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21:1-25 [베냐민이 돌아왔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줄 믿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돌아오면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예수님께서 집나간 둘째 아들이 유산으로 받은 돈을 탕진하고 돼지 먹이로 목숨을 부지하고 살면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종살이를 해도 이보다 더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나간 둘째 아들이 가산은 탕진했지만 살아서 돌아온 것이 너무 기뻐서 아버지가 양을 잡아 잔치를 벌이는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오늘 베냐민 지파가 전멸을 당하고 도망친 600명의 용사들도 벌벌 떨면서 두려움 가운데 숨어서 자신들이 한 결정과 행동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가족들의 생명과 지파의 모든 재산을 다 걸고, 심지어 자신들의 목숨까지 동성애자들과 불량배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전쟁을 한 것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후회 막급했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다간 우리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사라지게 되겠구나. 우리라도 살아남아서 가문의 대를 이어야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 베냐민 지파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잖아~> 그러지 않아도 이스라엘의 한 지파를 사라지게 될 지경까지 몰아부친 자신들의 처사를 뉘우치며 아무리 그래도 한 지파를 사라지게 할 수가 없어서 열한 지파가 화해의 손을 내 밀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사라질 위기에 처한 베냐민 지파를 세울 사명에 불타는 살아남은 600명의 용사들이 열한 지파가 제시하는 화해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v.4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거기에 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믿음의 사람의 삶의 구심점은 예배입니다.

제사의 원조는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입니다. 제사의 원칙 중의 하나가 짐승을 잡아 피로 속죄 제사를 드리고, 곡식의 첫 수확으로 화목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믿음의 민족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이룰 것을 약속합니다. 그 약속을 붙들고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더라고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가장 먼저 드렸다고 창세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도 제사입니다.


창22:3-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쳐야 할 때,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이 일어나 출발합니다. 길이 멀어서 새벽같이 출발하기도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아브라함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결코 주저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찍 출발합니다.


일찍 출발하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입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은 항상 여유를 갖고 출발해서, 일찍 도착해서 화장실도 가고, 커피도 마시고, 옷매무새도 고치고 5분 전에 약속장소와 시간에 나타납니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은 그 사람의 인품과 됨됨이의 척도입니다.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성삼위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100% 약속하시고, 믿음으로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의 약속도 안 지키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은혜와 복을 요청하지 마십시오. 시간도 지키시고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모든 삶속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v.6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졌도다

v.14-15

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자들 중에서 살려 둔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아직도 부족하므로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었더라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지름길은 뉘우침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강제점령하고 황국신민을 만들기 위해서 창시 개명을 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의 박해는 견딜 수 있었는데 신사참배 건에 시험에 빠졌습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신사참배를 하지 않아서 순교를 당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는 있는 부끄러운 일들처럼 신사참배를 결정하고 모든 목사님도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영원한 것이 없듯이 8.15광복을 맞았습니다.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감옥에 갇혔던 성도들이 출옥해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한 목사와 교인들을 전부 치리했습니다. 설교할 자격도 없고, 직분을 받을 자격도 없다고 몰아붙였습니다. 결국은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것이 의가 되고 자랑거리가 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자랑은 내가 하면 교만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영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첫 설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천국은 죄없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회개한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의인이 없나니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회개는 새로운 출발입니다. 뉘우침은 내 마음의 변화의 첫걸음입니다. 회개는 내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출발선입니다. 베냐민도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깨닫고 뉘우쳤습니다. 회개하고 뉘우치면 새로운 생각, 복된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허물과 실수를 탓만하지 마시고 뉘우치고 회개하셔서 믿음으로 가장 복된 새로운 출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v.22-23 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오직 은혜만이 모든 갈등을 풀 수 있습니다.

베냐민도 불량배들의 죄를 직시하지 못하고 죄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의 책임을 묻는 사람들을 향해서 오른쪽으로 꼬면서 감아 올라갔던 자신들의 실수와 허물을 깨닫고 뉘우쳤습니다. 죄를 지은 불량배들에게만 책임을 물어야 할 이스라엘이 자신들도 문제를 풀기보다는 왼쪽으로 꼬면서 흥분한 나머지 맹세부터 하고 결정들을 뉘우치고 다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돌이켰습니다.


모든 갈등을 풀어가는 키는 역시 은혜였습니다.

은혜를 생각하는 순간부터 문제의 원인과 이유가 보이고, 문제를 해결할 길과 방법이 보였습니다.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실수와 허물로 헝클어진 문제는 다 풀렸습니다. 그래서 베냐민 족속들은 자신들의 기업의 땅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무너진 성읍을 재건하고 불타버린 집을 다시 건축했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꿈으로 베냐민 지파를 견고하게 세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 혹시 여러분이 밤잠을 설치며 풀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안고 있는 갈등은 무엇입니까? 실수와 허물은 뉘우치고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예배의 자리를 회복하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의 끝이 없는 은혜, 포기하지 않으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은혜없이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은혜를 받고, 은혜를 베풀면서 이 믿음의 길을 끝까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