받고 대우받고 위로가 되고,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강릉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시기와
질투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교회에 등록하든지 새 가족들이 위로받고,
인정받고, 편안하도록 섬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것이 교회고, 믿음이고, 복음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도록 애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옛날 부족국가 시절에는 절체절명의 나라를 위해서 전장에 나갈 때, 자신의 가족이 적에 잡혀서 노예가 되고 종이 되는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가족을 먼저 죽이고 절대로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전장에 나갑니다. 대업을 위해
출정할 때, 가족들의 안전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다윗도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스럽습니다.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왕
과 함께 있었더라(삼상 22:3-5)
선교사로 나가시는 목사님들도 가족 특히 자식에게 얽매이면 선교 제대로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아예 결혼을 포기하기도
하고, 부인과 자녀들을 한국에 두고 알아서 생존하라며 홀로 떠나기도 하고, 선교지에서 차별없이 자녀를 교육하시는 훌륭한
분들도 계십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족에게 얽매여서 선교사역을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 몰두
하다 보면 선교는 뒷전이 되고,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선교지에서 안일하게 살기도 합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 좋겠지만, 허상입니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 마리 토끼라도 제대로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 장군은 가족들을 모압 왕에게 부탁하고 자신은 요새에 머물며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
절대적으로 순복하기로 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큰 사역을 할 때에는 잠시 가족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사역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양손에 떡을 다 쥐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의나라와 의를 구하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가 복음과 교회에 충성하면 내 가족들 특히 자녀
들의 인생길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하게 이루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내 탓이로다~! 다윗이 책임을 통감합니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워야 백성이 평안합니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야 단체가 평안합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비겁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 놓으면 모든 사람들이 불편합니다. 힘이 듭니다. 사울 왕이 고향 베냐민 족속들을
선동합니다.
"베냐민 족속들아 유다 지파 이새의 아들이 너희들을 천부장 백부장 세울 줄 아느냐? 어림도 없다. 안 죽이면 다행인줄 알아라.
내가 베냐민 지파 출신인데 아무도 내 편을 들어 주지 않느냐? 내 아들조차도 다윗을 편들고 내 편을 들지 않는구나"
불평하며 분노합니다. 그때 에돔 사람 도엑이 다윗을 도와준 제사장들을 고발합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골리앗을 칼도 주고, 음식도 주고, 축복기도도 해 주는 것을 내가 보았습니다"
당장에 군사를 보내서 아히멜렉과 아들들을 다 잡아 대령시켰습니다. "왜 다윗과 공모하며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고 심문합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 장군은 왕의 사위이자 충성스런 호위대장이자 왕실에서 존귀한 분이 아닙니까? 그래서 떡도 주고,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칼도 그에게 준 것뿐입니다." 도엑이 학살합니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삼상 22:18,19)
이 소식을 듣은 다윗 장군의 고백입니다.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삼상 22: 20-23)
강릉가족 여러분~!
사울과 다윗 중에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으실 것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 마음과 생각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사울을 왕
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다윗 가문을 왕가로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책임질 줄 아는 믿음의 영웅
입니다. 남 탓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끌어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위로받고 용기얻고 충성합니다.
강릉교회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런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믿음의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들이었으면 정말
행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