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2 마태복음 13장 24-30절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 송 준 목사


우리 삶에 일어나는 고통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악행의 근원은 무엇일까? 왜 신혼여행을 간 신부가 신랑을 잃은 채 돌아오는 일이 생기고, 4살 된 아이가 백혈병에 걸리는 일이 생기는 것일까?

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겪으며, 무고한 사람들이 권력에 의해 희생을 당하고 있을까? 사실 이 자리에서 제가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을 여러분들

께 드릴 수는 없다.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을 놓고 씨름했지만, 마음에 흡족할만 한 답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학계에서는 

신정론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연구하며, 한 해에도 수많은 논문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는 신비의 영역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하지만 여러분,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이러한 고통과 악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를 엿볼 수가 있는데, 제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모든 악과 고통의 

기원은 바로 악한 마귀이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밭을 가진 한 사람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자신의 하인들을 시켜 이 밭에 아주 좋은 곡식의 씨앗을 뿌리도록 했다. 

그런데 씨를 뿌리고 얼마 되지 않아 원수가 나타난다. 이윽고 이 원수는 모두가 깊이 잠든 새벽을 틈타 밭에 잡초의 씨를 뿌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후 시간이 흘러 밭에 곡식과 잡초가 동시에 자라났다. 이에 하인들이 주인에게 묻는다. 

“주인님 우리는 분명 좋은 씨를 뿌렸는데, 어찌하여 가라지가 함께 자랐습니까?” 그러자 주인이 대답한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이에 하인들이 주인에게 다시 묻는다. “주인님 그러면 우리가 이것들을 다 뽑아버릴까요?” 그러자 주인이 말한다.

“아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자라게 내버려두어라. 가라지를 뽑다 곡식까지 상할까 염려가 되는구나. 추수를 할 때에 가라지는 거두어 불사르고, 곡식은 모아 곳간에 

들이도록 하여라.”

 

자, 여기까지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비유의 말씀이다. 그럼 여러분 이제 고통과 악의 근원에 대한 우리의 질문을 여기에 적용해보겠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악과 

고통이 어디로부터 왔다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원수로부터 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마태복음 13:37-39)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천국의 아들들을 세상에 심으셨는데, 후에 악한 마귀가 악한 자의 아들들을 심었다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세상을 선하게 창조

하셨지만, 악한 마귀가 세상에 악을 심었다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고통과 죄와 악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과 죄와 악의 원인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이것들이 원수, 즉 마귀로부터 왔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계신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고통과 악의 원인을 하나님께로부터만

찾고 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이 말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돌이키기 위해, 또 당신의 사람들을 훈련시키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실 때도 있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고난이 우리 삶에 유익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기 우리는 현재 세상에 일어

나는 모든 고난과 아픔과 고통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고통 역시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다. 인간의 욕심, 인간의 분노,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악하고 나쁜 일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

이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악한 마귀에게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악한 마귀의 꾀임에 속아 죄에 빠진 인간들에게 

있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모든 고통과 악은 우리의 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악과 고통을 마주하며 힘들어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이로 인해 아파하시며, 이를 증오하신다.

 

 왜 하나님은 악을 속히 멸하지 않으시는가?

 왜 하나님은 세상의 악과 악의 근원인 마귀의 세력을 속히 물리치지 않으실까?

 이 역시 제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것은 바로 여기 있는 나와 여러분 때문이다. 여러분, 사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악과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악의 고리와 연결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은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 가끔은 평범

함과 선함으로 위장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혹자는 악을 가리켜 신비의 영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혹자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내기

도 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만약 지금 하나님께서 온 세계 안에 있는 모든 악과 고통을 멸하신다면 사실 그 누구도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마태복음 26:53-54)

 

여러분 사실 예수님은 이 말씀처럼 당장이라도 수만 명의 천사들을 보내 세상의 모든 악을 심판하실 수 있다. 악과 결부된 모든 존재를 소멸하실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칼을 든 용사의 모습으로 모든 악을 잘라내시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악과 연결된 우리 모두 역시 결코 그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역시 결국 죽고 말 것이다.

 

여러분 이와 같은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지금 당장 이 세상의 악을 멸하지 않고 계신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악과 결부된 여기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지금 당장 

악을, 마귀를, 죄를, 고통을 멸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마치 농부가 밭에 있는 벼가 상할까봐 가라지를 뽑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언제 어떤 방법으로 악의 세력을 멸하실까? 이것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일까?

 

악을 멸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이미 짐작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하나님의 방법은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큰 칼을 휘두르며 속히 악을 쳐내시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악을 멸하기 위해 선택하신 방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원수와 싸우시는데 칼이 아닌,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가장 연약한 방법을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악을 제거하시기 위해 완전한 사랑과 희생과 섬김이라는 비폭력의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이 사랑과 

희생과 섬김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 세상의 악을 몰아내고 있다. 실제로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채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십자가가 악을 이기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여러분, 과거 절대 권력이었던 로마 제국을 꺾은 것은 이 세상의 칼과 총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의 섬김과 희생과 사랑이었다. 로마제국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전염병이 돌았을 때조차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병든 사람들을 섬겼고,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결국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즉, 온전한 사랑과 희생이 악의 

세력을 꺾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의 악을 지워내고 계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도래하는 그날, 하나님의 방법으로 마침내 모든 악과 고통을 지워내실 것이다.

 

특별히 이에 대해 위르겐 몰트만이라는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읽어드리겠다.

“우리는 예수님이, 팔이 마른 사람을 치유하고 죽은 소녀를 일으키시는 것같이 극적인 기적을 행해주시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의 기적은 그 자체로 악과 죽음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치료하시고 죽음으로부터 일으켰던 모든 사람은 지금 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구원은 죽음의 세력을 파괴하고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게 합니다. 사람은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상처를 통해 치유됩니다.”

 


 “사람은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상처를 통해 치유됩니다.”

 사람은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상처를 통해 치유된다는 이 마지막 문장을 정말 좋아한다. 몰트만의 이 말처럼 우리 모두는 기적을 바라지만, 우리를 진정으로 치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처와 희생과 눈물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원수와 싸우시는 데 칼의 힘과 기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가장 연약해 보이는 능력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원수와 싸우기 위해 자신이 직접 죽는 것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의 

힘으로 종말의 때에 마침내 모든 악을 근본적으로 멸하실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십자가상에서 너무도 연약해 보였던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그날에 악한 사탄 마귀와 함께 모든 악을 소멸하실 것이다.

 

여러분,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신뢰해야 한다. 비록 때로는 이 세상의 악이 승리하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때로는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결국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 악을 제하실 것을 믿고 신뢰해야 한다.

 

이제 말씀을 맺겠다. 여러분, 지금도 세상에는 수많은 악과 죄와 고통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악와 고통은 결코 하나님의 작품이 아니다. 이는 악한 마귀의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악을 당장에라도 멸할 수 있으시지만, 모든 인간이 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아시기에 지금도 고통과 악을 뽑아내는 것을 유보하고 

계신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를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계시지만은 않으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십자가의 연약함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 악과 싸우고 계신다. 

사랑이라는 가장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악을 무찌르고 계시며, 마침내 심판의 그 날이 되었을 때, 악한 마귀와 함께 이 세상의 모든 악을 멸하실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끝까지 좋으신 우리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란다. 

지금도 사랑과 섬김과 희생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악과 싸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란다. 그렇게 우리가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나아갈 때에 좋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마침내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악과 슬픔을 몰아내실 것이다. 그렇게 여기 슬퍼하고, 근심하는 우리들의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며,

마침내 죄와 고통이 없는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실 것이다. 언제나 믿음으로 살아가므로 마침내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저와 우리 모든 강릉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