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G. 베니>가 쓴 <사랑에 항복하다.>는 책 속에 사랑하는 일에 실패할 때마다 사람들이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은 사랑을 하려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 안에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영적인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사랑이었음을 다시금 기억한다. 나는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후회도 하고 실망도 한다.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움을 청한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지만 변하는 것은 거의 없다.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모든 초점이 나의 실패, 후회, 낙심, 열심 등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아 집착을 포기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모든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려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 집착과 자기 맘 대로 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는 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따라오지 않는 상대방을 오히려 미워하고 더 싫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자기만의 기준의 틀에 집어넣고 자꾸 재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생각과 욕구의 틀에 집어 넣고 이곳에 삐쭉 나오면 가위질하고, 저쪽에 삐죽이 나오면 칼로 절단해 버립니다. 그러니 상대방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이 가위질과 칼질을 당해 만신창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사랑이 변하여 미움이 되고, 미움이 자라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랑이 변질하고 배반할 때, 원수가 됩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원수가 되지 않습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원수가 되지 않습니다. 원수는 항상 붙어 있던 사람입니다. 원수가 되기 전에는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다해서 충성하고 헌신하고 사랑한 사람이 조금씩 조금씩 변질하다가 어느 날 배반하고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미워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여러분 곁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아주 가까웠던 사람들이 전부 원수로 변해 멀어진 것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기독교의 회심은 거저 사랑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회심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되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한 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박탈 당하는 삶이자 죽음의 길입니다. 오늘 가정의 달에 내가 예수님의 사랑인지? 확인해 봅시다. 우리의 대답은 아직 이겠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예수님의 사랑이 되는지? 고민하시고, 기도도 많이 하셔서 믿음으로 예수님의 사랑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가 결국에는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을 했습니다.
성격 차이로 이혼한 노부부는 이혼 날 변호사와 함께 통닭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며 다툽니다. 그동안 서로를 배려한다고 했던 행동이 오히려 오해였음을 깨닫고, 각자 반성하며 연락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타이밍이 엇갈리고 결국 할아버지는 밤사이 세상을 떠납니다. 할머니는 뒤늦게 남편의 진심이 담긴 마지막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대성 통곡하기 전에 소통 잘 합시다. 마음 이야기를 잘 들읍시다~!!!
1. 영감<할멈/여보>에게 한 번 물어나 봅시다.
2. 한 번만 더 꾸우욱 참아봅시다.
3. 생각났을 때 즉시 말로 자세히 표현합시다.
4. 좋은 말만<축복> 합시다.
5. 왠만하면 하자는 대로 합시다.
사랑은 단순히 훈련을 잘 받거나 손을 들고 맹세를 한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와야 합니다. 심령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 심령에 사랑이 항상 가득 차 있거나, 옹달샘처럼 사랑이 샘솟아야 합니다. 사랑은 해도 해도 항상 부족합니다. 가족 사랑도 항상 부족합니다. 부부사랑도 항상 부족합니다. 이웃사랑은 말 할 것도 없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사소한 것에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불평불만이 전혀 없으신 분 계십니까?
부모님께 불평불만이 없는 아들딸이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불평불만이 없으신 부모님 계십니까?
가족이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 뿐이지 남편과 아내에게 전혀 불평불만이 없는 부부는 존재 하지 않습니다. 아니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에게 불평불만이 없는 아들딸도 없습니다. 아들딸에게 전혀 불평불만이 없는 부모도 없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만족하면 둘을 요구하고, 둘이 족하면 셋, 넷을 채워주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 욕구입니다.
오늘 말씀은 설교 제목으로 이미 결론이 났습니다.
아내 사랑, 남편 존중 남편 사랑, 아내 존중
사도 바울 목사님께서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가정에 가족 사랑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 사랑을 특히 부부사랑을 말씀합니다. 부부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가 예수님께 복종하는 것>과 똑같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성을 가장 적절하면서 감동적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가 예수님께 복종했듯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사랑했듯이 남편들은 아내를 목숨 바쳐 사랑하고 하셨습니다.
혹시 여기에 더 보태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강릉가족 여러분~! 부부소통, 가족간의 소통을 잘 하십시오. 말하기도 잘 해야 하고, 듣기도 잘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대성통곡을 해야 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사랑을 표현합시다. 일만 하다가, 돈만 벌다가 후회할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즐겁게 사랑으로 사는 믿음의 가정과 가족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데이비드 G. 베니>가 쓴 <사랑에 항복하다.>는 책 속에 사랑하는 일에 실패할 때마다 사람들이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은 사랑을 하려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 안에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영적인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사랑이었음을 다시금 기억한다. 나는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후회도 하고 실망도 한다.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움을 청한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지만 변하는 것은 거의 없다.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모든 초점이 나의 실패, 후회, 낙심, 열심 등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아 집착을 포기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모든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려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 집착과 자기 맘 대로 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는 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따라오지 않는 상대방을 오히려 미워하고 더 싫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자기만의 기준의 틀에 집어넣고 자꾸 재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생각과 욕구의 틀에 집어 넣고 이곳에 삐쭉 나오면 가위질하고, 저쪽에 삐죽이 나오면 칼로 절단해 버립니다. 그러니 상대방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이 가위질과 칼질을 당해 만신창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사랑이 변하여 미움이 되고, 미움이 자라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랑이 변질하고 배반할 때, 원수가 됩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원수가 되지 않습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원수가 되지 않습니다. 원수는 항상 붙어 있던 사람입니다. 원수가 되기 전에는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다해서 충성하고 헌신하고 사랑한 사람이 조금씩 조금씩 변질하다가 어느 날 배반하고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미워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여러분 곁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아주 가까웠던 사람들이 전부 원수로 변해 멀어진 것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기독교의 회심은 거저 사랑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회심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되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한 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박탈 당하는 삶이자 죽음의 길입니다. 오늘 가정의 달에 내가 예수님의 사랑인지? 확인해 봅시다. 우리의 대답은 아직 이겠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예수님의 사랑이 되는지? 고민하시고, 기도도 많이 하셔서 믿음으로 예수님의 사랑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가 결국에는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을 했습니다.
성격 차이로 이혼한 노부부는 이혼 날 변호사와 함께 통닭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며 다툽니다. 그동안 서로를 배려한다고 했던 행동이 오히려 오해였음을 깨닫고, 각자 반성하며 연락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타이밍이 엇갈리고 결국 할아버지는 밤사이 세상을 떠납니다. 할머니는 뒤늦게 남편의 진심이 담긴 마지막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대성 통곡하기 전에 소통 잘 합시다. 마음 이야기를 잘 들읍시다~!!!
1. 영감<할멈/여보>에게 한 번 물어나 봅시다.
2. 한 번만 더 꾸우욱 참아봅시다.
3. 생각났을 때 즉시 말로 자세히 표현합시다.
4. 좋은 말만<축복> 합시다.
5. 왠만하면 하자는 대로 합시다.
사랑은 단순히 훈련을 잘 받거나 손을 들고 맹세를 한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와야 합니다. 심령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 심령에 사랑이 항상 가득 차 있거나, 옹달샘처럼 사랑이 샘솟아야 합니다. 사랑은 해도 해도 항상 부족합니다. 가족 사랑도 항상 부족합니다. 부부사랑도 항상 부족합니다. 이웃사랑은 말 할 것도 없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사소한 것에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불평불만이 전혀 없으신 분 계십니까?
부모님께 불평불만이 없는 아들딸이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불평불만이 없으신 부모님 계십니까?
가족이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 뿐이지 남편과 아내에게 전혀 불평불만이 없는 부부는 존재 하지 않습니다. 아니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에게 불평불만이 없는 아들딸도 없습니다. 아들딸에게 전혀 불평불만이 없는 부모도 없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만족하면 둘을 요구하고, 둘이 족하면 셋, 넷을 채워주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 욕구입니다.
오늘 말씀은 설교 제목으로 이미 결론이 났습니다.
아내 사랑, 남편 존중 남편 사랑, 아내 존중
사도 바울 목사님께서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가정에 가족 사랑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 사랑을 특히 부부사랑을 말씀합니다. 부부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가 예수님께 복종하는 것>과 똑같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성을 가장 적절하면서 감동적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가 예수님께 복종했듯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사랑했듯이 남편들은 아내를 목숨 바쳐 사랑하고 하셨습니다.
혹시 여기에 더 보태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강릉가족 여러분~! 부부소통, 가족간의 소통을 잘 하십시오. 말하기도 잘 해야 하고, 듣기도 잘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대성통곡을 해야 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사랑을 표현합시다. 일만 하다가, 돈만 벌다가 후회할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즐겁게 사랑으로 사는 믿음의 가정과 가족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