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30 창세기 37장 1-11절 [야곱의 꿈 하나님의 섭리]

꿈꾸는 강릉요셉 프로젝트에 대해서 강릉 가족들의 공통분모가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함께 지녔으면 하는 공통분모란, 강릉교회와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섭리를 꿈꾸며 평생에 하나님의 사람, 영에 속한 사람, 복 있는 사람, 축복의 통로, 주는 자의 복을 누린 요셉처럼 강릉교회와 다음 세대가 살아 나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소년부, 중등부, 고등부, 청년들이 요셉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꿈꾸고 그 꿈을 성취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특별한 사랑과 돌봄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누렸던 요셉은 한편으로는 좋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형들의 시기와 미움의 대상이 되어져 갔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사랑했던 라헬의 아들들이기에 엄마 없는 두 형제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았습니다. 특별히 요셉에게는 채색옷을 입히면서 열둘 가운데 마음속의 맏아들로 특별대우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각별한 사람을 받고 자란 요셉은 어려서부터 성실과 정직으로 똑소리가 났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도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영적인 장자, 상속자를 선택하시는데 자연히 말씀과 믿음으로 잘 무장된 요셉을 간택 하셨습니다. 장성해서 17세나 된 요셉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두 번씩 꿈꾸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 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세기 37:6-7)

형들의 반응.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창세기 37:8)

두 번째 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세기 37:9)

아버지 야곱도 꾸짖습니다.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두었더라(창세기 37:10-11)

사실 좋은 꿈이든, 좋지 않은 꿈이든 꿈을 꾸며 왠지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좋은 꿈은 알아서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꾼 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요셉도 형들이 묶은 곡식 단이 자신의 묶은 곡식 단에게 절하는 것이 신이 났을 것입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신의 별에게 엎드려 절하는 꿈을 꾼 후, 더 신이 났습니다.

이와는 달리, 그동안 차별대우를 참아 온 형들은, 요셉의 두 꿈 이야기를 들음으로 인해 그 마음 속 분노와 시기가 폭발했고, 결국 요셉에 대한 형들의 마음은 <사랑 제로, 미움 충만>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절호의 기회

기회가 오면 그것이 복인지 저주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절호의 기회가 하나님의 섭리인지 사탄의 시험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야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민족을 창조해야 하는 위대하고 원대한 섭리를 추진하시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이 섭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도 가슴에 품지 않고, 매일 목동으로만 살아가는 열 명의 형들은 전혀 깨닫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었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가슴에 응어린 진 불평등과 미운 오리새끼인 요셉을 향한 미움과 시기와 분노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하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드디어 사라센 상인들에게 동생 요셉을 은 20개에 팔아버렸습니다. 어느 누구도 요셉에 관한 진실을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하도록 엄청난 내용으로 혈맹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속사를 진행하시는 줄 믿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늘의 별,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백성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쥐도 새도 모르게 진행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도 야곱도, 요셉도 열 형제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 어떤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고 한번은 십자가 앞에 엎드려 하나님 아버지께 물어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셉은 항상 요셉

사람은 환경과 여건, 세월에 따라 좋은 쪽이든지 좋지 않은 쪽이든지 변합니다. 열번 잘해주다가 한 번 서운하면 한번이 열 번을 삼켜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믿음의 사람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강릉가족 여러분은 여하한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고 변하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물론 서운할 때도 있고, 마음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미울 때도 있고, 고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국까지 같이 가야 하는 가족이기 때문에 때로는 화도 내고, 나무라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싸움도 합니다.

 

형제자매는 죽어도 형제자매

아버지에게 매 맞았다고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자식은 자식이 아닙니다. 맞은 곳이 아파서 눈물 뚝뚝 흘리며 울면서도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야 아들 딸입니다. 생각과 의견이 맞지 않아서 타뒀다고 서로 얼굴도 안보는 사람은 원수지 형제자매는 아닙니다. 형제자매는 힘들고 어려울 때, 더욱 피붙이여야 합니다.

 

형들은 팔아먹었지만, 요셉은 꿈과 환상으로 극복했습니다. 종살이 감옥살이도 하나님의 섭리의 꿈으로 이겨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한 꿈을 가지고 억한심정, 복수혈전의 분노로 밤잠을 설치지 않았습니다. 억울해하며 절망하며 눈물만 흘리며 고개 숙이고 있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집에서도 믿음의 사람이었고, 종으로 팔렸어도 여전히 꿈꾸는 요셉이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도 여전히 믿음의 사람 요셉이었습니다. 일약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요셉은 아버지 집에 살던 꿈꾸는 요셉이었습니다. 부귀영화 명예권세를 다 가졌고, 결혼을 해도 요셉은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의 꿈을 꾸는 꿈꾸는 요셉이었습니다.

 

제가 꾸는 강릉교회의 꿈입니다. 꿈꾸는 강릉요셉입니다.

인생길에 마주치는 모든 아픔과 억울함과 고난을 하나님의 주권이요, 섭리요, 구속의 은혜라고 해석합니다. 형들 손에 종으로 팔렸을 때도, 피눈물 하는 종살이를 하면서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인생의 막장 감옥살이를 할 때도, 세상의 부귀영화를 두 손에 다 쥐고 호령하는 총리가 되었어도,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꿈꾸는 요셉이었습니다. 우리도, 꿈꾸는 강릉 요셉들도 언제 어디서든지 그런 삶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상천 목사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도 이 모습처럼 변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꿈꾸는 여러분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