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9 마가복음 6장 30-44절 [20000명의 저녁식사]

교회의 다섯 가지 기능, 특징 중의 하나가 친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먹는 이야기와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도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항상 먹는 것으로 갈등하고 거래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쫓아오는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매일 먹는 것으로 이런저런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예수님도 백성들과 제자들에게 먹는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먹는 것이 끝이 아니라 육신과 육적인 생명 넘어 영과 영원한 영생을 선포하십니다. 왜냐하면 육적인 생명은 유효기간이 있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유명한 예수님의 五餠二魚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수십명씩 여행을 가다가 예약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평소 먹던 음식보다 그 맛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식당이 평소에 맞이하던 손님들보다 그 수가 많아, 음식에 동일한 정성을 쏟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속, 여행 가이드는 단체가 예약하지 않고 식사를 해야 할 상황이면 밥값을 각자 나눠주고 각자도생 하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장정만 5000명, 거기다 여인들과 아이들까지고 함께 하는 저녁식사 모임이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합니다. 제가 아주 소극적으로 계산해서 <2만명의 저녁식사>라고 했습니다.

주문진에서 안목까지 2만명을 풀어놓고 식사를 해결하라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겁니다. 중앙시장에 2만명을 풀어놓고 식사하고 오라면 전쟁 일어납니다. 그런데 2000년 전에 벳새다 광야에서 2만명의 저녁식사를 해결 할 마을도 없고, 식당도 없고, 양식도 없습니다. 수개월 전에 예약을 해도 안 될 판에 예약도 없이 2만 명의 식사를 누가 어디서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설사 돈이 있어도 2만명 분의 빵을 어디서 구입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황당합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2만명의 저녁식사를 준비하라면 어떻하시겠습니까?

 

제자들에게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돈으로 빵을 사서 줘도 200데나리온이 필요한데 200데나리온이 없을 뿐 아니라 설사 200데나리온이 있어도 어디 가서 2만명 분의 빵을 사올 수 있겠습니까? 각자도생 하라고 해도 해 저무는 이 저녁에 이 2만명이 어디 가서 저녁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그것이 뭐냐? 금식하는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2만명의 저녁식사를, 어떤 사람도 해결할 수 없는 2만명의 저녁식사를 예수님께서 해결하시는 장면이 오늘 본문 속에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마가복음 6:39-42)


가장 복된 삶은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강릉교회도, 여러분의 가정도 인생도 주는 자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자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신났습니다. 기쁨과 감격과 감동으로 50명씩 100명씩 둘러앉은 2만명에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빵과 물고기를 나눠주느라 자기들의 배고픔도 잊어버리고 피곤한 줄도 모르고 열심히 왔다 갔다 어느 팀이 아직 받지 못했는지 여기야 저기야 소리치면서 정신없는 한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빵은 잘 구워졌을까요? 물고기를 잘 구워졌을까요? 제자들이 행복했을까요? 피곤해서 짜증났을까요?

강릉가족 총동원주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의 떡,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주면서 제자들처럼 기쁨과 감사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만 명의 저녁식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마가복음 6:42-44)

한 사람이 빵으로 배부르게 먹으려면 몇 개 정도 먹어야 합니까? 물론 사람에 따라 한 개 먹고도 배부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모르긴 몰라도 다섯 개 정도는 먹어야 먹었다고 하면서 배고프지 않아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2000년 전 벳세다 들녘의 장정 5천명과 여인들과 아이들의 배를 채워서 다 배불리 먹었다고 말할 정도는 빵을 몇 개나 먹여야 배부르다고 표현할까요? 물고기를 몇 마리 정도 먹어야 배부르게 먹었다 하겠습니까?

한개씩 먹으면 빵 2만개, 물고기 2만 마리, 두개씩 먹으면 4만개, 4만 마리, 세개씩 먹으면 6만개, 6만 마리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빵 2천개 주문해도 일주일 전에 미리 주문해야 배달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씩으로 표현해서 2만 명이 다 터지게 먹고, 아마도 주머니에 몇 개씩 집어넣고도 남은 개수가 열두 바구니입니다. 바구니가 아무리 작아도 수백 개의 빵과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남았습니다.

2만 명은 배부른 것도 행복했지만 어디서 이 빵과 고기가 생산되었는지 궁금했을까요? 전혀 궁금하지 않았을까요?

다음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강릉가족들이 2만명의 저녁식사를 해결하신 예수님의 능력의 빵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빵과 물고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해 하면서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