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3. 창 42:9-25 [진실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요즘 자주 떠올리는 단어가 ‘진실’이라는 말입니다. 뉴스를 들어도 정치를 보아도 늘 서로 싸우는 이유가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의 말을 진짜로 믿어야 할지? 진실인 줄 알고 있었는데 완전히 속을 때가 있죠? 아주 불쾌하고 분노가 일어납니다.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미움도 진실함이 그 사람에게서 보이지 않을 때 우리 마음속에서 불일 듯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요셉과 형들이 만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진실함을 붙들고 살아가는지 돌아보고 우리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진실함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모든 강릉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에게 주신 파격적인 은혜

요셉의 생애는 한마디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노예로 던져진 인생이었습니다. 그것도 참아 내기 버거운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파란만장한 요셉의 생애를 회복시키셨습니다. 꿈을 꾸고 그 꿈으로 인해서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꿈을 해석해 줌으로 감옥살이 인생에서 대제국 이집트의 총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형들에게 버림받고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져 외롭게 살아가던 요셉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로 있을 때도, 감옥에서 생활할 때도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았습니다. 진실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을 하나님은 지켜보셨고, 그와 함께하셨고, 그의 인생을 형통한 길로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요셉 그의 위대함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보게 되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눈앞에 보이는 현상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진실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우리의 눈을 뜰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 힘든 인생을 살아가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아직도 고통의 터널 한복판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에서 살아가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 내 인생의 주도권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파란만장한 인생이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형통한 길이 열립니다. 아무리 안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십니다. 창세기 39장 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9장 21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고 형통하게 이끌어 가셨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상황이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주시면 우리는 형통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요셉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위치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바로 왕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41장 40절에서 바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이 말씀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단어는 “파격”이라는 말입니다. 파격적인 대우를 요셉에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요셉에게 주어진 것은 세상 어느 조직에서 꿈도 꿀 수 없는 파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배후에 계신 분을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긴 합니다. 그것은 바로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파격적인 은혜”였습니다. 요셉만 이런 파격적인 은혜를 받았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무슨 대단한 일을 했기에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었습니까? 그 대답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 그 은혜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20년 만의 형제들과 만남

하나님께서 온 지면에 기근을 심하게 보냈습니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어서 이집트 백성들에게 양식을 팝니다. 가나안땅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가정에도 기근으로 인해서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부추겨서 이집트에 양식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니 이집트에 가서 양식을 사 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0명의 형제들이 이집트에 도착했습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고 형들은 요셉 앞에 와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17세에 꾸었던 꿈이 조금씩 진행되는 순간입니다. 요셉은 단번에 그들이 자기의 형들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모른 체합니다. 42장 7절 하반 절에 보면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묻습니다. 대이집트 제국의 총리가 직접 나와서 어디서 왔는지 추궁(追窮)합니다. 그리고 8절은 다시 한번 말합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형들은 요셉을 전혀 알지 못했고, 요셉은 20년 전에 자기를 팔아버린 그 형들임을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원수 같은 인간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20년 전에는 형들에게 둘러싸여 아무런 힘도 한번 써보지 못하고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요셉은 권력도 힘도 돈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말 한마디면 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목숨도 맘대로 할 수 있는 절대권력의 중심에 앉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강릉 가족 여러분! 여러분이 요셉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며 ‘그때 내게 왜 그랬냐?’고 따지겠습니까? ‘이제 너희들이 당할 차례야’ 하면서 형들에게 보복하고 힘을 과시하겠습니까?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요셉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창세기 45장 5절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어떻게 이런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파격적인 은혜에 깊이 빠져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들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확인하는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 진실함을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진실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9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요셉이 옛날 일을 떠올립니다. 형들에게 꿈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형들이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라고 한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첩자로 몰아붙입니다. 형들은 졸지에 첩자로 몰려서 모두가 죽게 생겼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내 주여”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을 변명하기 시작합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형들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자신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동생 요셉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거짓을 말하고 있는 형들에게 요셉은 자신들이 정직한 자들이면 진실함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합니다. 이번에 진실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결과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죠! 16절에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요셉은 형들의 진실한 마음을 보기 원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위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20절에 “너희 막내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거짓말하고 속이는 자가 아니라 이제는 진실함을 보여줄 차례가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형제들끼리 하는 대화입니다. 21절에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형제들이 서로 말합니다. 형들은 요셉을 팔고 죄책감에 시달려 살았습니다. 요셉이 없어진 이후로 이 가정에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한숨과 절망적인 모습을 매일 보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습니다. 형들이 이제 서로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한 결과로 우리가 이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도 지금 괴로움을 당함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지난 잘못을 서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진실을 증명해야 할 때입니다. 진실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말해야 깨어진 관계가 해결됩니다. 죄는 감추고 덮을수록 더욱 힘을 과시합니다. 더 많은 죄를 짓도록 유도합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고 갑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싫어합니다. 죄를 감추고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시편 51편 6절에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요한복음 8장 44절 하반 절에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말씀합니다. 진실함은 빛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실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진실함은 서로에게 신뢰를 쌓아 줍니다. 죄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하지 못할 때 공동체는 파괴되고 결국 죄에 굴복해야 합니다.

강릉 가족 여러분~ 요셉의 인생을 이끌어 주시고 함께 하심으로 그의 삶에 파격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파격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지금까지 서로에게 미움과 아픔과 상처를 주었다면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로 대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도 어려움을 직면하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로 진실함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