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3 신명기 34장 1-8절, 사도행전 20장 22-24절 [사명이 능력이다]

복된 인생관의 출발점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음을 믿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세상에 내가 세상에 태어났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으로 태어났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감을 믿어야 합니다. 이 인생관이 확고하면 인생의 종착역이 공동묘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앞임을 알고 세상을 겸손하게, 성실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로마서 11:36)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주의 뜻대로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요한계시록 4:11)

사람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부모님을 통해서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 살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탄생은 사명이요, 죽음은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입혀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사명입니다. 이것을 확보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명은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통해서 생명을 주셔서 세상에 태어남입니다. 그 사람이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영적 거듭남입니다. 육신의 태어남, 성령의 거듭남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을 받지 못하면 육신으로 살다가 육신의 죽음 이후 영원한 유황불 못에서 영벌을 받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따라 은혜와 복으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죄 = 화살이 과녁을 빗나감.

가장 큰 죄 중의 죄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뜻과 목적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사는 인생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멋대로 최악의 결론을 내린 인생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태복음26:24)

불행한 사람은 사명을 찾지도 않고 사명을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 죄 가운데 지옥에서 영벌을 받기에 그 무지가 슬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고 포기하지 않고 또 전하는 것입니다.

  

사명은 하나님께 받아야 합니다.

사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기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의 목적을 자기가 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창조주만이 창조하신 목적과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바울 목사님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

고백합니다. 사명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행복은 사명으로 살 때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습니다. 사명으로 사는 사람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면서도 감사와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확인하는 방법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하라(고린도전서 10:31)

둘째. 그 일을 할수록 구원이 일어나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영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일을 하면 할수록 복음이 전해지고, 구원이 발생하고, 세례 교인이 생겨나야 합니다.

셋째. 그 일에 영원성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만사는 일시적이고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시적이고 유효기간 속에서 영원성이 창조되어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넷째. 은혜가 풍성해야 합니다.

어떤 형편이든지 샬롬이 있어야 합니다. 샬롬이 깨지는 것은 사명을 가장한 시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목숨입니다.

대충해도 되는 일이 있고, 집중해야 하는 일이 있고,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목숨을 건 사명이 십자가입니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목숨을 걸지 않는 일은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사도행전 16:3-4)

사명을 발견한 사람을 두려움이 없기에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말하고 행동하고 거침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명은 능력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은혜와 복은 전부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강릉교회가 받은 은혜와 복은 강릉교회의 사명입니다. 강릉교회의 능력입니다. 강릉교회의 힘입니다. 강릉교회의 영향력입니다. 강릉교회의 사명의 크기입니다. 

사명을 알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은혜와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명기 34:7)

모세는 느보산에 올라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건너가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후손들을 약속의 땅까지 인도해서 왔다는 사명완수에 감격과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사명은 믿음의 맞춤옷입니다.

모세와 바울은 자신이 해야 하는 사명이 여기까지임을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닌 요단강 건너편 느보산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3-24)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인 사람이 영에 속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른 것이 가장 큰 보람인 사람은 아직 육의 속한 사람입니다. 물가에 맘대로 뛰면서 놀고 있는 어린 아이입니다. 모세처럼 바울처럼 사명을 다 감당한 후에 하늘나라로 가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명을 발견하면 인생의 방황은 끝입니다. 사명에 숨 쉬고, 사명에 공부하고, 사명으로 돈 벌고, 사명에 충성, 헌신, 순종으로 살 수 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모세와 바울처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칠 때까지 모세처럼 죽을 때까지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사명 따라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