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9. 신 6:24-25 [순종의 기쁨]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명기 6장 4~5절 말씀을 ‘쉐마 이스라엘’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그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려고 애를 씁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직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면, ‘쉐마 이스라엘’ 이 말씀을 잊지않고 순종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쉐마 이스라엘’이라고 기록한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기록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은 관계성을 나타냅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실천한다는 것은 관계성을 나타냅니다. 저희 가정에는 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첫째 아이의 이름이 승준이 입니다. 승준이가 제 말에 귀 기울여 듣고 그 말을 순종할 때는 저와 승준이의 관계가 진짜 가까웠습니다. 요즘 저는 아들에게 “인사를 잘하자!” 하루에 20번 정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이 5살이 아이는 인사를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인사를 왜 해야 하는지, 인사를 하면 좋은 점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제가 하는 모든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할 때와 지금은 자신이 판단해서 들을 거만 듣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저와 아들의 관계는 조금 멀어진 거 같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처음 만나서 연애를 할 때도 이러한 관계성은 나타납니다. 상대방이 마음에 든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그 말대로 말하고 행동을 합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지? 어떤 말을 좋아하지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합니다. 바로, 관계를 위한 순종을 하게 됩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왜? 순종해야 할까요? 부모님이시니까 당연히 순종해야 할까요? 부모님을 더 알고, 이해하고, 더 가까워지고, 더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관계를 위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원하실까요?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75세 되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99세가 되도록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큰 민족을 주신다고 약속하시고 25년이 지나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은 아들 이삭을 주십니다. 그 기쁨도 잠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 독자가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부를 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린만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 땅으로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을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 이삭을 결박하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칼을 잡고 이삭을 잡으려고 할 그 찰나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이 정도의 결단과 순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원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장치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이스라엘을 가보지 못했지만, 철저한 유대인들은 아직도 율법을 암송하고 지키도록 애를 쓴다고 합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이 모인 지역에 가면,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가 층마다 다 선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엘리베이터를 타서 층수를 누르지 않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지하철처럼 층수마다 다 멈추도록 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안식일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층수 단추를 누르는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걸음도 정해져 있습니다. 2,000걸음입니다. 그 이상을 걸으면 노동이 될 수 있어서 2,000걸음만 정해서 철저하게 아무 일도 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예전에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이러한 장치들이 있었습니다. 주일에는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주일에는 소비를 하지 않고 온전히 안식하고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서 주일에는 지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장치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기 위한 수단, 장치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무엇을 위한 순종일까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위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질책받지 않기 위한 순종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관계성을 위한 순종’이 되어야 합니다.


관계성을 위한 순종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던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버지의 온전하신 사랑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였습니다. 죄악 가운데 어둠 가운데 있던 우리의 영혼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의 영광으로 광명을 찾았습니다. 이러한 귀한 축복을 받았으므로 이후의 주시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명기 6장 25절입니다.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것이 우리의 의로움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의롭다는 단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순종이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죄 많은 우리를 의인으로 삼아 주십니다.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을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위한 순종을 통하여,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설교 말씀 제목을 ‘순종의 기쁨’으로 정해보았습니다. 순종이라고 하면, 굉장히 부담되고 하나의 짐으로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부담으로 여겨지지 말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비법, 참된 행복을 얻는 방법으로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처럼, 베드로처럼 순종함으로 날마다 하나님과 더 가까운 관계로 더 친밀한 관계로 믿음의 성장을 이루시는 강릉가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