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0 야고보서 2장 1-13절 [심판을 이겨봅시다]

세상은 차별이 심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차별이 심합니다. 차별이 없는 나라도 없고, 차별이 없는 곳도 없습니다. 어떤 이유와 핑계를 내 걸고서라도 차별하려고 하는 곳이 세상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아들딸들을 차별합니다. 부모는 아들딸 차별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지만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차별이 심각합니다. 나는 차별하지 않고 키웠다고 강변하시는데 당사자는 지독한 차별을 받았다고 서러워하면서 하소연합니다.


사실 차별이 없어야 할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차별이 심하다면 심합니다.

2000년 전, 교회 안에서 차별이 심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아니하느냐

(야고보서 2:1-6)

 

교회는 차별하지 말라. 그리스도인은 차별하지 말라.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문재인 대통령시절 2020년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의원이 제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하자 30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이라고 이름을 바꿔서 법안을 제안했습니다. 1년 뒤 6월 16일에 더불어민주당 이상민의원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고, 이어서 8월 9일에 박주민의원이 같은 이름으로 발의하고, 8월 31일에는 더불어민주당 권인숙의원이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 발의했습니다. 이 법률안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청원으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런저런 이름으로 같은 법안을 청원함으로 이법의 통과와 시행을 앞당기려는 의도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별하면 안 됩니다. 평등평화의 나라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자유민주주의 나라와 백성들의 기본적 도덕적 가치입니다. 하지만 평등평화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평등법을 강제로 지키도록 법으로 강제 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발상입니다. 사회주의가 인민의 평등평화를 모토로 내 걸고 법으로도 100% 모든 인민의 평등평화를 보장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사회주의 나라가 모든 인민의 평등평화를 지키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다. 포장은 평등 평화이고 내용은 억압과 통제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다른 사회단체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교회와 설교의 존폐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한국기독교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극렬하게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과 신앙으로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용납할 수 없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속, 강단에서 <이단을 이단이다.>라고 설교하면 차별금지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고소고발을 당하는 겁니다. 또 <동성애-동성결혼>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고소 고발당합니다.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주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이것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평등이라는 미명 아래에 숨어있는 독소 조항들 중의 일부분입니다. 차별하면 안 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입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차별과 구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도 당연히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구별할 것을 누누이 말씀합니다. 남성과 여성을 구별해야 합니다. 제사장과 백성들은 구별해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로, 구별합니다. 찬양대 대장과 지휘자, 반주자를 구별합니다. 교사와 학생은 구별합니다. 차별은 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됩니다. 각자가 직책에 걸맞게 져야 할 짐의 무게와 책임의 분량을 구별한 것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차별을 하지 말고, 구별은 분명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차별이라고 항변하기 때문입니다. 강릉가족은 차별과 구별을 확실하게 하면서 자신의 짐도 책임있게 잘지고, 다른 사람의 짐도 져 줄수 있는 넉넉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차별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사람들은 공평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해서 누구는 천국, 누구는 지옥에 보내는 것이 맞느냐<?>며 억지항변을 합니다. 하지만 심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선택에 대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피할 길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약에는 도피성을 만들어서 대속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도피성은 한시적이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속죄제물, 화목제물이 되셔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멸망시키시지 않고 영생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구별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2:8-9)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깁니다.

矜恤-불쌍히 여길 긍(아끼다) 구휼할 휼(근심,동정) =가엾게 여겨 돌보아 줌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께서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을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차별하지 않고 모든 죄를 용서하고 천국에서 영생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생명의 피를 대가로 지불한 언약입니다. 이 계약의 선택권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했고, 그 선택의 결과를 구별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차별 없이 제공한 이 복음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에덴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서 구별하셨고, 차별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 믿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아버지의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시고, 예수님 만나는 날 하나님 나라도 상속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