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26 창세기 29장 31-35절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오늘 말씀은 야곱의 가정사입니다.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서 외갓집으로 피난 간 야곱이 이런저런 사연으로 관습에 의해서 외사촌 두 명을 다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자매일 때는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면서 잘 살았는데 한 남자의 아내가 되니 사랑의 질투로 자매의 갈등이 점점 깊어졌습니다. 

결국에는 야곱은 몸종 둘까지 또 아내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해석이요 설명입니다. 그 속에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향한 위대한 구원의 섭리가 들어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코로나 19로 인한 2021년의 여러분의 모든 상처와 고통이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으로 회복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당하고 겪어야 하는 고통가운데서 견딜 수 없는 것은 사랑받지 못하고, 거절당할 때의 고통이, 가장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이미 상처 난 상처를 더 깊이 후벼 파이는 통증은, 아프다고 소리치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아픔입니다. 그럼에도 소망이 있음

은 우리의 상처를 아시는 분이 계시며, 우리의 상처를 뚫어지게 주목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야곱의 첫째 아내, 레아의 상처와 눈물을 보시고, 닫혀있었던 태의 문을 여시고 영원한 상속자를 

주신 전능자 하나님 이십니다. 

 레아는 결혼은 했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가슴시린 상처를 품고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첫 번째 부인의 자리는 차지하고

있지만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상처는, 동생 라헬이 야곱으로부터 절대적인 사랑 받을 때, 더욱 초라하고 비참해 지는 아픔은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내가 힘들어서 힘든 것도 힘이 들지만 가장 가까운 사촌이 논을 사는 

것을 바라볼 때가, 배가 아프고 견딜 수 없는 큰 고통이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의 죄성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수일 동안 먹지 않아도 살고, 육신이 병이 들어도 살고, 직장에서 실직당해도 살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이미 

죽은 자와 똑 같습니다. 그만큼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으며 사랑받을 때, 가장 존귀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

해 주지 않는 사람과 한 가정에서 함께 사는 것은 고문이며, 형벌입니다.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버림받았다고 생각될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열등생이라고 믿어질 때..>

바로 그때가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아라는 싸인입니다.

야곱의 아내 레아가 그러했습니다. 남편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못할수록 레아는 점점, 더 조금씩 조금씩 더 은혜의 사각지대

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동생 라헬이 남편의 사랑을 흠뻑 받고, 남편 사랑에 빠져 있을 그 시간에 레아

는 기도실에 엎드려 눈물콧물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때 레아에게는 남편의 사랑은 기갈이고, 가뭄이지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

님께서 레아를 찾아오셨고, 레아를 만나 주셨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레아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수 있었습니다. 남

편의 사랑이 핍절했기에 레아는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응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레아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도의 

응답은 남편 야곱의 사랑보다 비교할 수 없는 크고 크신 사랑이요 은혜요 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레아의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사노라면 때때로 레아와 같은 고통을 모든 사람들이 겪을 때가 있습니다. 칭찬을 받아 본적이 없는, 인정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맛본적이 없을 때, 인간을 자신을 학대합니다. <이 못난 인간아 죽지 죽어~ 살아서 뭐하니> 믿음의 사람은 바로 그때 

하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사정없이 무릎 꿇고 엎드려야 합니다.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야 합니다.

죽고 싶은 고난이 찾아와 나를 사로잡을 때, 무릎으로 기어서 하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면 응답하십니다. <하늘 아버지~ 내 편 되

어 주십시오.> 소리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늘 아버지 편에 서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오늘 지워지지 않도록 심령에 새겨야 할 진리

는 세상은 부질없습니다. 부모님을 의지하고, 형제자매를 의지하고, 결혼해서 남편과 아내를 의지하는 것을 다 부질없습니다. 

얼마나 더 사람에게 속고, 사람에게 실망하고, 얼마나 더 사람에게 당해봐야 사람과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부질없음을 확신하시겠

습니까?

 

안식과 평안은, 사람으로부터 처절하게 정망 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속해야 있어야 합니다. 상처가 크면 클수록 영광도 크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실망이 크면 클수록 하늘 아버지의 

위로와 사랑과 은혜와 복도 큰 것입니다. 레아는 마침내 네 번째 아들 유다를 얻었습니다. 레아는 유다를 낳고는, 더 이상 남편 

야곱의 사랑을 기대하거나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영적으로 성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아들의 이름을 

<유다 =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지었습니다.

 

우리는 상처와 절망 때문에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고,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내가 결정합니다. 

레아는 성숙한 믿음의 여인이기에 다행스럽게도, 상처와 절망을 끌어안고 하늘 하나님께로 나가서 복을 받았습니다. 모래가 그냥 

있으면 모래입니다. 조개 속에 들어간 모래알갱이는 진주가 되어 나옵니다. 우리의 상처도, 아픔과 절망을 그대로 놔두면 곪아 

터져 병이 나고 망합니다. 하지만 은혜로 감싸고 보혈로 덮으면, 진주 같은 신앙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늘 아버지의 은혜

와 복으로 찬양드릴 수 있습니다.

 

구원은 거저 받을 수 있지만, 믿음의 성숙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땀과 눈물로 심어야 하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배신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유다 =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들>를 출산합니다. 남편에게 사랑받는 라헬보다는

신랑 되신 주님의 신부되는 레아의 삶이 신령한 은혜요, 축복입니다. 레아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미움과 시기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 29:31)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 2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