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5 요나 1장 17절-2장 2절 [죽음이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 김정오 목사

오늘 요나는 그의 인생에 최대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고통과 고난의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겨웠겠습니까? 

너무나도 마음이 무너지고 삶과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입니다. 요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요나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요나 자기 민족들에게 있어서 니느웨 사람들은 원수 같은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악독이 가득하고 이스라엘 민족들을 억압하고

못살게 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일어나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일어나라는 것은 앉아 있던 사람에게 일어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호한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단호한 결단을 하고 니느웨로 가서라고 기록하는데 여기서 가라는 표현은 

요나 너의 개인적인 수고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결단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굳게 해서 가라는 겁니다. 움직이라는 겁니다.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가서 전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더욱 요나의 마음을 어렵게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그냥 이들이 심판

받고 멸망하기를 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싫은 겁니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악독이 내 앞에 상달

되었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이 저지르고 있는 모든 죄악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들이 내 앞에

올라왔기 때문에 내가 너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부당한 억압과 박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의 

소리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외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자녀가 고통 하고 있는데 부모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순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욥바로 내려갑니다.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그 배를 타고 멀리멀리 도망쳐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던 중에 

하나님께서 큰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셨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되었다고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요나는 폭풍을 만나는 순간 깨닫습니다. 고난의 원인이 자신 때문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며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제비뽑기를 통해 자신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죠.

그리고 뱃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나 때문이니 모두 살려면 나를 바다에 던지라는 겁니다. 이제 요나는 죽은 

목숨입니다. 한편으로는 너무하다 싶지 않으십니까? 아무리 잘못은 했지만 죽어야 끝이 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너무나 

냉정하다 싶기도 합니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재물을 빼앗았거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 말씀 한 번 듣지 않은 것이 다입니다.

 

그런데 죽어야 한다는 것이죠.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저라면 굉장히 억울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일 하나에 억울함을 느낍니다.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나, 불만을 쏟아낸다는 것입니다. 나도 이런데, 우리 주님은 얼마나 힘겨웠겠습니까? 주님은 그 작은 

잘못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흠을 찾으려 해도 흠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수치스럽고, 창피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분노가 일어났겠냐는 겁니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고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죠.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갔는데 행복했겠습니까? 평안했겠습니까? 누가 보아도 이제 끝났구나 싶다는 

겁니다. 이제 더 내려갈 곳도 없습니다. 2장 6절에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고 요나는 고백합니다. 이 표현은 중요한 것을 

보여줍니다. 높은 위치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요나서에서 4번이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욥바로 

내려갔더니, 두 번째는 1장 3절에 배에 올랐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원문상으로는 내려갔다고 표현합니다. 세 번째는 배 밑층으로 

내려갔을 때, 마지막으로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입니다.


이렇게까지 표현하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요나의 영적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할 때부터, 요나는 영적으로 계속해서 바닥을 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해보려 하지만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영적으로 좋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장할 수 없고 오히려 

더욱 고난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요나는 물고기 뱃속까지 들어왔습니다. 그곳에서 밤낮 삼일을 지냅니다. 

그 삼일은 요나에게 철저하게 죽어지는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삼일동안 무덤에 계셨듯이,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기 

위해 삼일 길을 가면서 자신의 모든 마음을 내려놓았던 것 같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제 모두 끝났다고 하는 그 순간, 최악의 자리

라고 하는 그 자리는 요나에게 다시 살아나는 시간과 은혜의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최악의 자리이며 죽음의 자리 같을지라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요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며,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서 요나에게 그곳은 최고의 성소가 되고, 

천국이 되고, 에덴동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구원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죽음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가 아니라 죽어짐의 시간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진짜 생명과 구원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정말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활의 은혜를 누리신 것입니다. 생명의 은혜를 누리셨고 승리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 은혜

는 철저하게 죽어진 사람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 더욱 값지고 귀하게 누려지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었었기 때문에 다시 살게 된 생명으로 더욱 기뻐하며 모두가 하나님을 보게 되며 은혜를 누리게 되었던 것처럼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동안 철저하게 죽어졌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관계가 회복되었기에 생명의 은혜를 누린 겁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새 힘을 얻고 위로받고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간절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간절함으로 예배는 드리지만 내가 죽어졌냐는 것입니다. 나를 번제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주세요. 복을 주세요. 내가 듣기 원하는 말씀을 

주세요.가 아니라. 제가 항복합니다. 제가 죽어졌습니다. 두 손 들고 나올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것들이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계신 그곳이 예배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물고기 뱃속과 같이 냄새나고 더럽고 나를 힘들게 하는

곳입니까? 나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는 이곳은 다시 살아나고자 오는 곳입니다. 

살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오는 곳이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죽어져야 하는 곳임을 기억하십시오. 죽는다는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겠다는 겁니다. 나보다 하나님께서 앞서시도록 하고 내 생각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생각으로 살아가겠다는 것

입니다. 나의 모든 것 내려놓겠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계속 자신의 것만 주장했겠냐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생각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두 손 들고 항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겠습니다. 나를 사로잡아 주옵소서. 

어떤 말씀을 하시든 어떤 것을 요구하시든, 내가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순종하겠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죽어질 때 

부활의 은혜,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하심이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것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 영광이 주어

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뒤에 올 축복과 은혜는 더욱 큽니다. 기대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승리자로서

귀한 인생을 그려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