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 룻기 2장 13-23절 [고난주간의 믿음]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숨 쉬는 것은 똑같습니다. 교회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성도들이 최선을 다해서 성전 곧 예배당을 건축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가장 거룩하고, 경건하고, 구별되게 드리기 위해서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본질이고, 가장 고귀한 사명이고,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뉴스에서 계속 예배를 드리는 것을 표현하면서 <교회에서 예배를 강행>한다고 말합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교회와 믿음은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교회와 믿음은 때로는 세상에 목숨걸고 저항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순응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와 믿음은 결코 세상의 비위를 맞추는 곳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인 여러분이 교회와 믿음을 평가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평가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세상은 교회와 믿음을 평가할 자격 없는 인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서 평가받는 그날까지 약속의 말씀따라 변함없는 믿음으로 교회를 잘 섬기는 순교자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도 정신 차리십시오. 누가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어느 교회에서 어느 목사에게 배웠습니까?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구속하시고 영생의 구원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감격으로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이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까? 여러분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강릉가족 여러분은 지금가지 여러분이 위로받고, 여러분이 만족하고, 여러분의 기분 좋으라고 예배를 드렸습니까? 자기를 위해서 예배드렸습니까? 날 구원하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함으로 기쁘고 즐겁게 예배드렸습니까? 본질에서 벗어난 얘기는 하지마십시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4:7)


오늘은 수난절 여섯번째 주일 곧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 다음날부터 한 주간이 고난주간입니다. 오늘 함께 봉독한 룻기의 말씀으로 3000년 전의 믿음의 사람들이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미움과 시기가 가득한 절망뿐인 세상 속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았는지 추적해 보겠습니다.

10여년전에 가뭄과 기근이 왔을 때에 보아스는 엘리멜랙 처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의 기업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지 않고, 유다 베들레헴 고향 땅에서 믿음의 기업을 잘 지켰습니다. 세월이 흘러 엘리멜랙은 두 아들과 함께 모압에서 죽었지만, 보아스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지식과 지혜도,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넉넉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장도, 면장도, 군수도 아니고 성주도 아니지만 유다 베들레헴 성민들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영어로 Opinion Leader 합니다.

여러분도 삶의 자리가 대단한 직책이면 더 좋고, 그렇지 못해도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의사결정에 영향력 있는 Opinion Leader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보아스가 엘리멜랙의 가정의 대를 잇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베들레헴 성읍 사람들이 보아스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무랄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도 통달해서 여호와의 말씀에 위배되는 처신도 하지 않고, 절차도 하자가 없고, 보아스가 엘리멜랙의 가정의 대를 잇는 일에 반대하거나 불편함이 없도록 일을 해결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유다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사람이 된 보아스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보아스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사람입니까? 그렇게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받은 은혜를 그들에게 베풀었습니다. 룻기는 지금부터 약3000년쯤의 기록입니다. 신라시대가 2000년 전이니깐 고조선시대입니다. 3000년 전에는 종들은 짐승처럼 사고팔던 시대입니다. 유대사회에서 이방인 모압 여인은 종들 중의 종입니다. 하녀들에게 예의 차리는 것은 주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방인 모압 여인과 말 엮는 것도 정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상하게 떡도 주고, 초에 찍어 먹도록 배려하고, 추수하는 일군들에게는 이삭까지 의도적으로 남겨주어서 룻이 이삭줍기를 빨리 많이 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리는 것까지 분수에 넘치는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룻이 도리어 황송해 합니다.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룻 2:10)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룻 2:13)

하나님의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면 감동을 창조합니다.

여러분~ 혹시 다른 사람에 선물을 할 일이 생기면 꼭 받는 사람이 감동이 되도록 선물하시기 바랍니다. 감동받은 선물은 평생 기억하면서 감사하며 나를 위해서 축복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베풀려면 받는 사람이 감동이 되도록 차고 넘치도록 은혜를 베푸십시오. 믿음의 사람 보아스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일군들에게도, 하녀들에게, 이방 여인 룻에게도 차고 넘치는 감동적인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보아스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힘없고 멸시 천대받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웃 사람들이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이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은혜를 베푸시길 축복합니다.


룻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책임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뻔히 알고 계시면서 그 길이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길이기에 복종하며 찾아오신 길입니다. 모압여인 룻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 충만한 마음입니다. 이방 여인 룻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의 마음은 고난을 직시하면서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기에 기꺼이 이방 여인 룻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 줄 것입니다. 이것이 종려주일입니다.

이것이 고난주간의 믿음의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태도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뭘~ 조금 해 놓고 광고는 대서특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해 놓고도 부디 광고하지 말아달라고 신신 당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업적도 아닌 것을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처럼 떠벌리고 다닙니다. 어떤 분은 정말 자랑해야 할 업적을 남기고도 자기이름 석자 기록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거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은총을 베푸실 것같습니까?

보아스와 룻, 그리고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장차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믿음의 가문의 대를 이었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살았습니다.

고난 주간입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4:13-16)

이 고난주간의 믿음이 변치 않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