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5 출애굽기 13장 17-22절 [시작이 92%입니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교수님이 <꾸물거림>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습니다. 한번은 교수님이 5천명의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결심하고 언제 시작하는지를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하기로 작정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8%뿐이었습니다. 결국 일단 시작을 하면 성공할 확률이 92%이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교수님은 시작이 반이 아니라, 시작이 92%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날이자 어린이 주일입니다. “한 아이가 자라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말이 있듯이 한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려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모든 가정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어른들이 삶의 중심인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가정의 중심은 아이들입니다. 교회도 어른들이 중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세대, 교회학교, 새가족이 중심입니다. 교회학교가 중심인 교회가 가장 바람직한 교회공동체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항상 넘칠 때 미래가 희망적입니다.

 

헤르만 헤세 장편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자 우주이다.” 우리는 흔히 어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을 말썽꾸러기 또는 문제아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떡잎부터 짐작할 수 있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앞으로 주어지는 수많은 기회와 시간들이 놓여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무한한 꿈의 범위는 어느 누구도 감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꿈꾸는 강릉요셉> 프로젝트를 통해서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여러분의 꿈꾸는 요셉> 프로젝트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와 가정이 하나가 되어서 우리의 후손들이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응원하시고, 후원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의 시작을 응원하며, 아이들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4,6)

 

중국 노(魯)나라의 복부제라고 하는 사람이 신부라고 하는 마을에서 원님으로 일했습니다. 어느 해 가을 추수 때가 되었을 때 제(齊)나라 군대가 이 마을에 쳐들어왔습니다. 들판에는 곡식이 누렇게 익어서 추수를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저 아까운 곡식을 전부 원수한테 뺏기게 되었구나.” 안타까워 하며 술렁거리면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적이 쳐들어오기 전에 내 것 남의 것 가릴 것 없이 아무나 가서 빨리 거둬 오는게 좋겠다.” 그러자 복부제 원님이 엄중한 목소리로 “전쟁 때이건 평화 시절이건 간에 백성들에게 남의 것을 공짜로 가져가는 버릇을 들여 놓으면 나중에 이것을 고치는 데는 10년 세월이 지나도 고치기 어려 우느니라. 안 된다. 불을 질러라.” 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상황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가 아닌 <절대적 가치관>입니다. 이것이 <꿈꾸는 강릉 요셉> 프로젝트의 목적이자 이유입니다.

 

<절대적인 가치관 = 세상의 선한 청지기 = 자율 & 책임>


먼저는 자율입니다. 

<자율>은 자기 자신의 규칙, 계율, 법을 스스로 정하여 스스로 지키는 것입니다.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율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타율>은 불편하고 <자율>을 좋아합니다. 강릉교회의 믿음의 다음세대들에게도 <자율적 믿음>을 심어주기를 소원합니다. 강릉교회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자원제>를 도입했습니다. 부임하는 첫해 서리집사를 자원하도록 했는데 그때까지 38년 동안 단 한 번도 교회 직분과 봉사를 스스로 결정해 본적이 없는 교인들이 <집사자원서>가 낯설기만 했을 겁니다. 기한까지 자원하신 분들은 거의 절반정도였습니다. 당회에서 자원하신 분들만 <집사>로 입명했습니다. 당시에 당회원들도, 자원하지 않지 못하신 분들도 떠들썩했습니다. 지금까지 <집사>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회에서 결정하고 임명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책임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1-2)

 

책임은 충성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직분과 믿음도 충성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충성하는 사람은 책임있는 사람입니다. 직분은 충성하는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 책임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책임지지 않는 세상입니다. 세상 어디를 봐도 책임있게 사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책임한 세상의 소금이요 빛인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있는 삶을 맛보여 주어야 합니다.

 

자율과 책임은 자신이 선수입니다. 자신이 감독입니다. 자신이 심판입니다. 자신이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추진하고, 자신이 투자하고, 어떤 고난과 박해가 와도 오직 예수, 오직 예수의 믿음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럴 때에 자율과 책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이들과 특별히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과거 출애굽 때에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신 것처럼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자율과 책임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김으로 언제나 구름 기둥, 불 기둥으로 인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