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3 골로새서 2장 1-7절 [감사를 넘치게 하라]

 

지난 주일에 디모데 후서 1장<주님께서 부탁하신 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목사님과 복음을 부끄러워 한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교회의 지도자이자 믿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불순종의 모습이 두드러져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무슨 일이든지 반대, 혹은 부정과

소극적인 사람들은 모세에게는 고라 자손들이 있었고, 아론에게는 불순종하는 두 아들이 있었고, 열두 정탐꾼들 중에 열 명이, 

문둥병에서 치료받은 아홉 명과, 사도 바울목사님에게는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는 가룟 유다가 있었

습니다. 이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핵심이고, 제자 중에 핵심멤버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부겔로와 허모게네>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지 자신의 경험과 지식, 이성과 합리성, 

상식과 생각으로 주장하고 판단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사람들의 항상 큰소리를 치고, 이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크게 들립니다.

그래서 군중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력 끼칩니다.


바르지 않으면서 바르게 비춰지고, 믿음이 아니면서 대단한 믿음인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 결과 열 명의 정탐꾼들의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로 인해서 가장 민주주의적인 다수결의 결정으로 인해서 40년 광야생활이 결정되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목적으로 출발해서 가나안 땅은 구경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원인은 그들의 <믿음 없음>이었습니다.

 

강릉가족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믿음의 사람들입니까?

부겔로와 허모게네 계열의 믿음입니까? 열 명의 정탐꾼 계열의 직분자들입니까? 아니면 오네시보로 계열의 믿음의 사람입니까? 

두 정탐꾼 갈멜과 여호수아 계열의 제직들입니까?

 

강릉가족 여러분~! 

나는 혹시 무엇을 결정하고 판단할 때, <자서전적 보고서>를 내서 하나님께 <믿음이 전혀 없음> 낙인이 찍혀서 인생을 광야에서 

헤매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위임목사로써 강릉가족 여러분의 가족들이 민수기 13장의 말씀을 매일 읽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은 하나님께서 강릉가족들이 죽기를 기다리시면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허덕이면서 살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부겔로, 허모게네 오네시보로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셔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 축복의 통로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감사절의 유래에 대하서 여러분에게 이야기하시라고 하면 저보다 더 잘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 이미 맥추절과 수장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혁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축제로 뿌리를 내리게 한 출발점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영국을 탈출해서 새땅 America에 뿌리를 내린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517년 로마 카톨릭을 개혁해서 

신교도가 탄생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에 영국에서도 로마 교황이 아닌 영국의 왕이 교회의 수장으로 삼는 국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영국 성공회라고 부릅니다. 

의식과 제도는 로마 카톨릭을 답습하고 있고, 운영은 개혁교회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회 신부들은 로마 카톨릭 신부들과

는 달리 결혼을 합니다. 영국식 천주교입니다. 이때가 1600년대 초입니다. 그런데 영국 국교인 성공회가 전권을 움켜쥐고 다른 

개혁교회의 신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영국에서는 성공회만 유일한 국교이기 때문에 다른 기독교를 이단으로 정죄하며 신앙을

박해했습니다. 당시 일단의 개혁교회 청교도들이 영국에서 더 이상의 신앙의 자유가 없으니 우리는 이 땅을 떠나서 새로운 땅으로 

가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종교개혁 정신을 계승하자며 메이플라훠호에 오릅니다. 102명, 선원들이 20-30명 정도, 이 배를 탄 

모든 사람들이 다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신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신앙의 

자유를 위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뤄서 신대륙에 새로운 영국의 식민지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 1620년 9월 9일에 영국의 플리머스 

항구를 출발해서 66일 동안 대서양을 항해해서 신대륙에 11월 21일에 도착했지만 날씨와 인디언 원주민과 마찰로 12월 21일 

돼서야 처음을 상륙하였고, 1621년에 처음으로 축제를 3일 동안 열었습니다. <추수감사>라는 단어는 1623년이 돼서 처음 사용

했습니다. 이것을 후대 미국교회가 기념해서 지금처럼 <추수감사절>을 거의 한달 동안 축제를 열고, 휴가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한국교회도 처음 복음이 전해질 때, 절대적인 농경사회여서 미국의 영향을 받아 추수감사절을 11월에 대부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5병2어의 이적으로 장정 5000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의 부스러기가 남았던 사건입니다. 

한 끼의 도시락인 5병2어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는데, 침을 삼키면서 그것을 쳐다보고 있는 배고픈 장정만 5000명

입니다. 그들의 시선은 랍비 예수님의 능력의 기도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의심과 부정과 회의적인 생각과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수두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축사는 이미 이루어진 일와 사건을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5000명의 시선을 의식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하심을 기대하며 배고픈 이들의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축사를 

드렸습니다.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는 어떻게 감사드립니까?

우리 가정은 어떻게 감사드립니까?

자녀들에게 감사를 어떻게 가르칩니까?

 

바울목사님이 감옥에서 골로새 성도들에게 간곡히 전한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장 6-7절)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뿌리를 튼튼히 깊이 잘 내리고 있습니까?

세상의 온갖 풍파가 몰려와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위에 서 계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은 대로 행동하는 믿음입니까?


그렇다면 그 믿음에 굳게 서서 이제 감사함이 넘치게 합시다.

헬라어의 의미는 감사가 가득차서 철철 흘러넘친다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감사가 철철 흘러넘치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길은 그렇게 감사가 흘러넘칠 정도로 풍성

하지 않습니다. 감사보다는 오히려 불평과 불만, 생노병사의 고통 속에서 슬픔과 좌절과 절망이 철철 넘쳐흐르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인줄 바울목사님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서 감옥에 갇혀 온갖 

고난을 당하고 있는 신세이기 때문입니다. 바깥세상에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감옥에 갇혀서 무엇하나 맘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감사가 흘러넘치게 하라고 편지를 쓸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감사가 가득차고 넘쳐서 흘러넘치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성령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감사를 흘려 넘치게 하며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충만뿐입니다. 우리의 오관으로 세상 어디를 봐도 불평불문 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감사를 넘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과 방법은 오직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야만 감사를 넘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와 모든 가정들이 성령 충만하셔서 감사가 흘러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