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8 사무엘상 8장 10절-9장 10절 [사울, 요구된 자]

사무엘서는 사사기와 열왕기 사이에 있는 책입니다. 책의 위치가 말해주듯 사무엘은 사사시대와 왕정시대의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사시대와 왕정시대 사이에서 사무엘은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사사들을 대신하여 재판하는 역할도 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의 역할도 했으며,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역할도 했습니다. 주변 여러 나라에 왕정체제가 들어서서 강력한 왕권국가를 수립해 갈 때도 사무엘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모시며 주어진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무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다스릴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요구했습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께 왕을 달라고 노골적으로 수 차례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듣고 앞으로 세워질 왕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불합리한 방법으로 다스릴지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8장11-18절에 그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삼하 8:11-18)


이 정도로 말씀하셨으면,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왕 세우기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 듣기를 거절하며 하나님께 왕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에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한 이 요구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이 편하게 들리십니까? 아니면 불편하게 들리십니까? 불편하게 들릴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하는 이 말씀을 읽으며,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미어졌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가슴 아파함이 저에게도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애굽 땅에서 종으로 살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자유인으로 살게 하셨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요?

 

이 이야기의 뒤에 나오는 9장부터 11장까지의 내용이 그들이 요구한 한 왕이 세워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왕은 누구입니까? 여러분도 잘 아는 사울입니다. 먼저 사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 살펴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울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베냐민 지파에 속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사사기의 끝에서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매우 작은 지파였습니다. 겨우 다른 지파의 억지스러운 계획으로 명맥을 유지한 지파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베냐민이라는 가장 작고 낮은 지파 출신으로 왕이라는 자리에 선택됩니다.

 

둘째로 성경은 사울의 외모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키가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더 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많고 많은 특징 중에서 사울의 키가 크다는 것만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요? 키가 크다는 표현은 성경에서 다른 나라의 장수들을 묘사할 때 자주 쓰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은 큰 키를 가진 왕을 통해 ‘이방인과 같이 되고 싶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셋째 그의 이름은 ‘사울’입니다. 이 이름의 히브리어 뜻은 ‘요구 되어진’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왕이 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사울이라는 사람이 왕이 되었다’는 것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요구 되어진 사람이’ 왕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원한 왕이 아니라, 사람들의 요구에 부합하여 선택된 사람임을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울의 외모와 환경을 볼 때, 사울이 왕이 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점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사울’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민족들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왕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 주려고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선택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사람들의 요구로 세워진 왕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요구는 무엇입니까? 다른 주변국들과 같이 힘 있는 왕을 세워서 전쟁에서 이기는 나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왕을 신뢰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눈에 보이는 왕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 믿은 것입니다.

 

그렇게 왕을 요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욕심과 요구에 대한 결말이 무엇입니까? 사울, 다윗, 솔로몬, 그리고 여러 왕들의 역사는 폐허 속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로 귀결됩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 간 것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이기 이전에, 이스라엘의 욕심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구약성경이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왕을 요구했던 이스라엘의 욕심과 잘못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째로 사울은 히브리어로 ‘샤알’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기도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기도하다’라는 말의 뜻이 한 가지 의미이지만, 히브리어에는 이 단어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먼저는 ‘요구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우리의 필요를 구하거나 요청할 때 하는 행동이 ‘요구’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구할 때 하는 행동이 ‘요구’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된 것도 다 이런 요구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샤알의 두 번째 뜻은 ‘질문하다’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나 궁금할 때 하는 행동이 질문입니다. 혹은 공손히 낮은 자의 자리에서 높은 분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질문의 형태를 사용 합니다. “이렇게 해도 될까요? 아니면 저렇게 해도 될까요? 혹은 이것이 필요한데 가능할까요? 이렇게 진행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이런 질문을 사용하여 상대방에게 자신의 필요를 공손하게 요청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선택한 것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두 번째 메세지는 기도입니다. 사무엘서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기도를 경계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악한 행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구는 기도하는 사람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됩니다. “하나님! 이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저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이것을 이루어 주세요. 하나님! 저것을 이루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겠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 되겠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요, 악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묻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왕이 필요합니까? 하나님, 제가 이 길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나님, 이것 해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이것을 선택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질문해야 합니다. 사무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 두겠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삶의 주인으로 두지 않고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두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께 요구할 수 없나요? 늘 여쭙는 기도만 해야 하나요? 우리가 힘들고 답답할 때 아무 요청도 하지 않고 참기만 해야 하나요? 정말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나요?” 저는 이 질문에 “아니오! 요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주의 뜻대로”라는 말을 넣어서 요구할 수 있습니다. “주의 뜻이면 이 일을 허락해 주십시오! 주의 뜻이라면 이 길을 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막 14:36)

 

예수님도 하나님께 요구하셨지만, 최종 결정권은 하나님의 뜻에 맡겼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나의 요구를 받아내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서겠다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는 많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순간 순간 하나님께 기도하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기도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고 왕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기도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은밀하게 일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