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30 창세기 12장 1-2절 [꿈의 회복] - 김성진 목사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서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출발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부족은 가나안이라는 지금 이스라엘 땅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아브라함에게 시키실 때, 하나님의 꿈을 갖고 계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그 하나님의 생각을, 하나님의 관점을 찾아보려 합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떠나서 다른 곳에 들어 가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떠나는 것은 막연하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어디로 떠나야 할까요? 본문에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 기본적으로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동안 영향을 받았던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친척이나 부모님 집을 떠나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마 이것이 가장 우리에게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은 참 좋은데, 왜 이 모든 것을 떠나야 하는지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괴로운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떠나라고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 중의 하나는 가족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왜 그 가족을 떠나라고 하시는 걸까요?

지금까지 우리들과 가까이 지냈던 모든 것들, 영향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들, 지금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 그 모든 것들, 이런 것들로부터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함께 살지 말고 먼 다른 나라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나 친척들, 또는 현재까지 살아왔던 그 환경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보통 미국 사회에서도 5-6명만 거치면 모두가 다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영향력입니다. 이것이 본토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곧 삶의 자리인 것이지요. 독일어로 삶의 자리란 Sitz im leben이란 단어로 삶의 터전인 곳을 말합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의 인생이 나오게 됩니다. 이 자리의 영향이 우리의 평생의 삶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를 떠나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즉, 떠나라 하시는 것은, 바로 그 명을 받든 이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삶이란 자신이 결정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동안 영향을 받았던 그 모습 그대로는 결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기존의 삶의 습관이나 가치관을 가지고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떤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꾸라는 말입니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가치관, 세계를 보는 눈을 바꾸라는 말인 것이지요.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뜨라는 말입니다. 당장 집을 나가라는 말이 아니라 인생을 보는 시각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당장 이사를 가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관점으로 우리의 생각을 옮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태도와 생각을 바꾸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자신의 몸을 맡겼습니다. 몸만 맡긴 것이 아니라 인생을 맡겼습니다. 이 말씀이 하라는 대로 자신을 위탁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위탁이 매우 중요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위탁할 수 없다면 아직 신앙의 깊이를 맛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처럼 위탁할 수 있어야 새로운 인생의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위탁은 어떤 일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뜨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눈을 떠야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곧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2)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갈라디아서 3:8)

이 역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복음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을 받는다는 말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보고 새로운 땅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온 부족 사람들 다 데리고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갔던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 그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음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아브라함이 복음을 받고 다음으로 아브라함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꿈인 것이지요.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복이 무엇일까요?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케 해 준다는 복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복음이 들어가 약속의 땅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만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이 아니고, 아브라함만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 아니고, 모든 족속이 다 구원받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꿈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복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그 역사를 위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이름을 창대케 하시며 우리에게 구체적인 것들까지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이 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면서 교회 안에서 너무 기뻐하며 사는 일에 만족하면 안됩니다, 교회는 우리가 복 받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에 내가 받은 복을 나누기 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밖에서 살면서 나를 통해 세상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만족해야 합니다. 주일과 주일 사이가 기뻐야 하고 월요일에 대한 기대감이 넘쳐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꿈을 가장 멋지게 머금고 있는 말씀 중 하나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요한계시록 7:9-10)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 우리가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게 된 것,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라고 고백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된 것, 이런 복을 받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온 세상의 복으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 선교이고 오직 하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꿈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오늘 말씀에 있는 것처럼 세상의 복으로 살아가는 것, 세상을 위해 선교적 삶을 사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꿈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복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영향을 주어야 할 것은 오직 말씀입니다. 말씀만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네가 세상의 복이 되기 위해서 나는 너를 축복하고 나는 너의 후손들을 축복하고 나는 너의 이름을 크게 해 줄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에 순종하는 인생,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