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2 사무엘상 5장 1절-12절 [하나님의 손] - 황성민 목사

언약궤가 아니라, 하나님

 오늘 본문은 블레셋에 빼앗긴 하나님의 언약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패배로 하나님의 언약궤는 에벤에셀에서 

블레셋으로 옮겨졌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포로처럼 블레셋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아무런 힘이 없는

신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너무 무력하게 패배했고, 언약궤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 블레셋의 포로로 사로잡혀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블레셋의 포로가 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사실 오늘 본문도 그런

의미를 은연중에 계속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법궤가 블레셋 지역으로 넘겨진 것은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두 가지 교육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에게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언약궤

를 옮겨온 것은, 하나님을 전쟁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바르지 못한 신앙을 가진다면, 하나님은 사무엘상 4장의 내용처럼 반드시 우리를 떠날 것입니다.(이가봇)

그러니 우리는 무엇이 바른 신앙인지 늘 분별해서 하나님을 올바로 믿어야 합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언약궤를 가져오자고 

주장했던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제사장들처럼 살아선 안 되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미 신앙의 본질에서 궤도를 이탈했습니다. 성경

은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그 순간

부터 우리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신앙은 껍데기 신앙입니다. 생명을 잃어버린 신앙이기 때문

입니다.

 

두 번째는 블레셋이라는 이방지역에 ‘하나님이 어떤 신인가?’를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전쟁에서 얻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아스돗에 있는 다곤신전에 두었습니다. 다곤은 블레셋 사람들이 믿는 신

입니다. 약 3천 년 전, 당시의 전쟁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고대시대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믿는 신이 승리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다곤 신이 여호와를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다곤신상 옆에 자랑스럽게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다곤’이 ‘여호와’를 완전히 굴복시켰

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하루 만에 벌어졌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그것은 언약궤는 멀쩡한데, 다곤 신상은 언약궤 앞에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은 채로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다곤 신이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머리를 땅에 데고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 듯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일이 우언이라고 생각하고 다곤 신상을 원래대로 세워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어제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얼굴이 땅에 엎드러진 것은 물론

이고, 머리와 손목이 부러져서 그것들이 문지방에 있고, 다곤 신상의 몸뚱이만 남게 된 것입니다. 놀란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

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스돗 지역에 심한 독종이 퍼졌습니다. 독종은 독성이 강해서, 심한 고통을 유발하고, 잘 치료

되지도 않는 종기입니다. 아스돗은 이 독종 때문에 거의 망할 뻔 했습니다. 그들은 놀랐고 당황했습니다.

 

고민을 거듭한 후, 그들은 마침내 언약궤를 가드라는 지역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곧 언약궤

를 에그론이라는 지역으로 다시 한 번 옮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은 더해만 갔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스

라엘 지역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언약궤가 블레셋 지역을 순회하는 동안 그 땅은 거의 초토화 되었습니다. 그들의 고통

이 얼마나 컸으면 하늘에까지 닿을 만큼 컸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 그 고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우리는 이 본문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일을 일어나게 한 것은 언약궤 자체가 아니라 

곳곳에 언급된 ‘하나님의 손’이라는 사실입니다.

6절에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7절에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9절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

11절에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이 말은 ‘이가봇’ 즉, 이스라엘을 떠난 하나님의 영광이 지금 어디에 있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것은 블레셋 땅 

한 복판에서 하나님이 스스로 블레셋을 물리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읽은 사무엘상이 언약궤에 대해서 어떤 신비

한 능력도 말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손’,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능력으로 직접 일하고 계신

다고 말합니다. 언약궤 자체가 어떤 신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블레셋 땅 안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블레셋은 하나님의 큰 재앙을 경험하고 나서, 하나님의 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낼 준비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신일까? 혹시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우연은 아닐

까?” 이와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6장에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짐을 옮기는 수레를 

새롭게 만들고, 그 수레에 언약궤를 실은 후, 아직 한 번도 멍에를 매어 보지 않은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억지로 수레를 끌게 

했습니다.

 

그들이 새로 만든 수레는 사용한 적이 없는 수레이기 때문에 수레바퀴가 뻑뻑합니다. 그래서 수레를 끌기가 헌 수레보다 어렵습니

다. 젖 나는 소라는 말은 송아지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소를 말합니다. 이런 소는 본능적으로 송아지와 떨어지려 하지 않습

니다. 수레를 소의 등에 메어도, 어미 소는 자기 새끼에게 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소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런 

불리한 조건을 만들어 놓고, 소가 똑바로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 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정말로 소가 흔들림 없이 벧세메스로 

가면, 이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소의 본능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면, 앞에서 일어

났던 모든 일들은 우연히 생긴 일로 간주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소가 어떻게 움직였을 것 같습니까? 사무엘상 6장에 등장한 이 두 마리의 소는 좌로도 치우치지 않고, 우로도 치우치

지  않고 똑바로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 향했습니다. 사랑하는 송아지를 남겨둔 채, 자신의 본성과 상황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일에 이 두 마리의 소는 참여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 일을 끝까지 지켜보기 위해 거의 국경지역까지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이 두 마리의 소가 보여준 일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이 일로인해 그들은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삼상7:13) 

이스라엘을 넘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일 이후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약궤가 아니라, 여호와를 사모했다고 합니다.(삼상7: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진짜인 것 같지만, 가짜인 것을 자주 만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언약궤를 

붙드는 신앙을 자주 경험합니다. 무엇이 신앙인지, 무엇이 바른 믿음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왜냐하면, 

바른 신앙을 제대로 분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하나님을 믿는 중에, 말씀에 

비추어서 늘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아닌 언약궤를 

믿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엘리 제사장 시대의 장로들과 제사장들처럼 무엇이 진짜 믿음

인지 분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신앙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버리십니다. 그러니 늘 스스로를 

돌아보시고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힘을 의지하거나,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 보려는 태도에서 내려

오십시오. 그것들이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는 것은 인간의 무능함입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것과 하나님께서

스스로 일하시는 그 통치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손을 벗어난 언약궤가 블레셋 지방을 돌아다니며, 그 모든

지역을 초토화 시켰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며, 그 분 스스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증명하십니다. 때로는 사무엘과 같이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내 보이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행하시고, 통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신앙의 초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영혼을 집중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 분의 통치에 집중할 때, 하나님을 

더 바르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강릉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